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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0/15/2017

주일예배 조회 수 665 추천 수 0 2017.10.16 09:43:52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행복합니다.
마5:1-12
10/15/17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오늘은 예수님의 행복시리즈 네 번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름(만족)의 행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목마름과 배고픔을 경험해보셨지요?
심한 갈증에서 한 모금의 생수나 배고픔을 느낄 때 한 조각의 빵을 먹는 그 순간에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낍니다.
인간과 동물은 목마름과 배고픔을 채우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와 열망 입습니다.
인간은 그 욕구나 열망은 기본적인 욕구에서 정신적 이상적인 열망으로 나아갑니다.
 
평생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을 연구한 메슬로우(Maslow)는 인간은 기본적인 욕망을 가진 존재로 파악하면서 욕구 단계설(Maslow's hierarchy of needs)을 주장한 바 있습니다.
1 단계는 생리 욕구다.
허기 갈증을 면하고 생명을 유지하려는 욕구로서 가장 기본인 의복, 음식, 가택과 성욕까지를 포함한다.
2단계는 안전 욕구다.
생리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위험, 위협, 박탈(剝奪)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불안을 회피하려는 욕구이다.
3단계는 애정 소속 욕구다.
가족, 친구, 친척 등과 친교를 맺고 원하는 집단에 귀속되고 싶어 하는 욕구이다.
4단계는 존경 욕구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인간의 기초가 되는 욕구이다. 자아존중과 자신감, 성취, 존중 등에 관한 욕구가 여기에 속한다.
5단계는 자아실현 욕구다.
자아실현을 하고자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려는 욕구이다. 다른 욕구와 달리 욕구가 충족될수록 더욱 증대되는 경향을 보여 ‘성장 욕구’라고 하기도 한다. 알고 이해하려는 인지 욕구나 심미 욕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6단계는 자기초월의 욕구다. 자신완성을 넘어 타인과 세계에 기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뜻한다.
특히
인간이 자아실현을 위한 성장욕구와 타인과 세계에 기여코자 하는 열망은 정신적 이성적인 고상한 열망인 것입니다.
 
2005년 6월 스텐포더 대학 졸업식에서 세계 제1의 기업인 “애풀”(Apple Computer, Inc.)였다. 창업자“스티븐 잡스”(Steve Jobs)가 15분간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의 연설 마지막 부분에 “Stay Hungry. Stay Foolish. 즉 배고픔에 머물고, 미련함에 머물고 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 했습니다. 스티븐 잡스는 “Hungry 정신”으로 세계 최고의 기업인 “애풀” 회사를 창업 한 것입니다.
그의 Hungry 정신은 결코 “노력하지 않고 공짜로 얻으려고 하는 “거지근성”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굶주림과 목마름이었습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그의 저서 “Leading Mind”에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은 “목마름”이다(Most Power is Thirsty)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신앙에도 하나님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은 행복한 신앙인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얻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은 “의” 에 대한 “목마름과 주림”은 배부름(만족)의 행복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본문 6절 말씀을 보십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1. 본문에 주님이 말씀하시는 “의”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의“(義)는 ”올바른 마음가짐과 태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세상적인 의의 개념과 다릅니다.
본문의 “의”는 “디카이 오쉬네”란 말로서, 단순히 “자기행위의 의”나 세상의 정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는 오직 하나입니다.
원문성경에 “의” 라는 말 앞에, “Ten” 이라는 정관사가 붙어서, 세상에서 말하는 여러 정의나, 다양한 “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인 하나님의 의를 가리켰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의로움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신 그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롬3:22)
따라서 십자가의 공의는 하나님이 이신 예수님이 직접 죄 값을 치룬 점에서 정의로우며 동시에 죄 사함을 통한 구원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공의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로 요약 되며 이를 인간 편에서 그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의는 바로 예수님이다.
“한자에 義(옳을 의)를 분석해 보면, 자아(我) +꼬리 없는 양(羊)이 합성되어서 = 옳을義가 된 것입니다.
나(我)혼자 있으면 “의”가 될 수 없다. 나위에 꼬리 없는 양(羊)을 올려놓으면 의가 됩니다.
그 꼬리 없는 양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따라서 하나님의 “의”는 세상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니고, 솔로몬처럼 꼬리달린 양을 천 마리 제물로 올려놔도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니며, 바리새인처럼 스스로 의인으로 자랑하고 뽐내어도 “의”를 이룰 수 가 없으며, 세상의 어떤 학문이나 타 종교나 선행이 “의”를 이룰 수 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롬3:10)
성도여러분
배부름(만족)의 행복은 의의 본체이신 주님을 믿어 믿음의 삶이 될때 채워지는 행복입니다. 2. 주님이 말씀하신 “의”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의 상태로 어떠할까요?
목마름은 육체적으로는 물 따위를 몹시 먹고 싶어 하고 또 어떤 것을 간절히 원함을 일컫는 말입니다.
주님은 “의” 에 대한 주림과 목마름의 상태를 두 단어로 명쾌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림”은 “페이나오” 란 동사 입니다.
이 주림은 잠시 배고픔을 느끼고 빵을 먹음으로 주림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림의 상태가 기아, 기근에 이르고 인생에 근원적인 배부름을 갈구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아마
예수님은 “주리다”를 “페이나오”란 말로 사용한 것은 당시 팔레스타인의 사회적인 배경에 비유하신 것 같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노동자의 1루 임금은 8페니 우리 돈으로 136원(1페니는 17원) 정도였습니다. 그 정도의 돈으로는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목마름”은 “딮사오”란 동사를 사용합니다.
이 “딮사오”란 말은 한 모금으로 생수로 잠시의 갈증을 해소하는 차원이 아니라 영원한 목마름의 갈증을 말합니다.
가령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하다가 모래바람 때문에 콧구멍 목구멍으로 모래가 덜어오면 심한 갈증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가지고 간 물이 다 떨어지고 또 갈증이 너무 심할 때는 자신이 타고 가야 할 낙타를 잡아서 그 장속에 키키한 냄새 나는 물을 먹습니다. 이 같은 갈증 상태를 “딮사오”의 목마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대개 약60- 70%가 물입니다.
몸에 물이 2%만 부족해도 갈증을 느끼고 12%만 부족하면 생명을 읽게 된다고 합니다.
본문에 “의”에 대한 갈증의 정도가 물의 양이 6-11%정도의 부족 상태로 사망 직전의 갈증상태 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물과 피를 다 쏟아서 아 목마르다고 외칠 때 그 몸의 수분이 12% 이상 모자라는 상태에 이르러 운명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주림과 갈증의 심령으로 주님을 사모하고 의를 갈망 하게 될 때 나의 영혼의 공백에 주님의 영으로 채워지며 행복의 배부름으로 축복 하십니다.
 
3. 그럼 성도가 구체적으로 갈망해야 할 “의” 는 무엇인가? 몇 가지 생각해 봅시다. 
(1) 공의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만나기를 갈망하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 연예해 보셨지요. 연애 할 때 편지로 이 메일로 아무리 해도 사랑의 결정적 단계는 만남이 아닙니까? 직접 만나보아야 사랑을 느끼고 그래야 결혼을 결정하는 것 아닙니까?
성도가 “믿음의 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형식적으로 교회 뜰이나 밟고 다니는 교회 생활에서 나와서 주님을 만나야 그 주님의 사랑의 맛을 알고 주님의 공의를 실감하고 의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마름으로 자신을 찾는 자를 만나 주시겠다고 약속 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하였습니다.
“환란 날에 부르짖으라 네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삭게오 처럼 주님 만나기 위해 체면도 버리고 뽕나무로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고 싶은 목마름을 볼 수 있다. 그 결과 삭게 오는 예수 만남으로 구원함의 의를 받았고 자신의 신체의 열등감과 비교문화에서 참 자유와 기쁨의 삶의 믿음을 소유한 것입니다.
소경 바디메오 역시 자신의 눈을 뜨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에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다윗의 자손 예수요 라고 부르짖을 때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소경이 치유되는 믿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않았습니까?
성도여러분
행복의 만족을 원하십니까? 주님 만남에 주리고 목말라 하십시오, 그리하면 주님이 만나주시고 그 믿음의 의로 구원을 주시고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는 행복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신령한 양식인 말씀에 목말라 해야 합니다.
신앙은 자라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신령한 양식인 말씀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미국의 백화점 왕이요 체신부장관 지낸 “워너 메이커”를 아실 것입니다. 그가 80세가 되던 해 한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회장님은 지난 60년 동안 사업에 크게 성공하셨는데 가장 성공적인 투자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그랬더니 그는 서슴없이 내가 10살 때 최고의 투자를 했었죠. 2달러 75센트 주고 산 가죽 성경 한 권을 샀는데 그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정식 교육도 거의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일학교에서 성경 말씀을 목말라 한 것이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 속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검과 같아서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다.
베뢰아 교회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였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결코 주리지 아니하고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시1:1~2에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했고, 계1:3에도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형통의 축복을 주십니다.
시1:3에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성도여러분
어디에 “목마름”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물질, 건강, 쾌락, 성공에 목말라 합니까? 행복한 성도는 주님의 말씀에 목말라 하면 주님께서 내 영혼에 만족 뿐 아니라 내 삶에 필요한 것으로 채워 주시는 행복의 만족을 얻습니다.
 
(3) 생명수인 성령의 충만을 목말라 해야 합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입니다. 불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은 인간은 하나님이 빗어 만드신 공백이 있다. 어거시틴(Sanctus Aurelius Augustinus)은 하나님께 안식 할 때 까지 만족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성령 충만하기를 목말라 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 하면 주님을 주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독수리 날개 치며 하늘로 올라가는 새 힘과 능력을 공급 받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인도와 보호와 동행하는 승리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 말씀 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4) 복음 전도에 목말라 해야 한다.
성도는 마지막 주님 앞에 섭니다. 그 때 주님이 무엇을 물으실까요? 너는 평생 신앙생활을 하면서 몇 명의 생명을 낳았는가? 질문 앞에 대답할 답변을 준비해야 합니다.
성도가 생명이 있는 믿음을 소유 했다면 반드시 새 생명을 낳을 수 있습니다. 생명이 생명을 낳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전도의 대 명령을 하십니다. 마태28:19-2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전초기지로서 복음 전파에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모이기를 힘쓰고 모여 기도하고 교제하며 새 힘을 공급받아서 세상을 향해 전도 사명을 감당하는 복된 교회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5)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목말라 해야 한다.
로마 제국이 한 때 그들의 슬로건이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였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평화를 추구 했으나 그 제국은 멸망했다.
이 땅에 정의와 평회는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사명이 주님의 백성들과 교회가 하나님의 "공의의“ 이 땅에 임하도록, 목말라 해야 합니다.
아모스의 외침처럼 “정의가 하수같이 흐르는 사회를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부여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츄라벌 메이커가 아닌 피스메이커(PIECE MAKER)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먼저 사랑, 용서와 섬김의 복음을 실천할 때 이 땅에 평화가 옵니다.
이웃의 고난과 아픔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울고 웃는 목마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빛의 사명,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평화를 이루는 삶입니다.
복음 성가처럼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욕심도 없이 어둔 세상 비추어 온전히 남을 위해 살듯이나의 일생에 꿈이 있다면 이 땅에 빛과 소금되어가난한 영혼 지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고픈데나의 욕심이 나의 못난 자아가 언제나 커다란 짐되어나를 짓눌러 맘을 곤고케 하니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6) 주님 에비 해 두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목마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는 완전한 의를 이루어 지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최후 승리와 의의 본향을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벧후3:13에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4. 끝으로
의를 위하여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배부름의 행복을 주십니다.
“배부름”은 “코스 타스데 손타이”란 말입니다.
(1) 채워짐의 의미입니다.
가령, 인간은 영혼의 공백이 있는데 그 공백에 하나님으로 채워지고, 영생의 생명수로 채워지고, 하늘의 만나인 말씀으로 채지고, 성령임으로 채워질 때 의, 평강, 희락이 넘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참 행복감에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심령은 하나님이 나를 통제하고 다스립니다. 바른길 가게하시고 나의 필요를 아시고 채우시며 주님의 손 잡고 이민의 삶 가운데 동행해 주십니다. 이 얼마나 배부름의 행복입니까? 때문에 내가 고민하고 염려할 필요가 없다. 나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바라며 승리의 삶을 영위 하십니다. (2) 살찌움의 의미입니다. 바삭 마른 삶이 아니라 통실하게 살찐 행복으로 덧 입혀 주십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하나님의 “의” 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영적인 기쁨이 채워질 뿐 아니라 육신의 풍성함으로 채워 주시므로 배부르고 살찌며 행복한 성도의 삶을 살아갑니다.
수도교회는 이런 행복의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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