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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8/27/2017

주일예배 조회 수 852 추천 수 0 2017.08.28 08:47:30
행복하십니까?
산상수훈(1)

마5:1-12절
8/27/17
 
당신은 행복 하십니까? 라고 질문하면
선 듯 “예” 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마음에 “행복한 만족”이 채워지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회 할 때 유 집사님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이분은 몰몬교도 입니다. 교회에 출석 하면서 가정에서 1:1 성경공부를 하였습니다. 한글도 잘 모르는 분이라서 한글을 가르치면서 성경을 같이 읽고 귀로 말씀을 듣고 열심히 성경 공부를 2년간 하였습니다.
얼마나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지 옥토 같은 마음 밭과 같았습니다.
2년 후 세례를 받고 3년 후에 집사가 됩니다.
그 집사님의 기도를 듣노라면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얼마나 순박하고 순수한지 모릅니다. 그 분은 이렇게 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나는 글도 잘 모르고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만 믿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 집사님은 배운 말씀대로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서 묵묵히 교회를 봉사합니다.
권사의 직분도 받게 되었습니다.
유 권사님은 예수를 믿고 난 후에 늘 행복해 했습니다.
권사님은 세상 사람처럼 많이 배운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많이 것을 소유한 분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항상 스마일입니다.
회사에 근무하는 동료들이 말합니다. “너는 무엇이 좋아서 항상 스마일이지”? 권사님은 서슴없이 말합니다. 나는 예수님을 내 마음에 뫼시니 행복해서 그래.
너도 예수 믿어볼래?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전도했습니다.
여러분들은 행복 하십니까?
 
행복?
사람의 마음에 내적 외적으로 편안하고 만족하고 그에 따르는 기쁨과 보람의 상태가 곧 행복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갈릴리 바다 건너편 “핫틴산” 신학적으로 “팔복 산”이라 부릅니다. 그 산에서 제자들에게 인생 최고의 행복한 마음 8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나라에 가면 팔복 산이 있습니다. 그곳 산등선에는 팔복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팔복 산에서 바라본 자연의 아름다움에 잠시 자연 행복의 자리로 초대 합니다.
팔복 산 주위는 파란 풀들이 자리고 있습니다. 수많은 양들이 평화롭게 놀고 있습니다. 팔복 산에서 바라본 갈릴리 바다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특히 해질 무렵 저녁노을은 금 빛 찬란한 오색으로 물듭니다.
갈릴리 강가에 절비하게 심겨진 가로수 나무는 저녁노을에 장관입니다. 참으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 모습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경치입니다.
예수님은 이 아름다운 산과 갈릴리 호수를 바라보면서 인생의 행복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일명 “산상수훈”이라고도 부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8가지 행복한 마음을 말씀 하셨는데 오늘은 첫 행복인 “심령이 가난한 자의 행복”에 대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심령이 가난한 자의 행복”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I. 내 심령의 공백에 세상의 소유가 아닌 주의 성령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본문 5:1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본문에 심령 이란 말의 이해가 중요합니다.
심령은 원문에 “영” “마음”을 말합니다. 벵겔 이라는 신학자는 “심령”을 “가장 깊은 곳의 자아”라고 했습니다.
아무 턴 “심령”은 마음이요 영이요 자아의 세계입니다. 이 심령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만드신 것입니다. 심령을 통해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고 교제하고 은혜의 통로요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일찍이 파스칼(Blaise Pascal)은 그의 책 팡세(Pensees: 생각이란 뜻)에서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선택은 일단 신을 믿고 보는 것이다. 왜 하나님을 믿지 않다가 지옥 가는 것보다 믿고 천당 가는 것이 항상 유리하다.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하나님이 빚어 만드신 공백”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내 심령의 공백에 무엇을 담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길을 선택됩니다. 어거스틴( Augustine)은 그의 고백록(Confessiones)에서 하나님 안에 참된 안식이 있다” 고백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행복은 오직 소유에 있다고 착각하고 자신의 심령의 공백에 오직 세상의 소유를 넣기에 집착하며 살아갑니다.
 
(1) 돈의 소유에 집착 합니다.
오직 돈만 있으면 행복 하다는 착각 속에 돈을 소유키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돈 때문에 수많은 다툼과 파괴 그리고 살인의 고통과 불행을 낳습니다.
복과재생(福過災生)입니다.
복이 너무 지나치면 도리어 재앙이 생긴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과연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요?
돈으로 천국을 살 수 있을까요?
돈으로 고급 의술과 좋은 약은 살 수 있어도 건강은 살수 없고, 돈으로 고급 침대는 살 수 있으나 평안 한 잠은 살수 없고, 돈으로 고급 주택은 살 수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살 수 없고 돈으로 고급의상은 살 수 있으나 참된 평안은 결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돈은 행복의 외적인 한 도구입니다. 돈이 있어야 육신이 먹고 입고 거처하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가지고 싶은 것 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돈은 행복의 한 도구일 뿐 심령의 만족을 주는 행복 자체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2) 쾌락의 소유에 집착합니다.
쾌락이 삶이 행복으로 착각 합니다.
수가 성 여인은 남편이 다섯입니다. 쾌락의 갈증입니다. 쾌락의 결과는 허무 질병 타락입니다.
그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나고 예수님 주시는 생수를 마시므로 쾌락의 삶에서 행복의 삶을 찾았습니다.
3) 명예와 지식이나 권력의 소유에 집착 합니다.
그것을 소유할 때 참 행복으로 살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솔로몬의 왕의 돈 명예 쾌락도 다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의 말년의 고백입니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 되도다” 창조자를 기억하라.
가끔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별로 부족함이 없이 다 가지고 있는데 왜, 내 마음이 이렇게 허전하지 내 마음이 뻥 뚫린 것 같다고 말합니다. 육신의 그릇에는 다 채워졌지만 마음의 빈 공간에 주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소유 욕구는 마치 소금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을 느낍니다. 참된 만족이 없습니다.
소유욕을 채우지 못한 그 심령에는 무력감 열등감 패배감 절망감으로 채워질 때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많은 연애 인들이나 소유욕심의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 합니다.
행복은 소유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행복하길 원하십니까?
지금 내 심령에 무엇이 채워져 있습니까?
만약 나의 심령에 세상의 소유욕으로 채워져 있다면 비우십시오. 그리고 행복을 주시는 주님을 모시십시오.
그리하면 주님은 나의 심령에 만족의 행복을 주실 뿐만 아니라 "주 안에서" 필요한 돈도 명예도 권력도 지식도 내적 심령의 행복에서 외적인 소유로 마치 물처럼 넘치게 축복하십니다.
이 것이 행복에서 행복에 이르게 하는 주님의 행복 원리입니다.
이러한 행복원리 속에서 행복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I. 심령이 가난해야 합니다.
본문에 “심령이 가난” 이란 말이 나옵니다.
심령이 가난 하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자기 자신의 파산상태를 말합니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Jaspers)는 “죽음과 절망의 창”에서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난파”(難破)한 실존의 심령이고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덴Søren Kierkegaard)는 “하나님 앞에 단독 자”로 서는 심령의 상태인데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것이고 또 내가 살고 또 죽을 수 있는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는 것.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결코 찾을 수 없는 심령의 상태가 심령의 가난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난한 심령에 대한 영적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본문의 “가난”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가 합니다.
“가난”이 무엇인가?
(1) 물질적인 면에서의 가난입니다.
가령, 나면서 앉은뱅이나 소경 같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없고 오직 다른 사람의 구호에만 의존해야 하는 “절대 빈곤 상태”입니다
(2) 도적적인 면에서 가난입니다.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소박한 정도가 아니라 “더 이상 낮아 질 수 없는 겸손의 상태“입니다.
3) 영적인 면의 가난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살 수 없는 심령의 상태입니다.
이 같은 심령은 자신의 절대적인 무능력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상태입니다. 가령, 상한 갈대나 꺼져가는 심지와 같은 연약한 심령의 상태입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주 없이 살수 없네, 죄인의 구주여" “천부여 의지 없 소서 손들고 옵니다. "주 나를 박대하시면 나 어디 가리까?
Peter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의 고백하는 것입니다.(눅5:8)
세리 삭게 오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 이여나 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입니다.(Luke 18:13)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 합니다”
사르 밧 과부는 마지막 한 줌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먹고 죽어 버리고 싶은 상태의 심령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지처서 이세벨에 쫓기어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죽기를 간청했던 엘리야의 심정이 영적인 가난입니다.
 
이처럼 심령이 가난해 지면
나의 눈에 눈물이 흐르는 심령의 회개를 합니다. 회개는 거듭나고 성령을 선물을 받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심령에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렘29:13절에 “너희는 네게 부르짖으며,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만나리라.
그 심령에는 기적과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출15:26 나는 치료하는 여호와라. 여호와 사파입니다.
12년 동안 혈우 증 여인이 예수님의 겉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간절한 믿음이 치유 받았다.
그 심령을 통해 나의 인생관이 Tuning Point 되는 순간입니다.
주를 위해 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때부터 믿음의 씨가 싹트고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민의 삶을 살면서 때로는 절망과 죽음의 한계상황을 만날 때 그래서 그 한계상황을 극복 하기위해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홀로 울며 몸부림치는 가난한 심령의 상태에 이르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결코 절망이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행복한 자리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으로 살 때 내 눈에 눈물을 거두어 주시고 주님 안에 행복의 나라로 초대합니다.
 
III, 그 행복의 나라는 “가난한 심령에 임하는 천국”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의 것이요. 천국(바실레이아.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니고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그 능력은 권능성으로 말씀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나를 통치하시고 다스리기 시작 합니다.
그러므로 천국이 내 심령에 임하는 순간 나는 행복한 존재가 됩니다.
 
바크레이 주석가에 의하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면 행복한 마음의 상태가 이루어집니다.
(1)만족입니다.
이 만족은 외부의 공격이나, 어떤 강한 자에 의하여 빼앗기거나, 소멸될 수 없는 만족스러운 상태입니다. 수가성의 여인이 마신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수의 복음입니다.
(2)기쁨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의 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16:22 “예수님께서 나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다”(요16:22)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님 만남으로 죄에서 열등감에서 비교문화에서 참 자유의 행복을 경험 합니다.
(3) 영원한 희망을 노래합니다.
이 땅에서 행복한 삶을 살다가 죽음도 고통도 아픔도 없는 천국을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에서 교목실장으로 재직 할 때 경희대 수학박사를 학위를 가진 모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예수를 전혀 영접치 않는 신앙 골통입니다. 그가 골수암에 걸려 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에서 격리되어 창문가에 저와 만납니다. 목사님 나도 죽으면 하늘나라 갈수 있나요? 예수를 영접하게 해주 세요 그리고 말씀을 읽도록 성경책을 넣어 준 일이 있습니다.
(4) 승리의 환호성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발견하고 가장 고상한 지식으로 발견했다고 환호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사랑했던 학문 물질 권세 명예도 모두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유타대학에 교환교수로 온 모 대학 기술대 학장인 백 박사가 계셨습니다. 백 박사는 철저한 유교 집안의 장남인데 그가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를 만났습니다. 매일 연구실에 화학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던 중 예수 믿고 기도하면서 연구를 하던 중 하나님의 지혜를 주어 새로운 학문을 발견하여 연구실에 춤을 덩실 덩실 추면서 환호성을 지르게 되었다고 간증한 적이 있습니다.
(5) 자족입니다.
바울은 날마다 자족하는 행복의 사람입니다. 그는 비천과 풍부를 오르내리면서 현재 주님 주시는 자족에 행복을 느끼면서 미래에 주실 그 행복을 향해 하루하루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6) 내가 나의 삶의 주인이 아니고 주님이 내 삶의 주가 되십니다. 성령님이 나의 삶을 핸들하기 시작 합니다. 따라서 복 있는 사람이 되게 하시며(시:1편) 내게 부족함이 없으며 ...내 잔이 넘치게 하는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십니다.(시23)
말씀을 맺습니다.
행복하길 원하십니까?
행복은 소유가 아닌 마음에서 시작 됩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만 의지하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십시오.
가난한 심령에 천국이 임하여 주님의 통치를 통해 영적인 희열과 기쁨과 만족과 함께 외적인 소유를 “주 안에서” 세상의 돈 명예 지식 힘 까지 넘치게 받는 영, 육의 행복을 소유하는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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