2008년 6월 9일(월) '생명의 삶' 묵상 [by Rev. Soong Kim]
<본문> 이사야 37:14-29
<제목> 히스기야의 기다림
위기는 기회: 삶의 위기는 신앙 증진의 절호의 기회가 된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위기 당사자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맞이하느냐에 따라 절호의 기회도 될 수 있고 실패의 도구도 될 수 있다. 히스기야는 그 면에서 성공적인 케이스다. 그는 자기에게 다가온 위기를 신앙 증진의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그러면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 그는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알았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보낸 랍사게가 유다를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 그 선전포고는 살벌한 것이었다. 앗수르는 이미 다른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경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랍사게는 그 역사적 사실을 근거 삼아 유다 너희들도 우리에게 굴복하지 않으면 그 나라들처럼 한 순간에 망하게 될 것이라고 당당하게 외쳤다. 그 이야기를 들은 히스기야 왕은 옷을 찢고 베를 입고 여호와의 전으로 갔다[37:1, 14]. 그리고 기도하였다[37:15-20]. 그 기도 내용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 전쟁의 기원 문제에 대한 판단이 담긴 기도다. 앗수르 왕이 그 나라들을 멸망시킬 수 있었던 것들은 그 나라들이 섬기던 신들이 다 목석과 같은 우상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37:18-19].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시지 않느냐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만유의 주님이시다[37:16]. 그러므로 이제 산헤립은 하나님이 왕 되시는 이 나라를 결코 칠 수 없을 것이다[37:20]. 우리를 구해주시면 앗수르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하나님이 바로 유일한 참 신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바로 이러한 기도였다.
우리의 믿음: 이처럼 우리 뒤에는 하나님이 항상 계신다. 세상이 우리를 볼 때 우리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기도할 때, 또 세상 속에서 살아갈 때, 이 엄연한 사실에 기초해 기도하며 살아가야 한다. 세상이 우리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게끔 우리가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응답: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왔다. 히스기야의 기도의 초점은 적중했다. 하나님은 역시 온 세상의 주관자이셨다. 산헤립의 조롱에 대한 하나님의 조롱 섞인 해석이 그 답으로 왔다. 그가 유다를 조롱했던 것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일이었다[37:23]. 하나님은 그가 했던 조롱을 인용까지 하시며 응답하신다[37:24-25]. 산헤립의 문제는 이것이었다. 그들이 한때 열방 중에서 기고만장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잠시 그들을 심판의 도구로 쓰셨기 때문이었다. 산헤립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37:26]. 그래서 이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시작될 것이다. 교만했던 산헤립은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척결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조롱: 하나님의 조롱을 이해하겠는가? 하나님을 조롱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조롱당하게 되어있다. 하나님을 비웃는 자는 하나님의 비웃음을 산다. 이 사실을 알며 믿음을 갖고 인내하는 자만이 후에 반드시 승리한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승리는 이뤄진다. 히스기야의 기다림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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