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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7/2018

주일예배 조회 수 313 추천 수 0 2018.01.08 08:57:17
지혜 있는 새해를

엡5:15-21

1/7/18

 

무술년(戊戌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에 우리 성도님들의 영혼의 은혜가 충만하고 가정 자녀 사업에 축복이 넘치며 강건한 건강의 축복을 받으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지난 성탄절에 LA에 있는 우리 둘째 아들이 세크라 멘토 형 집에 와서 함께 성탄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요즘 너는 어떤 일을 하고 있니 물으니 22층의 고층 건물을 설계 중에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또 물었습니다.

그럼 22층의 고층 건물을 설계하면 층이 높이 올라 갈수록 힘이 덜 겠 군아. 아빠 건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초에 있는데 그 기초 설계를 잘하면 고층일지라고 그렇게 어럽지 않습니다. 다만 고층 건물 기초 설계를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해야 하는 것은 땅의 지질 상태의 분석이고 그 다음 풍향과 중력을 감안하여 설계를 합니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한해 기초 설계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은 새해 어떤 꿈을 설계하고 계십니까? 저는 우리교회가 향후 2 년간 200명의 출석 성도와 10 지역의 구역편성 그리고 2 가지 크다 란 선교사역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 꿈은 저 만의 꿈이 아니고 온 성도의 꿈이 되고 하나 되어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 할 때 그 꿈은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성경 말씀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말씀하고 계십니다.(시81:10) 새해 믿음 안에서 큰 꿈을 꾸십시다.

21세기를 흔히들 지식사회라고 말합니다.

현대인들은 지식의 바다 위에 자기 인생의 배를 띄워놓고 저 너머 피안의 세계를 항해합니다. 공산주의 사상의 원조인 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엥겔스(Friedrich Engels) 레닌(Vladimir Ilich Lenin)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없어도 인간의 힘(지식)으로 낙원을 건설할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러나 현대는 지식의 폭발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고통과 슬픔과 불안과 공포의 독안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영국의 사상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사람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행운과 행복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식의 바다 위에는 반드시 지혜의 등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이 한 줄기의 반짝이는 등대의 불빛을 보고 항구에 덜어갑니다. 만약 등대의 불빛이 없다면 암초에 부디 칠 수도 있고 또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들 지식을 이른 바 아는 것 이라고 통칭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아는 지식을 쓸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원리요 동시에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슬기가 바로 지혜인 것입니다.

솔로몬은 고백합니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 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 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지혜를 얻습니까?

성경은 지혜를 얻는 길을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앞에 실존이 서 있을 때 지혜를 얻습니다.

잠언9:10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 이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길은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5-7)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습니다(열왕기상, 3장).

그는 21세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어린 나이에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한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법을 만들고 시행해야 하며 또 재판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며 힘들고 답답했습니다. 그는 지혜를 얻기 위해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 천 번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 기도하는 정성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납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 그는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합니다.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전무후무한 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혜 얻은 솔로몬은 40년간 태평성대를 열어 갑니다. 온 세계 나라들이 솔로몬의 지혜를 흠모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영화까지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지혜를 얻어 지혜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몇 원리를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첫 번 째 원리는 세월을 아끼는 지혜입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는 시간의 개념을 카이로스(kairos)와 크로노스(kronos) 시간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카이로스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말하며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시간 개념입니다.

크로노스는 덧없이 흐르는 시간입니다. 본문에 세월을 이끼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토리노 박물관”에 가면 카이로스(Kairos) 동상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동상의 모습을 보면 앞머리는 길고 늘어져 있고 뒷머리는 대 머리로 벗겨져 있고 그리고 등과 양발 뒤꿈치에는 날개가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왼손에는 저울이 오른 손에는 칼을 가지고 있는 괴상한 모습입니다. 그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실소를 자 아 내곤 합니다.

그런데 동상 외모와는 달리 그 아래 새겨져 있는 글귀를 보면서 사람들에게 많은 감명을 줍니다.

내 앞머리가 길고 무성한 것은 사람들이 나를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까닭은 내가 지나가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며 어깨와 발꿈치에 날개가 달린 까닭은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른손에 칼과 왼손에 저울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를 만났을 때 신중하게 판단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하라는 뜻이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쉽게 시간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지나간 세월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순식간에 빨리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기회를 잘 판단하여 잘 선용하는 카이로스 적 시간 의미를 가지는 살아야 합니다.

본문 15-6절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것은 시간을 속량하라는 말씀입니다.

속량한다는 것은 칼빈(Calvin)에 의하면 마귀의 손에서 꺼집어낸다. 벵겔(Bengel)에 의하면 악한자의 손에서 도로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나의 시간 테이블을 살펴보고 마귀가 기뻐하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있으면 그곳에서 나와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시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아담의 자리에서 나와야 합니다.(원죄, 불순종, 불안, 초조, 근심, 걱정) 가인의 자리에서 나와야 합니다.(미움, 시기, 질투, 살인의 마음). 우상의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세상의 온갖 악한 생각 마음 행동에서 나와야 합니다.

이 말씀의 배경에는 당시 에베소 교회가 있던 에베소는 국제 무역도시로서 음행과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아데미 풍요의 여신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였습니다. 그들은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우상과 방탕의 도시에 있는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이러한 생활에 물 덜지 말 것과 때가 악한 때이므로 세월을 아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는 생활은 바로 이런 것에 나와서(calling out) 하나님이 기뻐하는 시간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세월을 이끼는 것은 주어진 기회(chance)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시간은 기회입니다. 주어진 기회를 충분히 살리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기회가 늘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만나야 합니다. 일할 기회가 중요합니다. 교회 봉사 기회가 중요합니다. 직분을 받을 기회도 중요합니다. 사랑 할 수 있는 기회 용서 할 수 있는 기회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그 인생은 후일 후회의 잔을 마십니다.

어떤 장로님의 일화입니다.

그 분은 큰 사업을 하면서 물질에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교회 건축을 하는데 모범이 되어야 할 장로가 지극히 인색했습니다. 그 이듬에 정계에 진출합니다. 목사님이 기도하는 중에 말렸습니다. 목사의 충고를 뿌리치고 선거에 나갔습니다. 선거에 떨어 졌습니다. 사업도 재산도 모두 탕진합니다. 그 장로의 입술에서 하는 말이 네게 물질이 있을 때 교회 건축헌금이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목사님이 충고를 듣지 않고 뼈저린 실패를 한 것입니다 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헌신의 기회를 놓친 것 아닙니까?

여러분 새해 축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기회를 잡을 때 더 많을 것으로 축복의 길로 인도 받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것은 맡겨 주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에디슨은 얼마나 연구에 몰두했던지 밥 먹음 것조차 잊고 열중했습니다. 그의 최선은 위대한 발명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한다는 말은 성경에는 충성된 종으로 표현 합니다. 영어로 Faithful 즉 믿음으로 꽉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한자로 忠誠(충성)은 마음 중심에서 울어 나오는 성실을 말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주어진 일에 묵묵히 일하는 사람을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맡겨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들에게 면류관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하면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달려가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면 의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주님 주시는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롬12:11)

세월을 아끼는 것은 일을 미루지 말고 지금 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시간은 순간 성입니다. 주어진 일을 미루지 말고 낭비하지 말고 지금 당장 하는 것이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어거스틴(Augustinus)은 시간은 현재만 실존 한다고 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시간은 종결과 시작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흰머리가 되며 흘러가는 세월을 잡을 수 없습니다.

지금 나에게 부여된 사명 수많은 봉사의 일들 미루고 있다면 이미 세월을 낭비하는 생활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은 미루지 말고 즉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미루게 될 때 사탄이 틈타기 때문입니다. 지혜 있는 새해의 설계를 원하십니까? 세월을 아끼는 지혜 있는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두 번째 원리는 주의 뜻을 이해하는 지혜입니다.

본문 17절에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주의 뜻을 이해하는 것은 본문의 배경에서 보면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입니다. 영적 분별능력입니다.(히5:14)

주의 뜻 즉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생활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듣기 보다 사람의 소리에 귀를 귀 울립니다. 사람의 소리는 자기 자기중심의 소리요 자기 욕심의 소리요 자기의 변호의 소리요. 비판과 부정의 소리들이 들립니다.

반면에 주님의 음성은 말씀의 소리요 양심의 소리요. 사랑의 소리요. 용서의 소리요. 섬김의 소리이며 듣는 이로 하여금 희망을 꿈꾸게 하며 격려와 위로의 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주의 음성을 듣을 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 길은 고요히 말씀의 거울 앞에 서는 것입니다. 고요히 기도의 밀실을 통해 영혼의 속삭임을 듣습니다.

살전 5:16에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인 말씀에 응답하고 순종하고 믿고 기도 하면서 따라갈 때 주의 뜻이 나타나며 주님의 놀라운 인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은 언제나 그 심령 속에 평화를 주시며 믿음을 주시며 위로를 주십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창조하십니다. 지혜 있는 새해를 설계 하시고 싶습니까? 주님의 뜻인 주님의 음성을 듣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세 번째 원리는 성령 충만한 지혜를 필요 합니다.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는 다는 것은 육신의 요구를 억제하고 영의 따라 살아가는 생활을 말합니다.

인간은 영 육 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혼은 영의 지배를 받으며 이성적인 활동을 합니다. 육은 언제나 땅의 것을 추구하며 온갖 욕구의 중심이기도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다는 것은 영이 하나님과 늘 교제하므로 혼과 육을 지배하므로 영에 속한 생활을 합니다. 영에 속한 생활은 늘 위에 것을 생각하고 자기보다 늘 교회를 생각하고 이웃을 생각합니다.

반면에 육에 속한 사람은 영의 교제가 단절된 상태이므로 이성의 생각으로 육의 생활에 포로가 됩니다. 성령의 술에 취하기보다 세상 술에 취하게 됩니다.

여러분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능력을 삶을 살아 길 수 있습니다.

마치 독수리 날개 치며 하늘로 올 라 가듯이 연어가 물을 차고 강을 거슬러 오라 가듯이 늘 새 힘을 공급 받습니다. 누애고치가 습에 올라서 허물을 벗고 번데기가 된 이후에 나방이 되어 창공을 나르듯 말입니다. 기쁨이 충만합니다. 염려와 걱정이 있어도 주께 맡길 수 있으며 주께서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성령 충만 받습니까?

주님 앞에서 회개와 간구를 하면 성령의 충만을 받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회개하니 눈에 비늘이 떨어지고 바울이 되었고 성령 충만한 능력의 종이 되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지혜 있는 새해를 설계하기 위해 회개와 간구를 통해 성령충만으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그래서 능력 있는 새해의 삶이되길 바랍니다. 사랑할 수 있고 용서할 수 있고 섬길 수 있는 성령 충만한 성도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네 번째 원리는 감사와 복종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본문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하므로 피차 복종하라”

지혜로운 성도는 자신의 삶 속에 감사의 씨 앗을 찾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프리즘으로 바라보면 수많은 감사의 씨앗이 보입니다. 가정에서 아내의 모습에서 남편의 모습에서 교회 봉사하는 가운데서 일터에서 수많은 감사의 씨앗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 감사의 씨앗은 싹이 트고 줄기가 자리고 입이 피어서 곳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를 따먹고 남에게도 줄 수 있고 또 그곳에는 평화가 있고, 축복이 있습니다. 감사의 입술에는 반드시 찬송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본문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언제나 감사 보다 불만과 불평 그리고 부정으로 가득합니다.

불평과 불만은 나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파괴를 가져옵니다. 수많은 의심을 가져옵니다. 마귀의 손에 놀아나는 것입니다. 평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떠납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성도는 복종의 생활을 합니다.

겸손한 종입니다. 겸손과 순종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덕목입니다. 삼상에는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 것은 바로 철저한 순종과 복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안드라도 자기에게 좀 손해가 되는 것 같아도 자존심이 좀 상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말씀이기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새해 어리석은 자기 되지 맙시다.

어리석은 자는 시간을 낭비합니다. 인간의 뜻으로 행동합니다. 방탕과 술 취함으로 살아갑니다.

불평과 불순종과 교만의 생활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성도는 세월을 아끼고 주의 뜻을 찾고 성령의 충만을 받고 감사의 복종의 삶입니다.

수도 교회는 이런 축복의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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