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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0/8/2017

주일예배 조회 수 184 추천 수 0 2017.10.09 10:39:58
주의 만찬’(Lord's Supper)으로 초대
고전11:23~27
10/8/17
 
오늘
예배는 예수님이 제정하신 주의 만찬을 전 세계교회가 기념하는 세계성찬 주일로 지킵니다. 세계 성찬 주일은 1936년 미국 장로교(PCUSA)에서 10월 첫 주를 처음으로 제정하고 1940년에 미국 전국교회연합회(Federal Council of Churches)가 성찬주일을 받아들였고, 그 후 1982년 페루의 수도 리마에 모였던 WCC(세계교회협의회)가 가톨릭과 정교회를 포함한 세계 교회가 성만찬을 통한 일치를 추구하며 매년 10월 첫째 주일을 지켜오고 있다.
물론 교단과 교파와 교회에 따라 시행 시기는 다소 차이가 있다.
 
1972년도 안데스 산맥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여 45명의 승객이 72일간 사투 끝에 16명이 살아남은 안타까운 보도를 전 세계인들이 접했습니다.
당시 보도된 기사에 의하면 1972/10/12일 우루과이 몬테비데오(Montevideo)에서 이륙하여 칠레로 향한 Fair child 비행기 안에는 15명의 아마추어 럭비선수들과 응원단 25명 그리고 승무원 5명 도합 45명이 탐승하고 있었습니다. 기후가 나빠져 아르헨티나 맨도사에서 잠시 기착 했지만 선수들의 극성에 못이여 다시 칠레를 향하여 가던 중 4000m의 높은 안데스 산맥 근처에서 강풍에 휘청 거리다가 비행기 날개가 산에 부디 처 중심을 잃고 추락했습니다.
12명은 즉사 했고 생존자 33명은 흰 눈으로 덮인 영하 30도를 오르는 추위와 강풍 속에서 배고픔과 공기 부족으로 연약한 동료들은 10분 만에 싸늘한 시체로 변했습니다.
특히 배고픔을 견딜 수 없어 먹을 것이란 죽은 동료의 살을 뜯고 흐르는 피를 먹는 것 외에 는 없었습니다. 도덕도 종교도 양심도 떠난 그 상황에서 오직 살아남는 것뿐입니다. 시체는 얼어서 썩지 않았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동료 시체라도 먹기로 합의하에 누군가 먼저 넙적 다리를 뜯어먹는 모습을 보이고 모두 먹기 시작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 72일 만에 16명의 기적의 생존자가 구조 되었습니다.
생존자중 “호세” 청년”의 신앙고백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주일학교 예배와 성만찬(聖晩餐)에 빠지지 않았던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학생시절에 교회에 한 주일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하나님의 집에는 살지를 않았습니다. 신자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사실 신앙이 없었습니다. 저는 눈 덮인 산에서 죽음과 싸우며 비로소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수없이 성찬(聖餐)에 참여했으나 기계적으로 빵과 포도주를 든 것뿐이며 그 뜻이 내 가슴에 와 닿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나 산 위에서 죽은 친구의 살 조각을 손에 들었을 때 그것이 예수님의 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사랑이 무엇이며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이 시간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만찬에 초대 받았습니다.
참으로 은혜와 축복의 자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의 죄 사함과 구원 그리고 주의 영의 임재로 하나 됨의 교제를 누리는 축복을 경험하고 확인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주의 만찬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의 만찬은?
1.주님이 직접 제정하신 거룩한 예식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23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바울은 성찬을 행함에 있어 그 성찬의 제정자가 주님이며 주님으로부터 성찬에 대한 말씀을 받았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의 만찬을 시행하시면서 유월절 음식을 드시면서 만찬을 배설 하셨기 때문에 성찬의 모형으로 구약의 유월절 기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에서의 해방을 기념하는 절기로 흠 없는 일 년 된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가족끼리 그 양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고난의 상징인“카로세드”라 불리는 “쓴나물”과 부풀지 않는 무교병의 빵을 먹었습니다.
주님의 만찬을 보면 주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십자가의 죽으셨고(요1:29, 고전 5:7)고통의 상징인 쓴 나물은 주님의 십자가의 절규이며 누룩 없는 무교병은 죄 없이 순수하신 주님이 내어주신 몸으로 상징되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로 자신의 몸을 빵으로 피 흘림을 포도주로 주의 만찬을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 만찬은 유월절의 음식을 드시면서 주님이 제정하신 것이고 바울을 그 것을 “주께 받은 것”을 전하고 있으며 오늘 우리 또한 주님의 만찬에 초대 된 것입니다.
 
2. 너희를 위한 내 몸을 내어 주신 은혜의 예식이다.
본문 24절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니”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내어주신 몸”은 3가지 의미가 주어 지니다.
 
첫째: 죄 사람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지 않고는 
나의 원죄와 자범죄를 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용서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죄 사함의 전제는 용서 입니다.주님이 십자가에 우리 죄를 용서 해 주
셨으므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성도가 주님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았다면 용서함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용서함의 삶은?
먼저 내 자신을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끌어 오르는 분노와 정죄를 내 마음으로는 용서 할 수 없습
니다. 주님이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살점이 떨어지는 몸을 주신 그 은
혜를 생각하면서 성령님의도움으로 스스로의 분노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용서를 위해서는
내 입술이 정결해 지기를 기도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아굴의 기도처럼 내 평생 내 입에서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게 해 주소서
(잠30:8)
이사야의 고백처럼 부정하고 죄악의 입술에 숫 불로 태우니 주님의 소명을 
받습니다.
주님 내가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사6:6-8)
시편기자는 141: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시고, 나의 입술을 지켜 주소서.
나 자신을 스스로 용서함의 능력이 주어질 때 형제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향해 창을 찌르고 침을 밷고 조롱 하는 무리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
주님 말씀 하십니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서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시니라. 이것이 용서의 복음입니다.
성도여러분
주의 만찬을 통하여 자기를 향해 거짓과 욕을 하는 자를 향해 이를 갈고 부들
부들 떨면서복수할 기회를 엿 보지 말고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의 죄의 용서
해 주심 같이 자신의 용서함 같이 형제를 용서 하는 능력을 체험하는 주의 만
찬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주님과 하나가 되는 은혜입니다.
주님의 몸인 떡과 잔을 마실 때 실제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믿는 화체
설(transformation)있고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주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
은 아니고 주님은성찬의 빵과 더불어 공존 한다는 성체 공존설
(consubstantiation)있으며, 주님의 떡과 잔은
상징적 기념설(symbolic memorial)의 주장도 있고 주님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예수께로 이끌어 주신다.(임재설)
이 모든 설을 종합하면 결국 주님과 하나 되고 주님과 교제하는 은혜를 누리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만찬을 통해서 주님의 성령이 떡을 먹고 잔을 마시는 순간 여러분의 심령 속에 임재 하는 은혜가 있길 축복 합니다.
그리하여 나 홀로 무거운 인생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과 교통하며 동행하는 복된 성도의 삶이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3. 주의 만찬은 새 언약의 구원입니다. 
본문 25절입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주님의 “피”가 새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는 “피”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피니라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막14:24)
성경은 두 언약이 있습니다. 옛 언약인 구약과 새 언약인 신약이 있습니다. 
옛 언약은 십계명을 돌비에 써서 기록한 율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외적인 행위를 규제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기능은 죄가 들어나게 하고 죄를 정죄하는 기능이 있으나 구원의 능력을 주지 못합니다.
따라서 옛 계약인 율법은 새 언약의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께 이르는 몽학 선
생일 뿐입니다.
반면
새 언약은 성도들의 마음에 세 겨진 복음으로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죄 사함
을 받고 구원을주시는 능력입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귀중한 피로다.
 
이 시간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면서 주님의 보혈로 새 언약의 피로 구원의 확
신을 가지며새 존재 새 사람의 능력을 힘입어 주 안에서 역동성인 승리의 축
복을 받는 성도되길 주님의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4.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25절입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 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 
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증인이란 “마르투스”란 말로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가감 없이 전하는 법적 용어입니다
(1) 주님은 복음의 대 명령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초기 기독교는 순교적인 자세로 복음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제국으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은“모든 길은 로마로”통 한다는 말처럼 막강한 힘을 소유했고 그 힘을 이용해서 정치적인 세계 통일을 위해 “로마의 평화”(Pax Romana)를 위해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사람은 오직 황제만을 신으로 섬기도록 유도 했다.
이에 걸림돌이 유일신 하나님만을 믿는 기독교도였다. 로마는 황제 아닌 하나님을 섬기고 특히 성찬을 사람의 피와 살을 뜯어 먹은 식인풍습으로 매도하고 또 남녀가 모여 애찬과 형제 자매의식에 대하여는 성적인 문란으로 규정하며 수많은 성도가 죽고 순교케 했습니다.
그런 박해 가운데서도 성도들은 신앙과 주의 성찬을 행하기 위해 지하무덤(카타콤)에 살았고 또 성도 상호간의 식별을 위해 팔이나 손목에 “물고기” 그림을 새겨 서로를 확인 했다. 물고기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생명 받쳐 복음의 증인들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시간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저와 여러분들도 복음 증인의 삶을 사시길 축복 합니다.
 
(2) 주님을 배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탈리아 북부 밀라노에 가면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성당”이 있습니다. 그 성당 수도원 식당 벽에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미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가 예수님의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을 벽화 하였습니다.
예수님 최후 만찬 배경은 요 13:22-30절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하는 말씀을 배경으로 그린 작품입니다.“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서 나를 팔아넘길 자가 있느니라“는 말씀입니다.
이 최후의 만찬 그림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문과 신비스러움이 공존 하고 있는 것은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 자신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눠 주시며 나를 기념하라고 하신 주의 만찬인 점에서 그 그림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습니다.
주의 만찬 그림에는 주님의 크신 은혜와 함께 스승을 배신자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님의 배신자인 가룟 유다는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 주님을 직접 팔아먹습니다. 그러나 넒게 보면 나의 유익과 생각과 판단으로 주님의 복음의 방해꾼이 된다면 그것 또한 주님을 배신하는 삶입니다.
배신자의 삶은 참 불행 했습니다
단테의 신곡에는 가룟 유다는 지옥 가장 밑바닥에서 무서운 고통을 받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마태는 목을 매고 자살했고(마27:5) 사도행전은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저 창자가 흘러 나왔습니다(행1:18)
주님의 만찬 앞에서 우리는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주님과 복음을 배신하지 
말고 삽시다.
 
(3) 대 계명을 실천하는 증인의 사명입니다.
대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사
사랑의 계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
니다(마22:37-40)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주님의 만찬이 참여를 통해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몸과 살을 
주셨어 구원의
새 생명과 새 사명을 주신 주님께 감사 감격하면서 내가 선 이 자리에서 오늘
도 최선을 다하여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
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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