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motion Controler Right Corner
Promotion Bottom Right Corner

주일설교 10/22/2017

주일예배 조회 수 507 추천 수 0 2017.10.23 09:15:54
그 때 그 제자 안드레
요6:1-15절
10/22/17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Αριστοτέλης)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라고 말 한 바 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은 사회를 떠나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아마 독불장군이 없다는 말이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 될 수 있습니다.
 
지난주 메슬로우의 욕구 단계 설(Maslow's hierarchy of needs)을 말씀 드렸습니다.
인간은 어떤 집단이나 사람관계에 소속하고 싶어 하는 욕구와 열망이 있습니다.
왜 인간은 사회 집단이나 사람의 관계성 속에 살아가려고 할까요?
이른 바 사회적 영향(Social influence) 때문입니다.
가령 집단에서 자기와 동일시(identification)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또 그 집단의 소속으로 인해 보상과 처벌을 피하는 순종(compliance)이 있고 올바른 것을 받아들이는 신념의 내면화(internalization)가 있다. 그리고 집단에 대한 대항 및 방관자로도 존재합니다.
 
집단은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집단의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인격과 행동의 사람들이 모여도 아름다운 연합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서로의 이질성 때문에 다툼과 상처와 갈등을 유발하는 끔찍한 장소가 되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12명의 제자 공동체를 구성했습니다.
예수 제자 공동체는 다양한 사고와 행동을 지닌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나 주님 중심으로 아름다운 연합으로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지만 때로는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크냐 하는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눅22:24절) 본문의 오병어의 기적 사건을 통해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의 진면목을 발견케 됩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교회는 다양한 성격과 배경 그리고 환경이 다른 사람이 모여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성도들이 예수님 중심 말씀 중심 목회중심에서서 성령님의 인도와 순종 속에 믿음생활을 하면 그 교회는 사랑 용서 섬김이 넘치는 행복한 교회가 되고 성도 역시 축복 받는 행복한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교회가 예수님 중심 보다 인간중심이 되고 불순종과 부정적인 사고의 교인들의 모임이 될 때 누가 크냐의 다툼이 일어나고 늘 분열과 서로의 상처를 주고받는 끔직한 인간 집단으로 전락 될 수 있습니다.
특히 평상시 잘 몰랐던 성도들의 신앙이 교회의 어려운 상황에서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신앙인의 진면목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제자 공동체 속에 안드레는 주님 중심에 서서 일한 제자였습니다.
1. 그는 예수님의 의중(mind)에 초점을 맞추어 신앙생활을 한 제자였습니다.
직장에서 일을 잘 한다고 칭찬을 받는 직원은 그 직장의 CEO의 의중을 잘 파악하여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안드레는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의 의중에 맞추어 신앙생활을 한 인물입니다.
본문에
예수님의 의중은 광야에 모인 무리들에게 저녁을 먹게 하고자 했습니다.
본 5절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며 빌립을 시험코자 하신 말씀이지만 옆에 듣고 있던 안드레는 주님께서 베 세다 광야에 모인 많은 무리를 먹이시고자 하는 그 의중을 파악한 것입니다.
비록
주님이 안드레에게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안드레는 주님의 의중을 파악한 후 자신이 어떻게 하면 주님의 사역에 헌신 할까를 생각하면서 이 광야에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을 얼마나 있는지? 또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어떤 것이 있는가를 살피는 가운데 한 어린아이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5개를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주님께 가져온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축사하여 5000명을 먹게 하고 12광주리나 남게 하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도 안드레처럼 주님과 함께하면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의 삶 가운데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 은혜의 비결은?
안드레처럼 나 중심의 생각을 내려놓고 오직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의중(mind)이 무엇이며 또 나를 향하여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길입니다.
성경은 주님의 의중으로 가득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구약 민수기를 보면 택한 백성에게 베풀어 주실 주님의 이중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 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6:24-26)
뿐만 아니라 성도가 무엇을 행해야 은혜를 받는 자리에 이르게 되는 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이니라”(살전5:16-18)
이 같은 주님 의중의 발견하는 길은 안드레처럼 말씀을 듣는 가운데 또는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의 의중이 내 마음에 찔림으로 감사로 기쁨으로 나의 심령을 노크 합니다.
그 때
그 순간 주신 주님의 말씀을 놓치지 말고 그 말씀을 부여잡고 주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이 올 때 까지 말씀이 성취 될 때 까지 인내의 믿음으로 기다리십시오.
때로는 하박국처럼 Why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또 How long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합1:5-13) 라고 주님께 항변 할 수 있으나 주님의 답변은 믿음으로 기다려라 라(wait)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기도 응답은 기도 가운데 말씀을 듣는 가운데 묵묵히 봉사하는 가운데 내 심령의 깊은 곳에 말씀의 확신으로 말 할 수 없는 평강과 기쁨으로 그리고 감사로 충만케 하십니다.
그 때 주 성령님 오신 것입니다. 응답이 역사 하신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행하십시오.
그 때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의 삶 가운데 지극히 작은 문제에서부터 응답해 주시고 또 내가 생각지도 않던 일들에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내가 염려하고 있는 일들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주님의 놀라운 기적과 응답을 받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구원의 자리로 초대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의 아빠로 모시고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나의 아빠이신 주님은 택한 자녀들에게 은혜와 승리의 삶을 살기 원하며 마지막 천국에 덜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수도교회 성도님들 우리 아버지의 의중(Mind)에 합 한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는 성실한 제자였습니다.
성실(誠實)의 성(誠) 자를 한자로 보니 말씀 언 변에 이 룰 성입니다.
입술의 말이 성실해야 맡은 일에 성실 합니다. 입만 열면 부도 수표가 되면 곤란 합니다. 입만 열면 부정적인 말과 거짓 그리고 아마 그럴 거야 식으로 추론하여 지울 수 없는 입술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성실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92년도 이스라엘 성지 연구차 갔을 때 두비(Dubi)라는 기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몇 분의 목사님들과 교수님들을 태운 미니 밴 기사였습니다.
Dubi는 50대 정도로 유대교에서 개종한 기독교인 입니다.
저는 그 차를 탈 때마다 기분이 매우 상쾌했습니다. 잠시 쉼을 가진 후 돌아와 차를 탈 때면 언제 차 안에 공기 순환과 함께 차의 내 외부를 늘 깨끗하게 청소를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두비의 운전석 앞 밭침 대에 두 글귀가 쓰여 져 있습니다. l love God, l love Dubi입니다. 저는 그 글귀를 보면서 두비야 말로 정말 주님의 자녀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성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정말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 안에서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성실한 사람입니다.
 
안드레는 성실한 제자였습니다.
주님이 안드레를 Caling 할 때 그는 갈릴리 바다 동쪽 베 세다 에서 형 시몬과 함께 열심히 고기 거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안드레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안드레를 불러서 사람 낚는 어부 즉 제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안드레는 주님으로부터 제일먼저 제자로 부름 받아 주님 곁에서 늘 주님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서 자신이 전도한 베드로를 비롯하여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의 주위에서 맴돌면서 중추적인 일을 하게 됩니다. 세상 말로 좀 밀린 것 같고 자신이 스스로 소외된 느낌이 덜지 않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드레는 그런 위치나 지위에 대한 서운함을 보인 적이 없고 오직 주님이 자신을 부실 때의 소명 즉,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그 부르심의 사명에 최선을 다한 성실한 제자였습니다.
안드레가 주님을 향한 성실은 그가 주님의 의중을 잘 파악하였기 때문입니다.
평소 주님의 의중은 99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으시는 마음입니다. 한 생명을 천하 보다 귀하게 여기며 구원키 위해 전 생애를 드린 선교적인 삶이였습니다.
안드레 역시 주님의 의중에 따라 오직 전도요 Mission에 전력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형제 Peter 주께 인도 했으며 헬라인을 전도했고 어린이를 주께 인도했으며 흑해지역의 스구디아 사람을 인도했습니다.
스구디아 사람은 러시아인으로 사람들이 대하기를 꺼려했던 족속이다. 벵겔에 의하면 야만인 중의 야만인이라고 표현했고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짐승과 다른 바 없는 사람이다.
전설에 의하면 안드레는 평생 갈라디아, 비잔틴, 가바 도기아, 비드니아 등에 선교했으며 소아시아 지역 아가야지방 “파트라스”에서 복음 전하면서 순교했습니다.
안드레는 정말 예수님의 의중에 따라 산 성실한 제자요. 주님의 최초의 선교사 였습니다.
그는 러시아 헬라 스코틀랜드 세 나라에서 수호하는 성자로 불리는 위대한 이름을 남겼습니다. 영국의 국기에 X형의 표시는 안드레가 X형 십자가를 지고 순교를 상징 합니다.
 
성도여러분
누가 주님의 인정을 받고 축복 받고 사랑받는 성도가 될 수 있을까요?
주님의 의중 따라 행하는 삶을 사십시오, 주님이 나를 부르신 것은 나에게 구원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한 생명 이라고 전도하는 Mission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인배처럼 자기 지위나 자리나 탐내고 부정적인 입술과 시기나 질투의 사람이 아니라 안드레처럼 자신의 지위나 위치가 어떠하든지 게이 치 않고 오직 주님 맡겨주신 직분과 봉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주님 높여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 수도교회 성도님들 주님의 의중인 미션의 삶으로 누가 무슨 말을 하듯 묵묵히 주신 직분의 자리에서 성실하면 주님 높여주시고 범사에 복된 성도로 축복해 주십니다.
이런 성도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3. 그는 믿음의 눈을 가진 제자 였습니다.
주님의 의중을 파악하고 그 의중에 따라 믿고 행하면 주님께서 반듯이 그 행함에 따른 능력과 기적과 문제 해결이 이루어 주실 줄 믿은 믿음의 눈이 필요합니다.
안드레는 믿음의 눈을 가진 제자였습니다.
본문 9절입니다.
주님께 주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5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언 듯 보면 부정적인 의미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빌립을 시험코자 했던 말씀과 빌립의 태도를 보면 안드레의 그 믿음의 눈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5-8)
예수님은 베세 다 광야에 큰 무리를 보시고,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빌립은 한마디로 불가능합니다. 이들을 먹게 하려면 적어도 200데나리온(1년 인캄 정도의 금액)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 수중에는 그런 돈이 없습니다. 설영 돈이 있다 해도 이 많은 빵을 구하기 위해서는 예루살렘까지 가야 하는데 지금 저녁이라 갈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빨리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입니다.
빌립은?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의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을 상실 했습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예수님을 앞에 두고도 능력의 주님을 바라보지 못한 믿음의 눈을 상실한 것입니다. 반면 안드레는 빌립과 대조적으로 주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5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이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안드레의 이 같은 태도는 이 광야에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자신의 노력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다음 결과는 예수께 맡기는 믿음의 눈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즉시 어린아이를 예수께 데리고 오니 주님은 천민들이 먹는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2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니 5,000을 먹게 하는 놀라운 역사를 가능케 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안드레의 믿음의 눈이 주님과 함께 기적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도 이민의 삶의 절망 앞에서 때로는 문제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계십니까?
빌립처럼 인간적인 계산과 이성과 합리적인 사고로 현실과 환경만 보고 절망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안드레처럼 자신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를 주님께 맡 길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할 수 있다는 그 믿음으로 오늘도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리하면 주님께서 안드레의 믿음에 대한 기적의 은혜를 보여 주셨듯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수많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 갈 수 있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4. 그는 사랑의 실천하는 제자였습니다.
가장 큰 기적은 사랑입니다. 나폴레온(Napoléon)은 1퍼센트의 가능성 그것이 나의 길이다.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는 명언을 남기면서 그는 힘으로 세계를 정복 하려 했으나 그의 종말은 세인트헬레나(Saint Helena)섬 유배되어 흘러가는 저 구름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으며 생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힘과 권력이 아닌 사랑의 힘으로 세계를 정복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전체를 보면 인간 구원을 위한 사랑 그 자체의 삶이였습니다.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했고(요3:16) 당시 소외계층인 죄인과 세리와 창기와 함께 친구가 되셨고 당시 사람대접을 받지 못한 수많은 여인들을 사람대접을 해 주신 사랑의 주님 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를 누구 보다 사랑 했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 사랑을 확증 하셨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의 사랑의 의중을 본 받아서 그도 당시 소외층과 특히 어린아이에게 사랑의 관심을 실천했습니다.
그 사랑의 열매가 한 아이가 물고기와 떡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고 또 신속히 그를 주님께 데려 올 수 있었고 오병이어 기적의 사랑의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주님의 기적은 현재 나의 삶과 가정과 우리 교회와 세상에서 일어 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면 나의 삶에 사랑의 기적이 나타납니다. 사람을 바꾸는 힘은 바로 사랑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의 피 흘려 죽으신 그 사랑으로 죄 사함과 구원의 사랑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의 빗 진자로서 주님의 사랑을 내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용서와 섬김의 사랑을 실천하면 주님의 큰 사랑이 여러분을 고이 품어주십니다. 나의 아픔과 눈물을 닥아 주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세상에 우뚝 서게 해 주십니다.
이 가을에 오직 한 사람을 택하여 사랑하게 하소서 라고 노래한 김 현승 님의 가을의 기도처럼 하나님과 나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므로 주님의 더 큰 사랑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622 주일예배 주일설교 12/10/2017 2017-12-11
621 주일예배 주일설교 12/03/2017 2017-12-04
620 주일예배 주일설교 11/26/2017 2017-11-28
619 주일예배 주일설교 11/19/2017 2017-11-20
618 주일예배 주일설교 11/12/2017 2017-11-13
617 주일예배 주일설교 11/5/2017 2017-11-06
616 주일예배 주일설교 10/29/2017 2017-10-30
» 주일예배 주일설교 10/22/2017 2017-10-23
614 주일예배 주일설교 10/15/2017 2017-10-16
613 주일예배 주일설교 10/8/2017 2017-10-09
612 주일예배 주일설교 10/1/2017 2017-10-02
611 주일예배 주일설교 9/24/2017 2017-09-25
610 주일예배 주일설교 9/17/2017 2017-09-18
609 주일예배 주일설교 9/10/2017 2017-09-13
608 주일예배 주일설교 9/3/2017 2017-09-04
607 주일예배 주일설교 8/27/2017 2017-08-28
606 주일예배 주일설교 8/20/2017 2017-08-21
605 주일예배 주일설교 8/13/2017 2017-08-17
604 주일예배 주일설교 8/6/2017 2017-08-07
603 주일예배 주일설교 7/30/2017 2017-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