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motion Controler Right Corner
Promotion Bottom Right Corner

주일설교 9/10/2017

주일예배 조회 수 574 추천 수 0 2017.09.13 10:10:05
애통하는 자는 위로의 행복을 받습니다.(2)
마5:4-12절
9/10/17
 
80년대 풍미한 가객 이남이(본명 이창남)씨 “울고 싶어라”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남이 씨의 노래 가사 한 소절을 소개 합니다.
...
오늘 따라 왜 이리도 울적할까
내 슬픈 마음 그 누가 알아줄까
오늘 따라 왜 이리도 힘이들까
이 아픈 마음 그 누가 알아줄까
사랑은 가고 친구도 가고 모두가
울고 싶어라 울고 싶어라 이 마음
...
이남이 씨의 “울고 싶어라” 노래가 “울음 인생”의 한 단면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슬픔의 출구인 "위로함의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기도 합니다.
“프리 허그”(FREE HUG) 란 말을 들어보셨지요.
”안아주기 운동’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캠페인입니다.
호주 시드니 번화한 거리에서 시작한 이 캠페인은 한 마디로 상처를 받은 사람은 많은데 그 상처를 위로를 받을 수 없는 사회상을 반영한 캠페인 것입니다. 혹시 저 분에게 가서 상처를 위로 받으려 갔다가 더 큰 상처의 자국을 남기곤 합니다. 그래서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잠시나마 안겨 위로를 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인생이 울어야 하는가?
그 해답은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고 그 슬픔의 위로 역시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그 비결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게 처음부터 눈물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만물의 최고 걸작 품인 인간을 창조하였고 영원한 기쁨의 동산 에덴에서 살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사탄의 달콤한 유혹의 욕심에 빠졌고 또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 하는 이기적인 교만이 죽음과 눈물의 씨앗을 낳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누구나 울어야 합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울기 시작하여 성장 과정 속에서도 울고 그리고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생의 고통 앞에서 홀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울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별의 절연에서 울며 떠나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읍지애”(天泣地哀)란 말이 있습니다.“하늘이 울고 땅이 슬프한다”는 뜻으로 기막힌 슬픔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인생 살다 보면 졸지에 그런 슬픔을 당할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영웅호걸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도 “세인트 헬레나”(Saint Helena)섬에서 눈물을 뿌립니다.
이민 오신 저와 여러분들의 눈에도 삶 가운데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울음이 눈의 건강과 마음에 긍정의 요인도 있다고 하나(생화학자인 윌리엄 프레이 2세 박사) 울음 인생은 긍정 보다 아픔과 슬픔의 표상이 더 깊은 의미를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도 울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울되 그 울음이 더 큰 슬픔과 비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감격 그리고 희망의 위로를 가져다주는 행복한 울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은 그 비결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요” 라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은 본문에서 울음 보다 더 강력한 “애통” 이라는 말을 사용 하십니다.
울음이란 슬픔의 느낌을 통해서 소리 내어 울거나 속으로 우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애통(哀慟)”이란? “펜다오”(to mourn)로서 ‘심히 슬퍼하고 애통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애통은 현재 분사형으로 한번 울고 끝나는 것이 아닌 계속적으로 울어야 하고 또 억지로 애통하는 것이 아닌 능동적으로 애통하는 것입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주님 앞에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앞에 나의 죄, 나의 삶의 막힘, 그리고 이별 앞에서 목 놓아 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시는 “애통”의 의미 입니다.
그럼 주님 앞에 무엇을 애통해야 위로의 행복을 받을 수 있을 까요?
1.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해 애통하십시오.
예수님 말씀 하셨습니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성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며 동시에 개별성 입니다. 10처녀 천국잔치비유에서 등과 기름을 준비토록 명 하셨고 기름을 결코 나누어 줄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고 영원한 천국에 덜어 갈 수 있는 그 길은 오직 주님 앞에서 주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반드시 회개의 눈물이 겉으로 또는 속마음으로 흐릅니다.
가령
다윗을 보십시오.
그가 바세바를 간음한 죄를 범하고 3일 밤낮으로 금식하여 하나님 앞에 통곡하며 그 죄를 회개하였습니다.(시51:10)
어거스틴을 보십시오.
그가 16세 때 부터 패륜아가 되어 사생아를 낳고 깡패 생활을 했으며 사상이 오염된 인간쓰레기 삶이 아닙니까? 그가 밀라노 정원을 거닐다가 로마서 13:13-14절에 읽고 ‘육신의 정욕을 만족시키려 하지 말고 주 예수로 옷 입으라’는 말씀을 읽는 중 갑자기 마음이 뜨거워지고 과거에 있었던 부끄러운 삶이 기억나 눈물로 회개합니다. 그가 가난한 심령이 되었고 자신의 죄를 위하여 많이 울었습니다.
그의 “참회록”에서 “나는 무화과나무 밑에서 내 몸을 던지고 눈물의 홍수를 애서 막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고백 하였습니다.
바울은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 하는 바 악은 행하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여기서 “곤고” 라는 말이 애통이라는 말이다(롬7:19-25)
성도여러분
나의 죄 때문에 울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내 볼에 하염없이 흐르는 울음 또는 내 마음속으로 흐느끼며 우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님이 내 심령을 터치 할 때 내 마음에 울적함의 감동을 느끼는 순간도 있습니다.
주님 앞에 애통 하십시오 그리하며 나의 죄 사함과 구원의 감격과 위로함의 행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2. 절망의 삶의 자리에서 애통 하십시오.
인생은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의 고통 앞에서 때로는 나의 처지를 한탄하고 절망하고 고통 속에 울 때가 있습니다.
가령
하갈은 자기 소생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므로 광야로 쫓겨났습니다. 먹을 것, 마실 것, 거처 할 곳이 없어 광야에서 방황하며 하나님 앞에 방성대곡하니 하나님이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덜어들으시고, 샘물을 보이시며 갈 길을 보이시며 한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창21)
능력의 종 엘리야도 이세벨에게 쫓겨 로뎀 나무 아래 누워서 죽기를 구합니다.(왕상 19:4)
그 때 천사가 와서 어루만지며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을 먹게 한 후 힘을 얻어 40주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호렙산에 임하는 위로를 주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어떤 눈물의 빵을 먹고 계십니까?
나의 삶의 막힘과 갈 길을 방황하며 주여! 너무 힘이 듭니다. 라고 주님 앞에 나와 애통의 간구를 하십시오. 그리하면 주님은 위로와 함께 갈 길을 보이시며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며 언약의 축복을 주십니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약5:13)
그가 내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라고 약속하시고 계십니다(시32:8)
 
3. 자신의 질병 앞에서 애통하십시오.
히스기야(Hezekiah)는 자신의 질병에서 생명 연장을 위해 애통 합니다.(왕하20:2-5절)
그는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유언장을 쓰라고 했습니다. 오래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그는 벽을 바라다보고 심한통곡과 눈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생명을 15년을 연장해 주시는 위로를 해 주셨습니다.
성도여러분
질병 중에 있습니까? 의사와 현대 의약품만 의지하십니까? 물론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치료하는 여호와(여호와 사파) 앞에 주여 나의 병든 몸을 지금 고쳐 달라고 애통 하십시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약5:15)
히스기야 처럼 주님 앞에 애통하여 나의 질병을 치료 받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4. 이웃을 위해 애통 하십시오.
가장 가까운 이웃부터 애통 하십시오.
먼저 나의 가정의 구원을 위해 애통해야 합니다. 나의 자녀 남편 아내 부모의 구원을 위해 애통해야 합니다.
나사로와 부자 비유에서 지옥 간 부자가 천국에 있는 나사로에게 부탁한 것이 무엇입니까?
제발 자기 가족에게 연락하여 내가 있는 지옥에 오지 말도록 전해 달리는 절규가 아닙니까?
동족을 위해 애통해야 합니다.
모세는 교만하여 주님을 늘 배신하는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 자기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록(生命錄)에서 영원히 지워져 버리는 한이 있어도 민족 구원을 위해 애통 했습니다.(출32: 30-35)
사도 바울 역시 동족의 구원을 위해 내가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라고 애통 했습니다(롬9: 1-3).
교회와 성도를 위해 애통해야 합니다.
교회는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피의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힘들 때 성도가 고통 속에 있을 때 합심하며 서로가 애통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롬12:15). 이것이 교회의 본질인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 즉 참된 교제(fellowship)입니다.
초대교회는 이름다운 “코이노니아” 가 있었습니다.
 
성도여러분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한 생명의 구원을 위해 애통해야 합니다.
주님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생명을 구하기 위해 오셨고 교회도 세웠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생명구원을 최우선치 않고 항상 법이 어떻고, 제도가 어떻고, 절차가 어떻고 하면서 그 시간과 기회를 상실하다 보면 주님 보내 주신 생명을 사탄에게 빼앗길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주님이 우리에게 보내 주신 한 생명을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초점을 맞추고 모든 제도 법과 절차를 생명 구원에 맞추어야 주님 기뻐하는 교회가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교회는 인간 냄새를 풍기며 거짓과 궤사와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인간 집단에 불과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도 지난날 한 번도 생명 구원을 위해 애통하지 않고 세운 계획이나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것만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으로 착각하며 행하였던 지난날의 교회 모습에서 나와서(Calling Out) 현제 주님이 우리교회에 명하시고 보내주신 한 생명 구원을 위해 애통하고 최선을 다 하여 우리 주님께 영광을 돌리거 영광에 따른 놀라운 위로의 행복을 받는 우리 교회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5. 끝으로 애통하는 자에게 주시는 위로의 행복입니다.
본문에 “위로” 란 말은?
“파라칼레오”(parakalevw)라는 말로 “파라”(para)라는 말은 ‘~곁에’‘~‘나란히’라는 뜻이고, 칼레오(kalevw)라는 ‘부르다’는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주님 앞에 애통하는 자는 나 홀로가 아닌 주님이 곁에 같이 계시고 슬픔과 문제와 고난 속에도 항상 동행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구체적인 위로?
(1) 참된 평화로 채워집니다.
보혜사 성령은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인데 '위로자'란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위로의 영'입니다. 성도가 가난한 심령이 되어 주님 앞에 애통 할 때 성령님의 위로의 영이 임하십니다. 그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따라서 하나님 나라가 임한 애통하는 심령에 참 평안과 기쁨과 믿음을 주십니다.
성도여러분
주 앞에 애통하며 위로를 간구하십시오.
주님은 평화를 주십니다. 평화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죄 사함을 통한 하나님과의 평화(peace with God)이며 그리고 삶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평화(peace of God)입니다.(요 16:24)
찬송가 가사 처럼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 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주님 앞에 나와 나의 죄, 질병 ,삶의 막힘 그리고 이웃을 위해 애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평안과 위로를 받는 성도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2) 그 위로는 나의 무거운 짐을 져 주십니다.
호프만(Elisha Hoffman)이라는 목사님이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30마일 정도 떨어져 있는 레바논의 작은 교회에서 평생 목회를 하신 분입니다.
1894년 이른 봄 어느 날, 그는 가난한 성도의 집을 심방 했습니다.
그때 그 집 부인이 목사를 보자 통곡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녀의 가정에 큰 시련이 닥친 것을 알았습니다.
선하게 살던 가정에 어려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이었습니다. 그 가정에 참으로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간절히 기도하고 아무 말도 없이 집을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그 힘들고 어려운 성도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돌아보신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들어와 찬송가 337장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작시한 것입니다.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 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예수"
성도여러분
지금 어떤 무거운 짐 때문에 괴로워하십니까? 주님께 나와 무거운 짐을 맡기는 애통의 간구를 하십시오. 그리하여 주님께서 내 모든 짐을 맡아주시고 참된 위로의 은총을 받는 은혜의 성도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3) 동행의 위로 입니다.
주님은 애통하는 자와 동행하면서 위로함을 주십니다.
주님은 애통하는 자를 홀로 두지 않으시고 나의 삶의 현장에 고통의 현장에 기쁨의 현장에 함께 동행 해 주십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주가 인도하는 대로 주와 같이 가겠네. 한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 마다 날마다 우리 걸어가리.(찬송430)
성도여러분
힘들고 지칠 때 주님 앞에 나와 애통의 간구를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이 내 손을 잡아 주시고 위로하면서 동행해 주십니다. 그리고 나의 슬픔이 변하여 한 줄기의 위로의 힘과 희망의 빛으로 다가 옵니다.
위로의 성령님과 동행하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주님의 위로의 행복을 원하십니까?
인간을 통한 위로를 구하기보다 가난한 심령이 되어서 주님 앞에 나와 나를 위해 가정 이웃을 위해 우리 교회를 위해 천국에 덜어가는 순간까지 애통의 간구를 하십시오.
그리하면 우리 주님 위로의 행복을 주십니다.
하늘의 평화로 나의 무거운 짐을 벗고 주님 나라가는 그 날까지 동행의 위로의 행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622 주일예배 주일설교 12/10/2017 2017-12-11
621 주일예배 주일설교 12/03/2017 2017-12-04
620 주일예배 주일설교 11/26/2017 2017-11-28
619 주일예배 주일설교 11/19/2017 2017-11-20
618 주일예배 주일설교 11/12/2017 2017-11-13
617 주일예배 주일설교 11/5/2017 2017-11-06
616 주일예배 주일설교 10/29/2017 2017-10-30
615 주일예배 주일설교 10/22/2017 2017-10-23
614 주일예배 주일설교 10/15/2017 2017-10-16
613 주일예배 주일설교 10/8/2017 2017-10-09
612 주일예배 주일설교 10/1/2017 2017-10-02
611 주일예배 주일설교 9/24/2017 2017-09-25
610 주일예배 주일설교 9/17/2017 2017-09-18
» 주일예배 주일설교 9/10/2017 2017-09-13
608 주일예배 주일설교 9/3/2017 2017-09-04
607 주일예배 주일설교 8/27/2017 2017-08-28
606 주일예배 주일설교 8/20/2017 2017-08-21
605 주일예배 주일설교 8/13/2017 2017-08-17
604 주일예배 주일설교 8/6/2017 2017-08-07
603 주일예배 주일설교 7/30/2017 2017-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