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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4/23/2017

주일예배 조회 수 2092 추천 수 0 2017.04.24 09:17:58
그리스도의 편지 입니까?
고후3:1-18절(1-5 봉독)
4/23/17
 
부활주일을 통해서 나도 부활할 수 있다고 확신을 가진 저와 여러 분들은 이 기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한 통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어떤 청년이 한 처녀를 사랑했습니다.
두 남녀는 서로 사랑에 푹 빠졌습니다.
청년이 처녀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냅니다.
나는 평생 동안 당신에게 성실할 것을 맹세 한다는 고백의 편지입니다.
그 둘은 사랑의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남자가 그녀를 남겨두고 멀리 떠나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낸 후 그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으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남자 친구들이 그녀를 가볍게 여기고 조롱합니다. 당신이 사랑했던 그 사람은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그녀는 무척 괴롭고 슬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자신에게 보냈던 남자의 편지를 다시 읽습니다. 자신에게 평생 동안 성실할 것임을 맹세하겠다는 내용을 읽어 면서 울었습니다. 동시에 그녀는 그 편지의 약속을 믿고 위로를 받으며 또 다시 기다림의 힘을 얻습니다.
어느 날 남자가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반갑게 만났습니다.
남자가 말합니다. 그동안 홀로 긴 고통의 나날을 어떻게 보냈소? 라고 뭍 습니다. 그때 그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메시야를 기다림같이 나도 당신의 편지 약속을 믿고 반드시 돌아 올 것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 여인에게 이 한 통의 편지는 사랑하는 남자와 마음의 통로가 되었고 끝까지 약속을 믿고 인내 할 수 있었던 희망과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통의 편지는 너와 나의 성스러운 만남의 통로가 되기도 하며 또 중매자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약속과 힘과 희망을 주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성스러운 만남의 통로요 중매자요 또 놀라운 축복과 능력을 받는 약속의 편지입니다.
성경은 생명 구원을 약속한 초청의 편지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내가 너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11:28)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초청 하십니다(사55:1)
성경은 또한 사랑의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1서 4:7-10)
성경은 희망의 편지입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되게 하셨습니다. (벧전 1:3-4절)
이처럼 하나님의 편지인 성경은 온 인류에게 구원의 약속과 사랑과 소망을 주신 고귀한 선물임에 툴 림이 없습니다.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선물 가운데 가장 뛰어난 선물이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토록 고귀한 선물인 성경을 주셨는데 읽지 않고 사용치 않고 책상 위에 비치만 하고 계시면 한 권의 책에 불과 할 뿐입니다.
저는 한국과 미국에서 목회 하는 가운데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골방에서 눈물로 성경을 읽으며 기도한 적이 많습니다. 그때 마다 주님은 말씀을 통해 위로함을 주셨고 또 문제의 해결과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민의 삶 가운데 눈물이 내 앞을 가리고 내 마음에 근심이 쌓이고 마음이 너무 아파서 속이 상할 때 여러분 옆에 둔 주님의 편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의 놀라운 위로와 평안을 주시며 문제 해결의 길을 보이시고 걸음을 인도하는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은 자신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내의 소수의 유대인들이 바울의 사도성에 의심을 품고 당신이 정말 사도라면 예루살렘 사도들의 추천장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바울은 담대해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나는 이미 하나님의 영에 의해 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새겨져 있고 또 그 말씀을 전하는 편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천하거나 또는 다른 사람의 추천장이 필요치 않음을 분명히 말했습니다(3:1-5)
 
바울 자신뿐만 아니라 성도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된 것은 성도 역시 그 마음에 말씀을 먹으로 종이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주님의 말씀이 새겨 졌고 또 주님이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말씀 하셨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3-5절, 사43:1, 시12:7-12)
그러므로 바울이나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이 지명하여 주셨고 추천 하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 주신 한 통의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추호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질문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주의 말씀이 새겨진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아멘 하셨다면?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여러분!
편지의 사명 중 가장 중요한 기능은 내가 쓴 편지 내용을 수신자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어떤 편지 내용을 전해야 할까요?
1. 새 언약의 도를 전해야 합니다. 
새 언약의 도는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구원의 언약을 맺었으나 이스라엘백성이 범죄하고 또 포로로 그 언약을 파괴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언약을 파괴한 그 죄와 인간이 범한 죄에 대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그 죄를 사하여 주셨고 따라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새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새 언약의 도를 전하는 자를 새 언약의 일꾼 또는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하는데 새 일꾼이 되는 조건은 하나님의 영으로 그 마음(심비)에 언약의 도인 구원의 말씀이 깊이 세 겨진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일꾼인 저와 여러분은 내 죄를 사해 주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새 언약의 도를 세상에 전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나의 가장 가까운 가족과 이웃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새 언약을 깨닫지 못하고 실의에 빠져 방황하는 자들에게 이 기쁜 소식 전해야 합니다.
주님은 성도가 한 통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주님의 구원의 도를 전하는 메신저 역할을 할 때 만족 하신다고 말씀 하십니다(6절)
 
성도여러분
주님은 공짜가 없습니다. 심는 만큼 거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주님께서 만족하시는 새 언약의 도 즉 한 생명을 구원코자 하는 그리스도의 편지의 삶을 살 때 우리 주님의 나의 영혼에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희열을 주실 뿐만 아니라 범사에 네가 염려하는 모든 것들과 나의 삶과 우리 가정에 무엇이 필요한 것들에 대하여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넉넉히 주십니다.(3:5)
우리 수도교회 성도님들은 주님이 만족하시는 새 생명 전도를 위한 한 통의 그리스도의 편지 사명을 잘 감당하여 주님 주시는 풍성한 은혜의 축복을 받는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2. 소망의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 모습과 삶의 자리에서 소망을 삶을 살고 또 소망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편지들입니다.
본문에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3:12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소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나의 영원한 고향인 천국에 덜어가는 소망이요 또 한 소망은 주님 나라로 부르시는 그 순간까지 이 땅에서 전능하신 나의 주님의 손을 잡고 주님의 함께 주님의 인도를 받으며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는 참 소망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찬송가 중에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가사가 참 은혜가 됩니다. 됩니다.
1절에 내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밤 낮 불러서 찬송을 드려도 늘 아 쉰 마음뿐이라.
5절 나의 진정 사모하는 예수여 음성조차도 반갑고 나의 생명과 나의 참 소망은 오직 주 예수 뿐 이라.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성도의 참 소망의 근본이 되신 전능하신(엘 솨다이)하나님 이십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전능하신 우리 주님과 함께 할 때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in Christ L can do 임을 선포 했습니다.
삭개오를 보십시오. 삭게 오는 난쟁이로써 누구보다 신체적 열등감과 사람들로부터 냉대를 받는 세리였습니다. 그의 삶은 소망이 없는 삶 자체였습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고 한 숨 쉬며 고독하게 살아온 인생이 아닙니까?
그가 하루는 주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 보기 위해 뽕나무 위에 올라가서 기다립니다. 주님은 뽕나무위에 있는 삭개오에게 내려오라고 초청 하십니다. 삭개오는 주님으로부터 초청의 편지를 받습니다. 주님의 만남은 자신을 짓누르던 신체적인 열등감과 심령의 절망적인 삶에서 구원을 받고 새 소망으로 살게 됩니다(눅19;1-10)
12년 동안 혈우병의 절망 속에 살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져도 치유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밤새 고기 한 마리의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주님이오셨어 베드로야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던져 보렴 ... 말씀에 순종한 베드로는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습니다. 절망과 실망의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의 순종하므로 삶의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밧세바를 간음하고 그 죄 때문에 고통 속에 헤 메는 다윗에게 나단 선지를 통한 회개의 복음을 전할 그는 깊은 회개를 통해 죄의 용서함을 받고 다시 주어진 사명을 감당케 하는 소망의 편지가 되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이민의 삶에 너무 힘이 드시지요.
그리스도의 소망의 편지인 말씀을 읽고 묵상 하십시오. 그 말씀을 나의심령에 깊이 새기십시오.
그 말씀 따라 믿음으로 행할 때 소망의 하나님은 열등감에서 삶의 절망에서 질병에서 죄의 고통에서 자유를 주시며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소망을 주십니다.
우리 수도교회는 그리스도의 소망의 말씀을 심비에 세 겨진 성도들이 모인 행복한 교회입니다. 소망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축복의 교회입니다.
믿습니까?
이 소망의 말씀을 성도 한 분 한 분의 한 통의 그리스도의 소망의 편지가 되어 전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3. 자유 함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내 심비에 새겨질 때 그 가슴에 말할 수 없는 희열과 참 자유가 넘칩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 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 케 하리라(요8:31-32). 진리가 곧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포 하셨습니다.
본 17절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내 마음에 새겨진 주님의 말씀에 주의 영이 임할 때
모든 염려와 무거운 짐에서 자유 함이 있습니다.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나의 미래에 대한 자유 함이 있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나의 삶에 회복과 비전을 주십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에게 여호와의 생기를 공급하니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살이 입혀지고 가죽이 덥히고 힘줄이 생겨서 여호와의 큰 군대가 되게 하신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여러분의 이민의 삶 가운데 때로는 에스겔 골짜기 마른 뼈와 같은 염려와 근심과 고통이 다가오더라도 주 성령이 내 심령에 임하는 순간 마른 뼈 같은 나의 삶을 회복해 주십니다. 지난날 우리 교회의 아픔도 회복시켜 주시고 주님과 함께 다시 시작하는 놀라운 비전과 축복으로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겔37:1-14)
이 자유의 기쁨은 경험한 성도여러분
이 자유 하는 기쁨을 우리 이웃에게 한 통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전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천국 가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라.
여러분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죽음이 인간의 이별이라는 점에서 슬픔이 있지만 성도의 죽음 은 하나님의 때에 부르심과 섭리입니다. 때문에 슬픔 보다 낙원에서 부활을 기다리며 천국을 바라보며 행복한 쉼을 가지기 때문에 슬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막연하게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무속은 사람이 죽으면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고 유교는 혼백이 분리리어 귀신의 온 우주를 떠돌아다닙니다. 불교는 극락왕생이 죽음의 최종 목표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니 차선책으로 윤회의 삶을 가르칩니다. 사람이 죽어 때로는 짐승으로 태어나고/ 때로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으로 환상한다고 윤회 사상을 막연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도의 주검은 낙원으로 가서 행복한 쉼을 가지며 부활을 가다립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부활을 통해 천국으로 덜어가는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그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잊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계21:4)
그 때 우리는 주님을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영광으로 영광에 이른 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18절)
우리 수도교회
성도님들 마지막 때에 한 분도 실족이 없이 모두 천국에 덜어 가십시다. 그리고 이 놀라운 축복의 소식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입술로 담대히 전하는 한통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맺습니다.
롬 10:15에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얼마나 아름다우냐!”
그리스도의 한 통의 편지를 전하는 성도는 참 아름다운 발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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