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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24/2017

주일예배 조회 수 92 추천 수 0 2017.12.28 12:08:53
큰 기쁨의 좋은소식
눅2:8-14절
12/24/17

 
Merry Christmas!
주님의 성탄의 축복이 여러분들의 심령과 가정과 사업과 우리교회와 온 누리에 함께 하길 축복합니다.
옆 사람과 성탄 인사 나눕시다,
Merry Christmas!

지난주에 성탄 카드를 구입하기 위해 마트에 같습니다.
수많은 카드가 즐비해 이었습니다. 그런데 "Merry Christmas" 라는 문구가 담긴 성탄 카드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대신 Happy Holiday 혹은 Season's Greetings의 문구로 많이 판매 되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크리스마스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 사라 질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를 한갖 설화로 취급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오심은 신화적(mytos) 설화적 인물도 변질 될 수도 있다는 염려를 해 보았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주님 탄생은 신화나 설화가 아닌 육체를 입고 역사 속에 성육신(incarnation)하신 분입니다.

한문 권에서 성탄이란 말은 성인이나 임금이 탄생 할 때 사용되는 높임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성탄절이이라 부르고 부처님의 탄생을 석탄일 일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나 공자나 임금의 탄생을 성탄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지만 기쁜 성탄 또는 즐거운 성탄이라는 말을 사용치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의 탄생만이 기쁜 성탄절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과 땅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 나심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 Good News요. “유앙겔리온”의 소식을 천사를 통해 전해주고 있습니다.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어떤 소식일까요?

 

1. 생명 구원 소식입니다.

여러분

영원히 죽을 사람을 영원히 살수 있다는 소식 많 큼 Good News는 없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넘어 더 살려고 하는 본능의 희망을 가지고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베아줄기세포의 연구를 통해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소식에 한 가닥의 희망을 겁니다.

본문 11절 보십시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는 큰 희망의 소식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주로 오셨습니다.

온 인류에게 죽음의 수수 깨기를 풀어 주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죽음 후에 어디로 가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이기고 합니다.

이 같은 물음에 대하여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예수님 오심으로 그 의문을 풀어 준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죽음에서 구원키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 믿으면 죽는 것이 사는 것이고 가야 할 영원한 고향인 천국을 본증 해 주신 Good News입니다.

유교사상에 철저한 어느 중국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선교사가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한 선교사는 그 유학자에게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를 물었더니 그 사람이 다음과 같은 명쾌한 비유로 말합니다.

내가 이 험한 세상을 방황하면서 진리를 찾아 헤 메고 또 생명을 찾아 헤 메였습니다. 그러다가 실족하여 우물에 빠졌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면서 살려 달라도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사람이 보고 전생에 죄가 많구 먼 업보요 업보구먼 하고 자나가 버립니다. 다시 소리를 질렀더니 또 한 사람이 들여다보고서 이 사람아 그러기에 네가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나 오늘 실수를 거울삼아서 앞으로는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하라 하고 가버렸습니다. 다시 소리를 질렀더니 그 사람은 말도 없이 팔을 걷어 부치더니 나를 건져주지 않았습니까?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첫 번 째 사람은 석가모니요 두 번째 사람은 공자선생이요 세 번째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 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오심은 온 백성들에게 죽음과 죄와 절망의 웅덩이에 빠진 나를 구원키 위해 오신 구세주로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의 뜻은 “구원자”입니다

행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고 말씀 하셨습시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소식이 얼마나 큰 기쁨의 소식입니까?

주님은 희망의 “그리스도”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은 자” 란 뜻입니다. 구약에서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오신 것입니다.

온 인류에게 희망의 선물을 주신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의 속국이 되어 전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힘들고 지쳐 있는 상황에서 오직 메시야만 기다리고 있는 절망의 상황에서 주님 오심은 이스라엘을 넘어 온 인류에게 한 줄기의 소망의 빛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주님은 나의 주님으로 오셨습니다.

본문 14절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란 말씀의 의미가 중요합니다.

14절에 보면 “기뻐하심을 입은 자”를 뜻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나의 삶의 주가 되시고 나의 삶을 인도자가 되시며 천국까지 동행자가 되십니다.

따라서 주를 믿는 자는 나의 계획도 나의 기쁨도 슬픔도 아픔도 상처도 염려도 현재도 미래도모두 나의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나의 삶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주님을 나의 주로 모시는 기쁨의 크리스마스가 되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큰 기쁨의 소식은 평화의 소식입니다.

여러분

행복이 무엇입니까? 수많은 사상가들이 행복을 논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유로 성취로 돈 지식 벼슬로 행복을 논 합니다. 물론 행복의 한 요소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참된 행복은 그 마음에 강 같은 평화입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이 내세운 정치적인 슬로건이 “Pax Romana"입니다. 즉, 로마의 평화입니다. 다시말하면 로마의 통치하에서 전쟁이 없는 외적인 평화를 추구코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화를 만드는 황제를 숭배하는 것으로 통치의 슬로건을 내 세운 것입니다. 평화가 왔습니까? 평화 아닌 전쟁과 갈등과 분쟁과 피 흘림으로 제국은 마감 되었습니다.

여러분

주님 주시는 평화는 내적 외적인 평화를 말씀 하십니다. 내 마음에 내적인 평화가 오면 외적인 삶에 평화가 있고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갈등과 분열과 상처가 아닌 평화를 심는 피스 메에커 사람이 됩니다.

평화의 반대는 전쟁 불안 초조 두려움 갈등 등등입니다.

기독교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불안(anxiety)의 요인은 3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죄입니다.

죄 지은 자는 불안 합니다. 죄는 세상에서의 죄 뿐만 아니라 마음의 죄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는 “하말티아” 하나님의 중심에서 빗나간 삶입니다. 죄는 원죄가 있고 자 범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죄입니다.

때문에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이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 참 된 평화를 누립니다.

새 환경입니다.

사람이 새로운 환경을 만날 때 불안을 느낍니다. 여러분들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언어 문화 환경 고향의 상실에서 새로운 환경을 접 할 때 심적인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의 명령을 받았을 때 불안했습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처음 미국의 이민 삶에는 불안이 공존 했을 것입니다. 나의 미래가 어떻게 될 지의 불안이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처럼

죄와 불안한 환경과 미래의 불안 속에 있는 온 백성에게 참 기쁨의 평화의 소식을 전합니다.

본문14절입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진실로 예수의 성탄 기쁨이 임한 사람 예수님을 온전히 영접한 사람의 마음에 하늘로부터 평화를 약속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마음에 오시면?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저의 죄에서 구원할 자임이라. 사1:18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 찌라도 흰 눈 같이 되며, 진홍 같이 붉은 찌라도 양털 같이 희게 하리라.

모든 환경과 미래의 불안을 제거해 주십니다.

사41말씀처럼 네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네가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나의 의로운 오른손이 너를 붙들이라“

시23: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을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주님, 주시는 내적 외적인 평화는 어느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위에서 내여 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고이 사네. 여기에 참 행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 평화를 전하는 피스 메이커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놀라운 평화를 경험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3. 영광의 소식입니다.

주님 오심은 하나님께 영광의 소식입니다.

본문 14절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라고 천사가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님 오심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웃음을 회복케 한 사건입니다.

태초의 하나님이 자신 보다 조금 못하게 자신의 형상으로 만든 창조의 걸작 품인 인간을 만드시고 만족의 웃음으로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 하므로 자신이 창조한 모든 인간을 공의로 심판케 해야 하고 또 멸망시켜야 하는 데 고민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웃음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의 겸손으로 인간이 되시고 온 인류를 죄를 대속키 위해 죄의 심판인 십자가를 지시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인간을 다시 구원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심은 하나님께서 공의로운 심판을 하실 수 있으며 주님의 부할 승천으로 믿는 자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새 역사의 지평을 열어 주시므로(요3:16) 하나님의 얼굴에 웃음을 회복하시니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된 것입니다.

 

복음의 전파되었습니다.

예수님 오심은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온 땅에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천한 말구유에 탄생하시고 3년간의 삶 역시 고달픔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건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의 삶은 오직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고 타자를 위한 삶이요 인간을 구원코자 하는 사랑의 삶이였습니다.

예수의 삶의 모습은 배운 제자들은 예수의 말씀과 삶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모함도 받고 인격의 상처도 받고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그는 오직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 하였습니다.

바울 역시 참수형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를 지고 안드레는 X형 십자가에 도마는 끊은 가마에 안디옥의 감독 익나티우스는 골로세움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에게 찢기고 폴리 갚은 화형을 당했습니다. 이들은 한 결 같이 오직 하나님께 은혜와 영광을 돌립니다.

그 복음의 전파가 오늘 이곳 미국까지 전파 되었으며 세계 13억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나 이 어찌 하나님께 영광이 아니겠는가?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큰 고통 환난을 당하는 자에게...입술로 목 놓아 찬송하면서 말입니다.

경배를 받으심입니다.

주님 나심은 기쁨의 경배로 나타났습니다.

동방박사 목동 그리고 오늘날 예수를 영접한 모든 사람들 주 앞에 나와 예배를 통하여 경배 드립니다.

경배의 자세는 온유한 겸손입니다.

지금도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하신 곳에 예수 탄생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그 교회에 덜어가는 문은 오직 한 곳뿐입니다.

그 문의 높이는 사람이 서서는 들어가지 못하는 높지 않는 문입니다. 누구나 반드시 허리를 굽혀야 그 문으로 교회당 안으로 덜어갈 수 있습니다. 그 의미는 어느 누구도 예수님 탄생 하신 그곳에 덜어가기 위해서는 겸손의 허리를 굽혀야 한다는 의미를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 탄생하는 그 지점에는 큰 별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키 위함입니다.

모든 성도가 겸손히 허리 굽혀 나의 구원자이신 주님께 겸손히 예배를 드리니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해 주신 기쁨의 성탄절입니다. 주님을 나의 구주로 메시아로 나의 주로 영접하여 하늘의 영광 땅에 평화를 누리고 큰 기쁨의 소식을 누리고 경험하면서 온 세상에 널리 전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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