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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6/18/2017

주일예배 조회 수 1972 추천 수 0 2017.06.20 08:53:38
하나님 사랑 아버지 사랑
눅15:11-326/18
   6/18/17
오늘은 Father Day입니다.
그 동안 가장으로 아내의 남편으로 자녀의 부모로서 묵묵히 헌신하신 아버님들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특히 이민 오신 아버님들은 고향 문화 언어를 상실한 가운데 가정의 생계와 자녀 교육 그리고 신분 등에서 홀로 밤잠을 설치며 고뇌하는 아버지의 깊은 마음을 아내나 자녀들이 어떻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한국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함께 어버이날로 지키지만 미국은 Mother Day and Father Day 분리하여 시행하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은혜를 깊이 생각토록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미국의 아버지날 제정은 워싱턴 주 스포케인 시의 다드 라는 여인이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아빠 밑에서 5섯 자녀를 희생으로 키워주신 아버지의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아버지 생일인 6월 19일 기념하고자 하는 동기에서 시작되어 1972년 닉슨 대통령이 6월 셋째 주 일요일을 국가기념일로 선포하면서 국가 기념일이 된 것입니다.
저는 미국이 Father Day날을 별도로 지정한 것을 보면서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진 나라군아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오늘 날 아버지의 권위가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들이 그 동안 열심히 일해 왔지만 아내의 눈치를 보고 자식 눈치를 보고 심지어 두들겨 맞기도 하고 또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공원에서 길에서 노숙하는 외로운 아빠의 신세를 TV를 통해 보면서 슬픔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분명 남편은 아내의 머리 됨이고 자식의 아비로서의 권위를 부여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속이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으며 성경의 권위를 상실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처럼 속삭이는 모습이나 표현은 부족하나 그 사랑의 마음은 소리 없이 흐르는 깊은 물과 같고 태산처럼 우뚝 서 가정을 지킵니다.
행복을 전하는 우체통이란 글 중에서 태평양 연안에 천축잉어라는 바닷고기에 대한 글을 읽었습니다.
천축잉어는 암놈이 알을 낳으면 수놈이 그 알을 입에 담아 부화시킨다고 합니다.
입에 알을 담고 있는 동안 수컷은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어서 점점 쉬잔 해지고 급기야 알들이 부화하는 시점에는 기력을 다 잃어 죽고 만다고 합니다.
수놈은 죽음이 두려우면 입 안에 있는 알들을 그냥 뱉으면 그만 입니다 하지만 수놈은 죽음을 뛰어 넘는 자녀 사랑을 선택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천축잉어와 같은 사랑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탕자의 비유로 알려져 있지만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비유이기도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아버지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자기 재산을 분배 받아서 자기 마음대로 탕진 생활을 하다가 가진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탕자가 되어 짐승이 먹는 쥐엄 열매를 먹고 사람들에게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특히 당시 기근은 탕자를 더욱 배고픔을 만들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 집과 품을 그리워하며 다시 아비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탕자를 용서하며 잃은 자식을 다시 찾아 기뻐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보게 됩니다.
1. 아버지의 사랑은 끊을 수 없는 관계적 사랑입니다.
사람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 관계는 만남을 통해 주어집니다. 잘 만나야 기쁨과 행복의 관계 속에 살 수 있습니다.
유대인 종교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 가 쓴 Ich und Du  (나와 너)책에서 인간의 아름답고 진솔한 만남 관계를 말 한바 있습니다. 아름다운 만남은 나와 너의 만남에서 어떤 목적과 수단의 만남 즉 l and it 의 만남이 아닌 순수하고 친절하고 아름다운 만남인 나와 너의 관계를 말합니다.
사람에 있어 가장 원초적이고 아름다운 만남은 바로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입니다.
본문에 집나간 아들은 탕자가 되어 돌아 왔을 때 아버지는 탕자에게 호통을 치고 당장 나가라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잃어버린 아들을 찾았다고 기뻐하는 그 아버지의 모습에서 아비와 자식 간에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아버지와 탕자 간에 끊을 수 없는 사랑 관계는 하나님과 자녀간의 끊을 수 없는 사랑의 관계를 계시해 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의 진솔한 만남이 선행 되어야 합니다.
다시 부버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과의 만날 수 있는 길은 열린 마음으로 말씀(기록)을 읽고 자신의 마음을 비울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 덜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요 1:12에는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빠가 되시며 아버지와 끊을 수 없는 사랑 안에 거하며 보혜사 성령님이 내주 하시므로 죄를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환난과 곤고나 고통 속에서 늘 새 사람으로 새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롬 8: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
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어떤 분이 저에게 상담을 하였습니다. 목사님!
저는 나쁜 짓을 하도 만이 해서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버리신 것 같아요. 저는 그 분에게 해병대 출신들이 하는 말 가운데 “한번 해병을 영원한 해병”이다란 말을 들으신 적이 있지요.
마찬 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 관계도 형성 되면 결코 그 자녀를 버리지 않습니다. 결코 사탄에게 내어 주지 않습니다.
설영 잠시 죄를 범 하였을 지라도 보혜사 성령님의 신비스러운 내주하심으로 다시 주님께 돌아오게 하시고 또 진실한 죄를 고백을 하게 하시며 부자간에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의 관계 속에 거하게 하시고 잠시 유보된 자녀 자리를 회복케 하십니다. 그리고 자녀를 자리에서 떠나게 유혹했던 죄와 사탄을 물리치고 승리케 함을 답해 준 적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여러분들은 아버지 사랑 안에 거하고 계심을 믿습니까?
가끔
은혜의 성도들을 만나면 그의 입술에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고 우리 
가정을 우리 자녀를 우리 교회를 사랑해 주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보
면서 저 역시 행복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왕자요 공주의 신분으로 세상에 살면서 가슴을 펴
고 세상의 것에 준 옥 들지 말고 아버지와 끊을 수 없는 깊은 사랑 속에서 때
를 따라 늦은 비 이른비의 은혜를 받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
복 합니다.
2. 아버지의 사랑은 기다림의 미학(aesthetics of waiting)입니다.
기다림의 미학이란 말은 대개 미학 비평에서 언급하는 말입니다.
가령
여러분들이 소시 적에 경험해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약속하고 기다림을 경험 해 보셨을 것입니다. 약속 시간이 가까워 오면 시계를 보고 문 쪽으로 시선을 고정하여 기다림을 가집니다. 이 때 그 기다림은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들입니다. 그러나 기다림이 때로는 참고 인내해야 하는 고통 또한 수 반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하는 것은? 그 기다림의 순간이 인내하고 참아야 하지만 결국 만나거나 성취하는 기쁨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전13장을 사랑장이라고 하는데 1절에 사랑의 미학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사랑의 대상이 주어 질 때 때로는 속이 상해도 오래 참을 줄 알아야 사랑의 미학을 이룹니다.
정말 참기 힘들어 못 견딜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참고 인내하신 모습을 생각해보시면 서 참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아버지는 집나간 아들을 기다림의 미학을 봅니다.
아직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탕자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란 말씀이 나옵니다. 아버지가 달려가서 아들을 맞이하는 것은 아버지가 집 나간 아들을 그 많 큼 목이 빠지도록 기다린 증거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비록 불순종 하여 집을 나갔지만 그 아들이 돌아올 것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은 언제나 동구 밖 길에 있습니다.
가끔 아버지는 이런 말을 합니다.
애들아 오늘 밤에는 대문을 걸지 두지 말라. 집 나간 자녀가 돌아 올 수 있으니까? 오늘이나 내일이나 자식을 기다립니다.
하나님의 사랑 역시 기다림의 미학으로 표현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타락하고 범죄 한 자녀지만/ 돌아오기를 지금도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527장 1절 같이 불로 봅시다. 
어서 돌아 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 보다 넓고 넓어“
여러분 아버지 품은 참 쉼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이고 기다림의 미학입니다.
3. 달려가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머뭇거리면 사랑이 식어지고 사랑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신속해야 합니다.
탕자비유에서 아버지의 자녀 사랑은 신속히 달려가는 사랑이 이였습니다.
본문에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달려가” 라는 말은 아버지의 달려가는 사랑 마음 입니다(눅15:20).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하기 위해 달려갑니다. 그러나 자식은 서서히 걸어오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아비와 자식의 사랑의 차이입니다.
특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어른이 달려간다라는 표현은 들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 성인들은 달리다가 발목이나 발바닥을 보이는 것은 주변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과 다름 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아버지는 자식을 사랑함에 있어 아버지 체면도 남의 손가락질 받는 것도 감수하면서 달려가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사랑 원리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을 위해 하나님이란 체면도 포기하고 그 십자가에게 고통과 조롱과 침 뱉음을 당하면서 죽으심으로 자녀 사랑을 확증 한 것입니다.
동방격언(Trench)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께 1인치(2.5cm)다가 가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1엘(1ell은 54인치)가까이 오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걸어가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려오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정성 컷 예배드리고 몸 된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예물을 드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 할 때 하나님은 달려와서 넘치는 축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아버지의 달려가는 사랑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4.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용서가 전제될 때 참 사랑을 할 수 있다. 용서는 자기용서부터 해야 다른 사람을 용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탕자는 지난날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을 아들이 될 수 없음으로 단지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고 애원 할 때 아버지는 지난날 모든 잘못을 묻지도 않고 아비는 탕자가 돌아온 사실 만으로 벌서 아들을 죄를 용서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심도 똑 같은 원리입니다.
주님은 먼저 십자가상에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 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 하나이다. 주님이 먼저 용서를 선언 한 것입니다.
혹시 무거운 죄 때문에 염려하고 초초하고 두려워하는 심령이 있습니까?
아버지께로 나아가십시오.
그 순간 주님은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며 자녀로서 사랑 속에 거하게 하시며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의 용서의 복음이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충만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5. 편애가 없는 사랑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에는 편애가 없어야 합니다.
야곱 가정 환난은 야곱은 에서를 더 사랑했고 리브가 는 야곱을 더 사랑했던 편애 때문입니다.
본문에 탕자가 돌아와서 온통 잔치를 베푸는 것을 본 형이 불평합니다.
왜 값 비 싼 송아지를 잡고 돈을 들여 잔치를 하는 가? 둘째는 이미 자기의 재산을 분배해 간 상태가 아닌가?
아들들의 마음은 아버지의 마음에 있지 않고 오직 자기에게 돌아올 재산에 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11절)
그러나 아버지는 편애 없이 두 자녀에게 재산을 공정하게 분배해 줍니다.
재산을 달라고 한 것은 둘째 아들이지만 아버지는 나머지 재산을 큰 아들의 몫으로 귀속케 한 것입니다(12절)
당시 재산 분배는 장남에게 2/3 차님은 1/3 그 대신 장남은 부모를 뫼시고 섬기며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버지는 불평하는 첫째에게 말합니다. 너는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남아 있는 것이 네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버지는 두 자녀에게 물질 보다.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가르칩니다.
네 동생이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잃었다가 얻은 것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좋은 아버지가 좋은 자녀를 만들어냅니다.
우리는 자녀에게 물질보다 더 귀한 것은 형제 사랑의 관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주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가르치는 부모님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표현하신 사랑입니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표현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 아버지는 탕자로 돌아 온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제일 좋은 옷 입힙니다. 예복은 탕자를 잔치의 주인공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손에 가락지 끼워줍니다. 가락지는 아들의 권위를 표시하는 것입니다.
발에 신을 신어 주십니다. 노예 신분이 아닌 자유인의 신분을 표시입니다. 노예들은 신을 신지 못하다
살진 송아지 잡아 잔치를 풍성히 합니다. 특별한 경우를 특히 혼례를 위해 준비한 것일지 모른다.
함께 기쁨을 나눕니다. 내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나님 역시 잃어버린 한 생명이 돌아 올 때 얼마나 기뻐합니까? 한 마리 잃은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의 양을 무리에 두고 찾으시는 분이 주님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주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득 북 받으며 살아가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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