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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3/5/2017

주일예배 조회 수 1400 추천 수 0 2017.03.06 09:24:15
백배의 결실을 소망하면서
본문: 마13:3-23.
3/5/2017
봄이 왔습니다.
촉촉한 봄비가 내려 잔설(殘雪)을 녹인다는 우수도 지났고, 개구리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驚蟄)이 바로 오늘입니다.
온 산천이 봄의 기운을 느낍니다.
우리 교회 동산에도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습니다.
봄이란 말은 영어로 Spring인데 이 말은 living에서 온 말입니다. 그 뜻은 “살아있는 생명 ” 입니다.
때문에 봄을 만물이 소생하는 “약동의 계절” 이라고 부릅니다.
여러분
봄이 오면 가장 바쁜 사람은 아마 “농부”일 것입니다. 농부는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추수하기 위하여 적어도 3가지 중요한 것을 준비합니다.
1) 충실한 종자 씨입니다.
2) 옥토입니다. 겨울 농한기를 이용하여 객토와 심경을 합니다.
3) 땀을 흘려야 합니다.
농부가 좋은 씨를 옥토에 뿌리고, 땀 흘리며 김매기, 농약살포 등을 하면서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소망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말씀의 내용은 말씀의 씨앗이 옥토에 뿌려지고, 땀을 흘리면,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똑 같은 말씀 씨를 받았지만 어떤 성도는 30, 60, 100배의 결실의 축복을 받는가 하면, 어떤 성도는 있는 것 까지 다 빼앗기는 불행한 성도들을 만납니다(12절)
왜 그럴까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 말씀을 통해서 내가 축복 받지 못하는 원인을 스스로 발견하고 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도 100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1. 좋은 씨를 발견하는 영적 눈이 필요합니다.
성경에는 영 분별 은사가 있습니다. 성도는 좋은 씨를 발견할 수 있는 영적 눈이 필요합니다.
좋은 씨가 어떤 씨일까요? 바로 예수님이고 그 분이 남겨주신 말씀인 성경입니다.
왜 성경이 좋은 씨가 될 수 있을까요?
성경만이 인생에게 길 진리 생명으로 인도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영육간의 모든 축복 비결이 성경 속에 있습니다. 특히 힘들고 절망과 무너진 성터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새 힘과 새 능력의 비결 또한 성경에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에 부활 예수 만나 후 자신의 구원 도리를 깨닫고 그동안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지식 율법 경험 신념을 초등학문이라도 선언 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성도님들이 아직도 말씀 보다 세상 초등학문에 매달려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을 만나게 됩니다. 때문에 말씀에 약속된 100배의 소망을 기대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좋은 씨인 말씀이 저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여러분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성경 입니다. 그 성경을 날마다 읽고 듣고 묵상하며 가슴에 깊고 심어 십시오. 그리고 말씀대로 행 하십시오. 그리하면 주님께서 약속하신 100배의 축복을 범사에 주십니다. 이런 수도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2 참된 말씀 선포 자를 만나야 합니다.
얼마 전 마켓에서 미국에 51전에 이민 오신 한 분을 만났습니다. 집으로 초대 받아 50년의 이민의 삶을 듣게 되었습니다. 눈물과 기쁨이 교차 되었지만 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은 한 백인의 만남과 그 분의 말과 안내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술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스 카로스가 인생은 만남의 존재라고 말 했듯이 인생이 누구를 만나고 또 어떤 말을 듣고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에 따라 그 인생이 달라집니다.
가령 .
믿음의 사람을 만나면 믿음의 사람으로 영향을 받습니다. 반대로 불신앙의 사람을 만나면 자신이 불신앙의 사람으로 또 부정적인 사람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참된 말씀의 선포 자인 예수님을 꼭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 말씀을 바로 전하는 교회와 신실한 주님의 종들을 만나야 합니다.
이 것이 성도가 구원 받고 범사에 100배의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반대로
성도가 이단과의 만남은 큰 불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영혼이 소리 없이 병들게 합니다. 마치 암 세포가 자라듯 서서히 죽어가게 하여 멸망의 자리로 떨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수도교회는
바른 말씀만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분별력을 통해 말씀을 왜곡하는 이단에 대하여 분명한 경고를 선포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케 하는 100배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3. 옥토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옥토의 마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행하여서 30 60 100의 결실을 맺는 마음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 듣지 않고 깨닫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4가지 마음이 있습니다.
첫째가 길가와 같은 마음입니다.
본문에 보면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쪼아 먹었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 가보면 밭과 밭 사이에 경계 겸 사람이 다니는 조그만 한 길이 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 길을 다니면서 농사를 짓다보니 그 길이 매우 단단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방법도 손으로 뿌리는 방법이 있고, 또 소 등에 씨앗 자루를 올려 자루에 구멍을 뚫어 소가 지나가면서 씨앗이 떨어지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다 보니 씨앗이 밭에 떨어지기도 하고 또 길가에도 떨어지기도 합니다. 밭에 떨어진 씨앗은 흙이 그 씨앗을 껴안기 때문에 자랄 수 있으나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길이 단단해서 씨를 껴안을 수 가 없다 보니 새 들이 와서 그 씨앗을 먹어버립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은?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닌 길처럼 사람들의 철학이나 교훈이나 유전이나 지식이나 경험 등으로 굳어진 마음입니다. 때문에 말씀을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령
고기 박사요 경험을 가진 베드로가 밤새워 고기를 잡았지만 왜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까? 자기 경험과 지식의 한계가 아닙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경험의 지식을 내려놓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니 153 마리의 많은 고기를 잡는 기적 경험하지 않습니까?
하루는 나다나엘에게 빌립이 와서 나는 메시야를 만났다고 라고 전합니다. 그때 나다나엘은 나사렛에 무슨 선한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나사렛 지역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때 빌립이 와보라 했을 때 그가 선입관을 버리고 예수께 나와 주님을 영접하니 구원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 내 지식 경험 편견 선입관을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주님 말씀을 아멘으로 받게 되면 구원의 은혜를 입게 될 뿐만 아니라, 그 삶 가운데 100배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리고
길가와 같은 마음 밭에는 항상 복음의 방해꾼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본문에 길가에 떨어진 씨앗을 새가 먹었다고 했습니다. 새는 성경에 좋은 의미로 비유되는 경우도 있지만(마6:26) 본문의 새는 사단이며 말씀 방해꾼으로 비유 됩니다 (겔31:6)
새의 특징이 먹이가 있는 곳이면 어디론지 날아다니듯이 사단은 한 생명이라도 삼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 그러므로 근신하라 깨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5:8-9)
성도여러분
성도가 바른 말씀에 서 있지 않을 때 반드시 사단의 새들이 먹이를 찾아 날아온다.
가령 우리 큐티 방에 올래, 새로운 말씀한번 들어 볼래 등등으로 사단의 새들이 성도를 유혹 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가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 스스로 유혹을 물리치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지 못하면 신속히 목자와 상의해서 사단을 물리 쳐야 멸망의 자리에 빠지지 않습니다.
 
둘째가 돌밭 같은 마음입니다.
본문에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고지대 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밭입니다. 10센티만 덜어가도 석회암층이 있고 그 위에 흙이 얇게 깔려 있어서 바람에 흙이 날리고 나면 곧장 암반이 노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돌밭은 겉보기에는 옥토같이 보이나 그 내면에는 암반이 있는 밭입니다.
이런 밭에 씨를 뿌리면 태양열을 받아 씨앗이 빨리 발아됩니다. 그러나 잘 자리지 못 합니다.그 이유는 암반 때문에 계속적인 양분 공급을 받지 못하고, 암반에서 나오는 이물질 때문에 식물을 병들게 하며, 뿌리가 깊지 못하므로 강한 태양열 때문에 곧 마르게 됩니다.
돌밭 같은 마음?
말씀을 기쁨으로 받되 받고, 말씀의 뿌리가 없어 환난과 핍박이 오면 믿음을 버리는 자입니다. 또 말씀의 뿌리가 없는 감정신앙입니다. 일종에 냄비신앙입니다. 반석 같은 자아가 내 중심에 자리 잡고 있어서, 말씀이 받되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삶 가운데는 예기치 못한 환난과 핍박은 늘 있습니다. 그 환난과 핍박을 만나면 두려워하지 말고 그 환난의 현장에서 주님께 간절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해 보십시오. 그때 우리 주님은 위로의 말씀과 은혜를 주십니다.
저도 또한 환난과 핍박 앞에서 눈물로 기도한 적이 있는데 그때 주님이 이사야 58:8-12절을 주시어 그 말씀으로 큰 위로와 은혜로 가야 할 길을 인도 받았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은 택한 여러분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성도가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 그 환난을 피할 길을 주시며, 환난을 통해 금 같은 믿음의 성도로 세우시며, 위로와 평강을 주시고, 말씀에 약속하신 100배의 결실을 맺게 하여 주십니다. 이 같은 믿음의 성도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셋째가 가시떨기 같은 마음입니다.
본문에 더러는 가시 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라고 기록하고 있다.
시나이 반도나 네게 사막지역을 지나다 보면, 생명력이 강한 가시덤불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시덤불에 씨앗이 떨어지면, 처음에는 싹이 돋아나지만 성장과정에서 노랗게 또는 가날 프게 자라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시덤불이 태양과 바람을 잘 통하지 않게 하고 또 땅 속에 영양분을 곡식 보다 먼저 빨아 먹기 때문에 곡식은 영양실조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때문에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입니다.
성도여러분
세상 염려와 재물에 유혹 받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서 어떻게 자유 하느냐 인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이 걱정하는 100% 가운데 50%는 전혀 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 50% 중 40%는 있을지 없을 찌 모르는 것, 10%는 그런 가능성이 보이는 것인데 10% 중에서 1%정도가 그것도 불투명한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염려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 말씀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고(마6: 27)
성도의 염려 해결법은 염려 그 자체를 몸 땅 주님께 가지고 나와 기도하면서 맡기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
그리고
성도가 재물의 유혹에서 자유 하는 길? 재물의 유혹이 올 때 말씀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그 재물의 유혹은 분명 죄를 낳게 하고 죄의 삯은 사망을 낳기 때문에 물질 보다 더 귀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말씀으로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주님의 야속하신 100배의 축복으로 인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묶은 밭입니다.
묶은 밭은 길가 밭, 돌밭, 가시떨기 밭, 옥토를 그 대로 방치해 두면 묶은 밭이 됩니다.
왜 묶은 밭이 될까요?
종교인의 신앙생활 때문입니다.
성도는 감격과 기쁨과 은혜 가운데 신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그저 주일이니 교회가야 하고. 형식적적인 교회 생활만 반복하는 종교인의 신앙이 되다 보니 은혜도 축복도 감격도 없다. 그러니 예배나, 기도나, 전도나, 봉사나, 말씀을 듣고 배우기를 게을리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묶은 밭 같은 마음입니다.
또 나쁜 습관이 묶은 밭 같은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1864년 덴마크가 독일과 10년간 전쟁 끝에 항복 선언 합니다.
당시 덴마크의 젊은이들은 현실에 절망과 비관 때문에 사상적으로 허무주의와 관념사상과 사변철학에 빠졌고, 그들의 사고는 하면 뭐하느냐 식으로 매사에 부정과 포기로 상실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술 먹고 당구치고 댄스에 빠집니다.
그 때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 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절망에 이르는 병은 인간 몸의 병 자체가 아니고 절망 그 자체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따라서 절망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그 절망 자체가 죄 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 곳에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이 구원에 이른다고 역설 한 바 있다.
성도여러분
성도가 “죽음에 이르는 병”인 절망과 자포자기와 나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사고로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물새 같은 고독과 절망과 죽음이 엄습했지만. 무덤 헤치고 부활하시므로 모든 것에서 승리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그 주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태한 종교인 신앙 생할과 나쁜 습관인 묶은 밭을 말씀과 성령으로 객토하고 심경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믿음으로 회복 되면 그 믿음의 역사로 100배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4. 땀을 흘러야 합니다.
서울여대 전 총장인 정 구영 박사가 “공짜가 없다”라는 책을 집필 했는데요. 그 중심 주제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지 않는데서 거두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열심히 말씀의 씨앗을 심고, 기도를 심고, 봉사를 심고, 물질을 심고, 전도를 하십시오. 그리하면 우리 주님 그 땀을 보시고 100배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새 봄을 맞아 나의 신앙도 봄맞이 합시다.
주님 말씀을 나의 옥토 같은 마음에 심으십시다. 그리하여 말씀의 축복으로 건강과 삶과 가정과 자녀와 사업의 가운데 100배의 열매를 거두는 우리 수도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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