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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0/29/2017

주일예배 조회 수 404 추천 수 0 2017.10.30 10:11:26
영원한 기념비를 세우라
수4:21-22(1-24)
10/29/2017
 
오늘 예배는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종교개혁(Protestant Reformation)을 일으킨 지 500주년을 맞는 뜻 깊은 종교개혁기념 주일로 지킵니다.
종교개혁의 본산인 독일을 비롯하여 전 세계 기독교(Protestant,항거자)가 종교 개혁 주일을 기념해 오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결정적인 발단은 독일의 신학자요 신부인 마틴 루터가 1517년 10 31일 독일 비튼브그대학교(Wittenberg University)에 위치한 캐슬교회(Castle Church)문에 Roman Catholic Church 면죄부 및 모순을 95개 논조로 반박하는 문서를 부착 하면서 도화선이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의 결정적 요인이 된 면죄부(lndulgences)는 죄를 사면해 주는 조치가 아니고 연옥 형벌의 죄를 탕감해주는 문서입니다.
Roman Catholic Church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 연옥이라는 교리를 만들어 놓고 지옥 형벌은 면했지만 천국에 덜어가기에는 미흡한 영혼을 면죄부를 통해 연옥형벌을 깨끗이 한 후 천국에 덜어가게 해 주는 자체 교리입니다.
이 면죄부의 최초 발부는 십자군 원정에 참여한 군인에게 발부 되었고 이 성전을 수행하다 사망한 경우 하나님의 보상차원으로 실시되었다. 십자군 원정에 참여치 않는 사람은 선행을 통해 면죄부를 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선행의 항목 중 헌금으로 면죄부를 구입하면 선행에 해당 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사망한 부모 형제 친척까지 연옥 형벌을 탕감해 주는 것으로 확대 적용 하였고 교황청은 그 면죄부 판매 재원으로 당시 성 베드로 성당 건축에 부족한 재정을 충당함은 물론 교회 부를 축적하는 도구로 활용하면서 교회는 부패와 타락으로 떨어지게 된 것이다.
Roman Catholic Church에서 만든 연옥 교리는 성경에 없다. 사람은 현혹 시키는 죄의 주술과 다를 바 없다.
성경에 있는 낙원은 연옥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입니다. 낙원은 믿는 자가 죽는 즉시 머무는 행복한 파라다이스이며 천국의 부분입니다. 주님 재림을 기다리는 곳이다. 재림 때 성도는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 덜어가는 은혜를 입는 것입니다. 그 때 까지 바울은 잠은 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비 성서적인 연옥교리와 면죄부 판매하는 Roman Catholic Church에 대해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은혜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선언 했습니다. 그 후 칼벵 등 종교 개혁자들과 함께 다섯 솔라(Five Solas)로 종교개혁의 슬로건을 삼았습니다.
오직성경(Sola Scriptura) 오직은혜(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오직 영광(Soli Deo Gloria) 입니다.
오늘 말씀은 여호수아 4장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요단을 기적으로 건너게 하여 그토록 소망했던 가나안 땅 길갈에 도착케 하신 후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요단강을 건너는 기적의 표징을 통해 영원한 기념비를 세우도록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과 함께 종교개혁의 정신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주님이 세우도록 명하신 영원한 기념비는 어떤 기념비일까요?
1. 오직 믿음의 기념비입니다.
종교개혁자들 오직믿음(sola fide)으로 구원을 받는 것과 그 맥을 같이합니다. 본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널 때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믿고 순종한 결단이 기적의 요단을 건너게 한 것입니다.
오직 믿음의 기념비는 길갈과 요단강 두 곳에 세워 졌습니다.
먼저 요단 강 가운데 세웠진 기념비입니다.
본문9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날 까지 거기에 있더라”
왜 하나님이 강 가운데 기념비를 세우게 하십니까?
눈에 보이는 길갈의 기념비는 이해되지만 강 속에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게 함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전 까지 광야의 삶은 온통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기적과 표적을 경험하며 살아 온 표적신앙 이였습니다.
가령
홍해와 요단을 가르시고 불기둥 구름기둥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 쳐서 샘물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 정착 후 기적의 만나도 그치고 표적 보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가르치기 위합니다.
특히 후손들이 요단 강물이 줄어 요단강 속에 세워진 하나님의 역사적인 현장을 직접 보면서 더 확고한 믿음의 백성으로 세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깊은 뜻은 성도에게 때로는 눈에 보이는 표적을 주시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역사를 통해 오직 믿음으로 살게 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믿음의 역사를 경험 하는 믿음의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2. 오직 은혜의 기념비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의 개혁 슬로건이 오직 은혜(Sola Gratia)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 길갈에 이르게 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20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요단에게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요단을 건너게 해주신 그 은혜를 영원히 기억토록 하기 위함입니다.
길갈이란 뜻이 “기억” 이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억의 장소 길갈에서 기념비를 세우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품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은혜의 배반에 익숙한 민족입니다.
가령
지난날 하나님이 애굽의 노예에서 기적의 탈출을 하게 하셨고 홍해와 요단을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며 40년 광야생활에서 만나와 메추라기 생수까지 공급하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일들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걸핏 하면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만들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망언을 합니다.
특히
자신들의 영도자인 모세를 원망하는 일을 서슴없이 행하였고 돌로 처 죽이려고 하고 시내산 밑에서는 자신들을 인도할 새로운 금송아지 신과 새 지도자를 만들려고 하는 죄를 서슴지 않고 자행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백성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치 말고 기억하게 하기 위하여 요단강에서 13km나 되는 먼 길을 12지파 대표들로 무거운 돌을 메고 오게 하여 길갈에서 12돌로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제가 많은 목회를 해 오면서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교회를 통해 받은 은혜를 헌 신짝처럼 버리는 성도를 수없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성도여러분
주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해서 어떻게 은혜와 축복을 기대 하십니까? 우리는 그런 신앙생활하지 맙시다. 나의 삶 가운데 베풀어 주셨던 그 은혜를 골짜기를 기억하면서 그 은혜를 배반치 말고 감사하며 살아 보십시오.
때로는 나의 삶의 여정에서 모든 것이 송두리 채 떠내려가는 절망의 자리에서 내가 울면서 절규의 기도를 드릴 때도 그 곳에 나 홀로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곁에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절망과 눈물을 흘리는 심령에 조용히 노크 합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딸아!
“네가 아직도 나를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믿느냐” 물으십니다.
눈물의 빵을 먹으면서 울먹이면서도 예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라고 고백하는 믿음의 성도가 될 때 주님 새 힘과 지혜 주시어 무너진 성터를 다시 재건케 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며 더 큰 은혜의 바다로 더 큰 축복으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충만히 주십니다. 이런 은혜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오직 말씀의 기념비를 세웁니다.
종교 개혁자들의 슬로건이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이였습니다.
길갈에 “기념비”를 세운 것은 오직 말씀 안에서 정신적인 고향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 길갈은 이스라엘 민족의 정신적인 고향 이였습니다.
주님 약속의 땅이 성취된 길갈에서 기념비를 세우는 때는 “푸른 잎이 돋는 달”인 정월 아빕월로서 애굽에서 나 온지 40년에 4일 모자라는 역사적인 날로 결코 잊을 수 없는 감격 유월절을맞이했기 때문입니다.
삼상11장에 보면 이스라엘 초대왕인 사울이 왕으로 길갈에서 취임을 했습니다.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2세들은 길갈에서 성별의식인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요단 서편의 지파들에게 땅을 분배한 곳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갈갈은 이스라엘의 유서 깊은 정신적인 고향이 틀림이 없습니다.
영국에 가면 웨스터민스터사원(Westminster Abbey)이 있습니다. 이곳은 역대 왕들이 묻힌 무덤 사원입니다. 이곳에서 왕들의 대관식이 열린 곳입니다. 19세기 이전까지 영국의 옥스포더(University of Oxford) 캠브리지((University of Cambridge) 웨스트민스터신학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3대 유명 대학이 있던 곳이 기도 했습니다.
이곳에서 영어성경인 킹 제임스 번역이 이루어 진 곳이고 또 구약의 1/3 신약의 반이 번역된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대영제국에 대해 불리던 슬로건은 "세계의 심장은 영국이고 영국의 심장은 런던이며 런던의 심장은 웨스트민스트 사원” 이라고 불리 울 정도로 영국인의 정신적인 고향입니다.
성도의 정신적인 고향은 어디 일까요? 영원한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지만 이 땅에서 성경과 교회가 삶 가운데 정신적인 중심의 고향이 될 때 주님의 풍성한 은혜와 형통함을 받습니다.
 
2) 또 길갈은 하나님이 말씀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엘리야가 선지학교를 세우고 전국적으로 백성을 가르친 곳입니다(왕하2)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인 사무엘도 이곳을 순회하며 하나님의 가르쳤습니다.
본문 20-24절에 보면 여호와의 강한 손을 “알게 하여”라고 말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22-24)
하나님은 길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직 성경입니다.
하나님이 토록 길갈에 축복을 주셨지만 후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타락 했습니다. 불행이 시작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할 때 그 길갈의 기념비는 한갖 쓸모없는 돌무더기에 불과했습니다. 호세아선지는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을 정죄합니다.(호9:5) 아모스선지도 길갈로 덜어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 지역의 백성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성도의 정신적 고향은 오직 말씀과 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넘치는 은혜를 공급 받습니다.
말씀과 교회에 주가 되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말씀 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민의 삶이 힘들고 지칠수록 주님의 몸인 교회와 말씀인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되어 야지 날마다 순간마다 은혜의 영양분을 공급받습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십니다. 인도와 보호와 형통으로 축복을 받습니다.
반대로
주님의 몸인 교회와 말씀에서 떨어지면 은혜의 영양분을 공급 받지 못하니 나의 영혼이 병들고 범사의 축복에서 멀어지는 불행을 맞이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나의 정신적인 고향인 주님 안에서 교회 안에서 말씀 안에서 포도나무 가지가 되어 넘치는 은혜와 삶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복된 성도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4. 하나 된 백성의 기념비입니다.
하나님은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신 것은 온 백성이 하나님 중심 신앙으로 하나 되게 하십니다.
하나 된 백성을 위하여
1) 하나님이 나의 새 백성 됨을 선포해 주신 것입니다.
길갈은 “치욕이 벗겨졌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치욕의 430년 애굽의 노예생활과 바로를 신으로 섬기며 옛 사람의 구습으로 살았으나 요단을 건너면서 이 모든 치욕의 부산물을 강물에 수장시킨 것입니다.
마치 세례를 받은 것처럼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사43말씀처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의 백성 됨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주님의 공주요 왕자인 것입니다.
그리고
2) 하나님은 새 백성이 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 되게 했습니다.
19절입니다.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넌 후 새로운 땅에 12지파가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그리고 12지파를 상징하는 돌 12개로 기념비 세우는 의식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감격의 첫 마음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앞으로 길갈에서 지파별로 땅을 분배하고 흩어져서 그 지파가 스스로 그 지역을 다스려야 하는 사사시대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12지파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후일 중앙 성소를 만들고 지파동맹을 맺어 12지파가 함께 모여 예배하고 흩어져 같습니다.
오직 한 분의 하나님만 찬양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의 한 하나님만 고백합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땅에는 수많은 잡신을 접하게 되며 자칫 하나님을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12지파가 길갈에서 맺은 지파동맹인 “암픽지오닉”(Amphictyony)는 모이고 흩어지는 동맹으로 신약교회의 표상으로 모이는 교회(Coming Church) 흩어지는 교회(sending Church) 상을 계시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직 하나님 중심 말씀중심 교회중심 성령중심으로 한 마음으로 하나의 교회가 되어야 하며 그 때 주님의 교회는 듣든 하게 세워져 갈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는 주님이 철저히 운행하고 인도하십니다.
하나 됨의 원리는 내안에 너 안에가 아닌 우리 안에서 그리고 성령 안에서 십자가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수도교회는 주안에서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주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 주님 주신 은총을 넉넉히 받는 복된 성도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내 마음 속에 주님이 세계 주시는 영원한 기념비인 오직 믿음 오직성경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갑시다.
그리하여 이만의 삶 가운데 나를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요단을 믿음으로 건너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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