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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0/1/2017

주일예배 조회 수 753 추천 수 0 2017.10.02 09:20:25
더 나은 본향
히11:13-16절
10/1/2017
 
미국 시민권자가 미국 국제공항에 입국하면
입국 심사관이 Welcome To Hometown 이라고 인사합니다. 고향(故鄕)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이번 주 10/4 일이 한국은 추석(秋夕)인 한가위입니다.
올해도 전 국민의 75%인 3,700만 명이 고향을 방문하는 민족대이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이민 오신 여러분들도 고향 생각이 나실 것입니다.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는 것일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향수(鄕愁)는 인간 감성(Patos)의 차원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향수란 노스탤지어(Nostalgia)란 말인데 이 말은 Greek "nostos"(return)와 ‘algia(pain)의 합성어에서 온 말입니다. 즉 “돌아가고 싶어서 고통스러워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향수병(鄕愁病)이란 말까지 생겨난 것 아닙니까?
동물에게“귀소본능”歸巢本能)이 있는 동물들이 많습니다.
“귀소본능”은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회귀하는 성질”을 말합니다.
가령
연어 뱀장어 꿀벌 개매 비둘기 제비 등등 많이 있는데요.
그 중 연어를 보면 강바닥 모래와 자갈 속에서 부화(孵化)한 치어(稚魚)가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4년 정도 보낸 후 성어(成魚)가 되어 산란 때가 되면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돌아옵니다. 연어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TV를 통해 보면 때로는 곰에게 물려 죽기고 하고 세찬 물결과 바위에 부디 쳐서 심한 고통과 상처를 내면서 까지 올라와서 산란하고 생을 마감하는 광경을 봅니다. 이것이 귀소본능의 성질입니다.
이 같은 동물의 귀소본능이 “본향”을 사모하는 사람에게도 있다는 말입니다.
 
인생에게는 3가지 고향이 있습니다.
1. 육신의 고향입니다.
육신의 고향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입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 친척이 있는 혈연의 고향을 말합니다.
그리고 어린 시절 동무들과 함께 뒷동산에 올라 풀피리 불며 시냇가에서 가재를 잡으며 물장구치던 옛 추억이 있기에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노산 이 은상 씨가 고향과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지은 현대시조 "가고파"가 있습니다.
시조 중 몇 소절을 말씀드리면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그 잔잔한 고향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때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그 뛰놀던 고향동무 지금은 다 무얼 하는 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러나
그리움과 향수로 가득한 육신의 고향은 때와 시간이 지나면서 그 때 그 모습도 사라져 버립니다.
한국 고향을 방문하고 오신 분들의 한결같은 말씀은?
고향에 가 보니 너무 많이 변해서 내가 살았던 고향의 옛 모습도 네 친구도 온데간데없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고향은 눈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지난날의 추억인 고향 향수만 마음에 품고 돌아옵니다. 이것이 두 번째 고향인 마음의 고향입니다.
2. 마음의 고향입니다.
고향의 외적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그 때 그 고향에서 함께 했던 부모 친구 친척 등 옛 동무들과 함께 했던 추억을 생각하며 마음의 향수에 잠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의 고향 역시 육신의 고향처럼 시간이 지나면 마음에서 사라져 버리는 임시적인 고향이 됩니다.
여기서 우리 인생은 육신과 마음의 고향과 비교 할 수 없는 더 나은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 번째 고향인 더 나은 본향입니다.
 
3. 더 나은 영원한 본향입니다.
더 나은 본향은 성경에서 말하는 고향입니다. 오늘 본문에 믿음의 조상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6절).
더 나은 본향은 비교급입니다. 이 말은 다분히 본향에 대한 비교를 말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고향과 마음의 고향은 임시적이고 죽음과 고통과 아픔이 점철된 임시적인 고향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나은 영원한 본향을 계시한 것입니다.
더 나은 본 향은 본문에서 “하늘”에 있고 하나님이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에 “하늘” 또는 "한성”은 바로 천국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Βασιλεία του Θεου) 로서 “Kingdom of God”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며 성도가 마지막 덜어가야 할 영원한 본향입니다. 천국은 죽음과 질병과 고통이 없는 파라다이스의 행복한 한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 이 땅에 오셨어 최초로 선포하신 복음입니다(막1:15) 그리고 주님이 성도를 위해 미리 예비하신 처소입니다(요14:1-3)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천국인 새 하늘과 새 땅의 환상을 봅니다(계21:1-8절)
새 땅과 새 하늘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 강이 흐르는 곳이며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 없으며 다시 저주가 없고 어린양의 보좌가 있으며 햇볕도 등불도 필요 없는 천국의 빛 아래서 주님과 함께 세세토록 왕 노릇하는 곳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빌3:20)라고 증거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본문에 믿음의 선진들은 그 더 나은 본 향을 사모 하였습니다.
 
성도여러분
원래 인간은 본향을 사모토록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영적 귀소본능이 있는 것입니다.
전3:2에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생은 나그네요 Tent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정한 시간에 부르시면 나의 인생텐트를 철수하고 hometown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임시적인 육신의 고향과 마음의 고향을 넘어 더 나은 영원한 본향인 천국을 사모하며 나의 인생 마지막 날에 그 본향에 덜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사는 우리 수도교회 성도님들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그 더 나은 본향에 덜어 갈 수 있을까? 
1. “나그네 인생”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나그네 인생에 대해 크게 두 가지로 이해해 볼 수 가 있습니다.
세상의 기준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인생을 “나그네” 라고 부릅니다. 최 희준 씨가 부른 "하숙생" 노래 말 가사를 보면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구름이 흘러가듯 정처 없이 흘러서 간다.
최 희준 씨의 노래 말 가사에 언급한 나그네 인생은 어디서 왔어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면서 그 져 살아가는 나그네 존재임을 노래했습니다. 그 나그네 인생은 더 나은 본향을 알지 못하고 늘 육신의 고향과 마음의 고향 향수에 매여 살아갑니다.
그리고 무속사상처럼 이승에서 고통과 아픔의 나그네 생활을 하다가 죽으면 막연한 내세인 저승에 간다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나그네에 대한 가르칩니다.
성경 역시 인생은 “나그네”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땅에 사는 인생은 외국인과 나그네라고 말하고 있으며(13절) Peter사도는 인생을 ”나그네와 행인“으로 말씀하였습니다(벧전2:11).
아브라함 역시 나그네 인생임을 고백 합니다. 아브라함은 갈 대아 우르인 육신의 고향을 떠나 아내와 함께 타향살이를 하며 떠돌아다니다가 아내 사라가 백 이십칠(127)에 죽습니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다 죽은 아내를 애통하며 그를 묻기 위해 가나안 땅 헷 족속에게 찾아가서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아내를 묻을 매장지를 달라고 말합니다(창 23장 1절에서 4절)
야곱 또한 바로 왕 앞에서 “내 나그네 세월이 일백 삼십년(130)이니 이다”라고 고백합니다(창47:9)
모세 또한 바로 왕궁을 탈출하여 사십 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나그네 길을 살았다고 하였습니다.(사도행전 7장 29절)
그렇습니다.
성경은 분명 인생은 "나그네"임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나그네는 “어디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세상의 나그네 개념과는 분명히 달리 인생이 가야할 본향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서양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 미리 묘비 문을 썼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 묘비에는 다음과 같이 글이 쓰여 져 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아 당신들이 지금 존재하듯이 나도 그러 했노라. 그러나 이제 내가 죽어 있듯이 당신들도 죽어야 할 것이다. 나를 따를 준비를 하여라.
어느 날 한 여행객이 이 비문을 읽고 나서 거기에다 몇 자를 더 추가해서 적었습니다. 당신이 어떤 길로 갔는지 알지 못하는 한 나는 당신을 따를 의사가 없노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야곱의 고백처럼 “험한 세월"의 삶을 살아가는 나그네 존재인 동시에 보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을 분명한 깨달음 속에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2. 삶의 관심이 달라져야 합니다.
이태리 나폴리 현으로 가면 고대 로마도시 폼페이(Pompeii)를 만납니다.
폼페이는 당시 수많은 무역상이 모이는 괘락과 환락도시의 상징입니다. 제가 폼페이 연구차 같을 때 보존된 어떤 여관에 덜어가서 보니 Pront Desk 뒤쪽 벽에 그림이 하나 그려져 있습니다. 사람이 일단 여관에 덜어오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위치에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그림은 세 가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돈 음식 쾌락에 관한 것입니다.
여관 점원은 손님이 어떤 그림에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 손님 취향에 맞게 안내 와 서비스를 했다고 합니다. 그 환락의 도시는 AD 79년의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도시 전체가 매장 되었고 현재 과거 도시 형태와 화석과 분석(噴石)이 발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도시 였습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성도는 바라보는 관점이 폼페이 사람들의 관심처럼 오직 돈 괘락 음식 명예 권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폴 틸리히의 말처럼 긍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과 그분이 약속하신 그 본향에 관심을 두고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주님이 예배해 두신 그 도성에 덜어가려면 현재 나의 나그네 삶이 비록 고통과 서러움이 있을 지라도 성도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과 예비해 주신 본향을 사모하며 천국에 덜어가는 순간까지 성령님과 동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믿음의 순례 길을 걸어야 합니다.
본문에
아브라함은 그 본향에 대한 확신 속에서 믿음의 순례 길을 걸었습니다.
(1) 믿음의 조상들은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 했습니다.
특히 아브라함과 믿음의 족장들은 한결같이 눈물겨운 나그네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갈대아 우르를 떠난 후에 가나안에서 흉년이 맞이했고(창12:10)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전쟁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때 마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믿음으로 환경을 극복하며 믿음의 순례 길에서 승리 했습니다.
(2) 어떤 힘든 여건 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언약을 잡고 살았습니다.
특히 가나안 땅에 흉년으로 고난 속에 있을 때 그들이 나온 육신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갈 대아 우르는 세계 4대 문명의 첫발상지 중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 있었기 때문에 나그네 삶 보다는 정착되고 편리한 생활과 인간적인 따뜻함과 부족이 없는 곳으로 비교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 14절을 보면 그가 육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육신의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본향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의 순례를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덤까지 약속의 땅에 안치 하지 않습니까?
(3) 믿음의 순례 길에서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받는 축복은 놀랍습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고, 야곱을 새 이스라엘로, 요셉의 애굽 총리대신이 되어 흉년에서 민족을 구합니다. 본문에 믿음의 선진들은 다 믿음에 따라 살다가 죽었으며 그리고 그 본향을 환영하며 바라보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3절)
성도여러분
우리도 믿음의 선진들처럼 믿음의 순례 길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비록 조국 떠나 고향과 문화와 언의 상실 가운데 살고 있는 나그네 삶은 눈물 젖은 빵을 먹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분의 우리에게 본향의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나그네인 성도를 홀로 두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시는 주님과 함께 믿음의 순례 길에서 승리하며 주님 부르실 때 주님이 계신 본향에 덜어가는 은혜와 축복을 받는 우리 수도교회 성도님들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4. 하나님 앞에 칭찬 받는“나그네 삶의 보고서를 준비해야 합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는 나그네 삶의 보고서(벧전2:11-12)가 무엇일까요? 
(1) 주님과 여주 동행의 삶입니다.
주님과 늘 교제하며 속삭이며 동행하는 삶을 우리 주님 기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제를 방해하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 나그네 삶의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나의와 순서와 관계없습니다. 오늘 주님이 나에게 생명과 시간과 기회와 물질을 주실 때 한 생명이라도 잉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교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이 무엇입니까?
현재 이곳에서 어떻게 하면 한 생명이라도 구원 할 수 있을까에 고민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주님은 다음 마을을 건너게 하시고 새 비전을 주시고 놀랍게 그 걸음을 인도하십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 하였으매 큰일을 내게 맡기리니” 또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 할 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것은 여호와라”고 말씀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바울은 하나님 앞에 “멋진 나그네 삶의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요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니라”(딤후4:7-8) 
 
그렇습니다.
나그네인 성도는 본향에서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벧전2:12). 그 때 주님은 나의 나그네 삶의 보고서를 보시고 면류관과 칭찬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는 비록 나그네 삶이 힘들고 고통의 따르지만 믿음의 선진들처럼 잘 믿고 잘 살고 잘 죽어 본향에 덜어가서 주님 예비하고 계시는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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