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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9/17/2017

주일예배 조회 수 451 추천 수 0 2017.09.18 08:03:35
그때 그 제자 나다나엘
요1:43-51
9/17/17
 
 
금년은 참으로 더웠습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 서리가 내린다는 백로(白露, 9/7)를 지나 낮과 밤이 같아지는 추분(秋分9/23)의 절기가 다가오니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코스모스 피어나는 가을이 성큼 다가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가을이 오면 꼭 한번 읽는 님의 시가 있습니다.
다형 김 현승 님의 “가을의 기도”입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가려
내가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홀로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 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김 현승 님은 가을을 기도하고 사랑하고 고독이 있는 이름다움으로 노래했다.
우리도 님의 노래처럼 가을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계절 못 다한 사랑을 나누는 계절 그리고 말씀 앞에서 단독자로 홀로 서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발견하는 계절이 되기를 바랍니다.
러시아의 심리학자이자 소설가인 도스토예프스키(Fyodor Mikhailovich Dostoevskii 1821-1881)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생에 있어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거짓말을 않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거짓말을 믿지 않는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전 세계가 가짜 뉴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가짜와 거짓은 진실을 왜곡하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게 하고 또 죄의 자리로 유인하는 매우 나쁜 행위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교계나 교회와 성도들의 입술에서도 거짓과 유언비어가 난무 하여 서로 상처를 주고 영혼을 병들게 하고 시험에 빠지게 하고 그러다 보니 바른 은혜와 축복에서 멀어지는 불행을 맞습니다.
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까요?
자기의 유익과 욕심 그리고 자기자리 보존 또는 만들기 위해서 또 거짓을 만드는 간사한 마음 때문입니다.
사전에 보니 간사(奸詐,subtile)는 간교하고 교활하고 사악하여 거짓으로 다
른 사람의 마음을 홀기거나 알랑거림을 일컫는 말이다.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매우 좋지 않는 말이 아닙니까?
가령
간사한 사람을 고기를 잡는 낚시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낚시꾼은 고기를 잡기 위해 모든 간교한 방법으로 고기를 속입니다. 고기에게 움직이는 미끼인 지렁이나 가짜 메탈 물고기를 사용하고 또 떡 밥을 주어 고기 앞에 알랑거리게 하여 덥석 먹게 합니다.
그래서 고기를 유인하여 입질하게 만들어 놓고 딱 걸리면 사정없이 낙아 채지 않습니까?
낚시꾼이 고기 속이는 것과 같이 사람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간교한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간교하고 거짓말의 대명사가 바로 사탄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창3).이 뱀은 아담과 하와를 거짓과 간교한 수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하였고 그 결과 인생은 파라다이스인 에덴에서 쫓겨 나사 죄 죽음 질병 근심의 씨앗을 낳았습니다
여러분
성도의 마음에 사탄이 덜어 가면 내 영혼이 병이 들고 그 입술에는 거짓말로 다른 사람을 홀기고 알랑거리는 간교한 입술이 됩니다.
목회를 해 오다 보면 교회 마다 꼭 간사한 사람이 있습니다. 목회를 힘들게 하고 교회 문제를 부각시켜 어지럽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수도교회는 아직까지는 이런 간교한 사람을 만나지 않아서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시32:1-2 보면
복 있는 사람은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시편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순수한 믿음 중심의 삶을 살면 늘 손해 당하고 상처 
받고 살아가는분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향해 바로 같이 
산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사람 보기에는 바보 같이 보이나 하나님은 그를 인정하며 간사가 없
는 성도를 궁극적인 승리와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됩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마음에 간사가 없는 아름다운 신앙인격자 한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다나엘”입니다.
나다나엘 이란 이름은 좀 생소한 이름입니다. 성경에 요한복음 두 곳에 만 언
급되어 있기때문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나다나엘이 바돌로메와 동일인 이라고도 합니다(Meyer, Zahn 
등)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그 이름처럼 하나님께 인정받은 예
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는 가나 출신으로 빌립과 절친 이기도 합니다.
교부들의 역사 자료에 의하면 그는 율법에 전문가이고 학자이며 예언자로 기
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며 메시아의 도래를 
열망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하루는 무화과나무 아래서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던 중 친구 빌립
이 와서 나는 메시아를 만났다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 메시아는 갈릴리 
출신 예수라고 전합니다.
그 말은 들은 나다나엘은 어찌 나사렛에서 메사아가 나올 수 있는가?
역사적으로 보면 나사렛 지역은 예로부터 자기가 사는 가나 지역과 달리 무
식한 사람들이모여 사는 곳이 아닌가? 하며 믿지 않으려고 할 때 빌립은 의심
이 되면 "와보라“(Come and See) 권하니 빌립의 권유에 못 이겨 예수님을 
대면하게 됩니다.
사실 전도는 빌립처럼 내가 만난 예수를 전할 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
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일이 바로 생명의 전도입니다. 요즘 우리 교회 성
도님들이 열심히 전도하고 계십니다. 감사하고 축복 받을 일입니다.
예수를 만난 나다나엘은 모든 의혹이 다 사라지고 예수를 영접하고 주님의 
제자가 된 것 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나다나엘의 신앙(Faith)과 인격(Personality)을 칭
찬 하고 계십니다.
나다나엘은 어떤 신앙과 인격(Personality)을 소유 했을까요?

1. 참 이스라엘의 인격 소유자 였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보는 순간 하신 말씀이 “보라 이는 참 이스라
엘 사람이라 그속에 간사가 없도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본문에 세 가지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1) “보라” 는 말씀입니다.
“보라” 원문 성경은 “이데”(Ιδού)로서 감탄형 이다. 영어로 "See"다. 예수님
이 감탄할 정도의 거짓이 없는 신앙과 인격을 소유한 젊은이를 보았기 때문
입니다.
가끔 성도사이에 그 분은 정말 진실하고 훌륭하신 장로 집사 성도지 라
고 칭찬하는말을 많이 들을 때가 많습니다.
이런 말을 듣는 성도가 많은 교회는 전도가 절로 되며 부흥이 됩니다.
 
(2) “참 이스라엘”입니다.
보라 고 감탄하신 예수님은 “너야 말로 참 이스라엘 이군아”입니다.
참(“알레데스")은 True입니다.
예수님 당시 모든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혈통을 앞세워 정통 이스라엘이
라고 자랑하지만,예수님은 성전에 모인 이들에게는 오히려 독사의 자식
들아(마 23:33)라고 무섭게 책망하신 것을 볼 때 성전에 거짓 이스라엘
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유대인 무리들 가운데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보는 순간 너야 말로 
“참 이스라엘“이군아 라고 칭찬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Israel) 뜻은 무엇일까?
이 말의 배경인 평생 속임과 거짓으로 살아온 야곱(아버지, 형, 외삼촌
을 속임)은 와 삼촌으로부터 도망처서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얍복강에 
이르게 되었을 때 강 건너 자기가속인 형 에서와의 만남에 두려움을 느
끼면서 하나님 앞에 밤을 새우면서 자기의 생명의보존과 무사히 압복 
강을 건너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면서 씨름하듯 필사의 기도를 한 
것입니다.
사자가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라고 말하자 야곱은 “당신이 내
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합니다.
그때 사자가 말합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입니다. 다시는 너를 야
곱이라 부르지않고 새 이름인 이스라엘로 부르게 하겠다고 응답을 주셨
습니다. 새 이름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새 존재(New being) 또는 다시 태어 난(born again)자
를 뜻합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기도의 응답이요, 그리고 기도하면 세
상에서 이김을 주시는 약속이 아닙니까?
신약에 와서 이스라엘의 뜻은 하나님의 통치나 지배를 받는 하나님의 
백성인 즉 성도를 지칭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통치로 내 심령
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영적인 이스라엘인 것입니다.
암 턴 예수님은 나다나엘이야 말로 하나님의 통지를 받고 있는 거짓이 없는 
진실한 참 이스라엘의 인격 소유자임을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3) 네 마음에 “간사”가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
간사가 없는 것은 앞에 이미 말씀 드렸듯이 사탄이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거짓과 속임이 없는 진리만을 말하는 정직하
고 바른 입술의 소유자를 말 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이 보라 수도교회 성도는 거짓이 없고 가짜 뉴스를 만들지 않는 진
실한 참 이스라엘 교회라고 칭찬받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2.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기도하는 신앙인격의 소유자입니다.
성도가 참된 인격을 소유키 위해서는 말씀을 배우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의 인격으로 다듬어져 가기 때문입니다. 마치 설모 없는 돌이 
석수장이의 손에 잡히면 멋진 조각을 만들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인
격과 신앙으로 만드시는 영적석수장이요 토기장이 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좌우의 어떤 날선 검 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영혼의 호흡으로 나의 병든 영혼을 치유하고 말씀을 깨닫게 
하고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은사를 받고 축복의 통로이며 모든 문제 해결을 
받고 나의 거짓 입술과 죄를 회개케하며 아름다운 인격으로 변화 받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다나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고 배우는 사람으로 
특히 메시아 오기를 갈망하는 사람이요 또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빌립이 메시아 이신 예수님께 나다나엘을 소개 할 때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부르기 전에 이미 그가 무화과 나무아래서 기도하는 나다나엘을 보았다고 말
씀하십니다.
지금도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막에 사는 원주민(베드윈)들은 매우 낙천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시내 아파트를 주고 생활비를 제공하다고 해도 많은 “베드윈” 들은 
그 사막의 삶을 고집합니다.
이들 집 앞에는 높이가 5m 정도이고 가지가 8m 정도의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밑에 다락을 만들고 방으로 사용하기도하고 또 기도처소로 사용 하
곤 합니다.
아마 예수님이 영적으로 보신 나다나엘도 무화과나무 밑의 다락에서 율법을 
읽고 기도하는모습을 보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 배우고 기도하는 사람은 인격의 변화뿐만 아니라 결코 망하지 않습니
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울 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성도에게 준 특
권이요 축복 입니다.
가령
기도한 밀톤은 실낙원 단테는 신곡 존 번연의 천로역정 등은 영감으로 쓴 저
술이고 악성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인 영웅은 완벽한 인격과 영웅적 성격을 
뚜렷하게 한 작품으로하나님의 영감으로 작곡한 작품이 아닙니까?
 
우리도 나다나엘과 같은 예수님이 인정하는 신앙인격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말씀 열심히 배우고 기도하십시오.
그리하여 나다나엘 같은 인격과 축복으로 채움 받는 우리 수도 교회 성도님
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3. 신앙고백이 분명한 신앙인격을 소유 했습니다.
성숙한 인격은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에서 출발됩니다.
주님을 나의 주 나의 왕으로 고백하는 순간부터 나의 삶의 모든 부분이 나 중
심에서 하나님중심으로 변화되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인격
과 삶을 핸들하시며 축복 하시며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49절에 보면 나다나엘의 분명한 신앙고백을 통한 그의 인격을 볼 수 있
습니다.
나다나엘은 그동안 오실 메시아를 소망하고 있었고 또 자신의 기도하는 모습
까지 이미꿰뚫어 보고 계신 예수님이야 말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
라엘의 왕이로소이다.
라고 즉각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나다나엘 같이 신앙고백을 한 사람으로 베드로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합니다.
내 눈으로 내 손으로 만져 보지 않고는 부활의 주님을 믿지 않겠다는 도마도 
부활의 주님을만나는 순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고백합니다.(20:28)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사형 집행을 했던 이방인 백부장도 주님이 십자가에서 
운명 시 땅이진동하고 바위가 터지고 흑암이 되는 것을 보고 진실로 하나님
의 아들로 고백 합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가 바른 예수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주님
에 대한 나의주로 나의 왕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
고 있기 때문에 시험에 덜고 갈등하고 실패하고 은혜와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다나엘처럼 분명한 나의 주 신앙고백을 통해 예수님의 신앙인격을 배우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4. 나다나엘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 축복을 받았습니다.
나다나엘이 참 이스라엘이 되고 말씀과 기도를 하고 주님을 나의 주로 고백
하며 살 때하늘이 열리는 이상을 보았습니다.
 
(1) 주님의 능력을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본문 50절에 “이 보다 더 큰일을 보았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보다 큰일은 
먼저 예수가메시아인 고백이고 더 큰일은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주님의 초
자연적인 능력을 가지신분임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바울도 마찬 가지입니다. 다메섹의 부활의 주님을 만났고 그는 고백 합니다. 
주 안에서 할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2) 하나님과 언제나 교제할 수 있습니다.
본문1:51절에 “하늘이 열리고” 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하늘의 열림은 현재완료수동태분사형으로 한 순간도 닫힘이 없는 항상 열려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성도는 항상 주님과 열린 기도를 나눌 수 있으며 그 기도를 통해서 나의 모든 문제를 의논 할 수 있고 또 해결 받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능력(권능성)을 경험하므로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열렸습니다.
(3) 하나님의 천사의 보호를 받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사자가 인자위에 오르 락 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의 사자는 천사를 의미하며 그 천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의 역할을하는 메신저입니다.
천사는 하나님과 믿는 성도 사이에 주님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주님이 함께 동행하는 임마누엘 소식을 전하며 그리고 내가 힘들고 지쳐 있을 때 위로와 용기의 새 힘을 전해주며 기도의 응답을 전하는 이 천사를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나다나엘처럼 주님이 인정하는 인격과 신앙의 사
람이 내 옆에 동행한다면 참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나다나엘 보다 더 고귀한 인품을 지닌 분이 내 옆에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입
니다.
주님과 함께 하면 언제나 거짓과 간사가 없는 아름다운 인격으로 변화 받습
니다. 그리고 주님의 능력을 받으며 교제하며 천사의 보호로 행복의 나날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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