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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1/5/2017

주일예배 조회 수 367 추천 수 0 2017.11.06 10:31:26
위대한 자기 발견
딤전1:12-17절
11/5/17
 
가을이 깊어져 가는 11월이 시작 되었습니다.
곱게 물든 단풍이 한 잎 두 잎 떨어집니다. 그 낙엽을 밟으면서 지나온 삶의 뒤안길을 돌아보는 사색과 고독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스위스 츄리히 시에서 30분 정도 기차를 타고 가면 키스나 하트의 조그만 한 호반의 도시가 나옵니다. 그곳에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分析心理學)의 창시자인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의 연구소가 있습니다.
칼 융이 1958년도 73세 때 건립한 3층 건물 연구소입니다. 이곳에는 심리학 신학 미학 교육학 연구하는 곳입니다. 3년 연구하면 분석수련의의 자격을 받습니다.
이 연구소의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져 있습니다.
이곳에 와서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 나와 꼭 같은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고 각자 진정한 자기가 되길 바란 다고 쓰여 져 있습니다.
여러분
진정한 자기 발견의 길은 가장 쉬운 것 같지만 가장 어려운 길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자신이 누구인지 까맣게 잊고 정신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솜 우화에 12마리 돼지 소풍간 이야기가 있습니다.
12마리 돼지가 소풍을 갑니다.
강을 건넌 후 한 돼지가 수를 점검합니다. 아무리 계산해도 11마리 뿐 입니다. 또 다른 돼지가 카운터 합니다. 역시 11마리 뿐 입니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계산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남의 눈에 티는 잘도 보면서 자기 눈에 들보를 보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 또한 자기 발견을 먼저 하라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자기를 발견치 못하고 진솔한 자기 모습을 숨기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 인간관계는 슬픕니다.
그래서 유대인 종교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나와 나(l and you)의 진솔한 만남이 아닌 나와 그것(l and it)의 만남 즉, 거짓된 나와 거짓 된 그것과 만남 속에서 속고 속이며 상처주고 상처 받으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성도는 반드시 자기를 발견하여 진솔한 삶 가운데 은혜와 축복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자기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깊은 산 속에서 아마타불을 수천 번 염불하고 깊은 동굴 속에서 금욕주의 생활을 하고 수많은 철학과 학문과 도덕을 동원해도 진정한 자기 발견이 불가능합니다.
일찍이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Σωκράτης)도 평생 철학 과제를 자기 발견에 두었습니다.
그는 델포이 신전에 “너 자신을 알 지어다”라는 글을 붙여 놓고 날마다 자기 발견에 몰두 했습니다.
여러분
위대한 자기 발견의 길은 어떤 철학도 도덕도 학문도 타 종교에서 발견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만이 진정한 자기를 발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자기를 발견한 한 신앙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1. 바울은 자신이 죄인임을 발견합니다.
제가 다른 교회에서 목회 할 때 어떤 공대 교수와 대화 속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말에 강한 거부감으로 항변 했습니다. 목사님 내가 왜 죄인인가요?
사실 죄인이란 말은 세상에서 볼 때 좋은 어감을 주지 못하는 단어가 아닙니까?
때문에 예수를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나 교인 중에도 죄인이 아닌 의인의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본문에 바울 역시 예수 만나기전에는 의인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무식한 죄인으로 취급하고 핍박하고 박멸하는 데 앞장선 사람입니다.
본문 13절 초반 절에 내가 전에는 이란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사울이 주님 만나기 전 진정한 자기를 발견치 못한 옛 사람의 삶과 행동을 한 때를 말합니다.
그는 주님에 대한 훼방 자였다고 고백 합니다.
훼방자란 방해꾼을 일컫는 말입니다.
교회나 복음을 전하는 데는 꼭 방해꾼이 있습니다. 방해꾼들의 특징은 자신은 헌신치도 않으면서도 입술로 인본주의적인 사고로 내가 없으면 안 되고 무엇 때문에 안 되고 갖가지 이유를 붙여서 안 된다고 하면서 주님의 일에 방해꾼의 역할을 합니다.
사울 역시 율법 주의적 관점에서 예수를 대적하고 모독하고 복음을 방해 하는 일에 앞장 선 방해꾼 훼방 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나는 복음의 방해꾼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여러분 복음의 훼방 자가 어떻게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기대 할 수 있을까요?
그는 주님에 대한 핍박 자였다고 고백 합니다.
핍박자란 따라 다니면서 못살게 구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목회하다보면 의도적으로 복음을 핍박 하는 자들을 많이 만납니다. 가령 없는 말을 만들어서 따라 다니면서 말의 고통을 주어 상처를 입혀서 복음을 방해 하는 악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본문에 사울은 복음전하는 자들을 따라 다니면서 괴롭혔습니다.
행9:1-3보면 바울은 예수 믿는 자를 죽이기 위해 살기등등한 기세로 대 제사장의 공문을 들고 다메섹으로 향했습니다.
여러분 복음에 핍박 자가 되면 은혜와 축복을 받을 것으로 생각 하십니까?
그는 주님에 대한 포횡 자였다고 고백 합니다. 포횡 자는 거만하고 짐승같이 잔인한 행동을 통하여 예수 믿는 자에게 고통을 주면서 쾌감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예수 만나기전의 사울 인생의 목적은 오직 예수와 믿는 자를 박멸하고 예수 이름을 지워버리고 교회를 뿌리 채 뽑아 버리는 것이 그의 인생 목표였습니다.
바울이 이토록 주님과 복음과 교회의 핍박 자가 된 배경을 보면 사울은 혼에 박힌 율법의 사람입니다.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 가말리엘의 수석 제자로서의 긍지를 가지며 오직 율법만이 구원의 길이며 오직 율법을 지키고 오직 율법을 거 스리는 예수와 그의 무리들을 박멸 하는 것이 가장 선으로 생각하며 사명감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울은 예수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외적으로 예수와 자신을 비교해 볼 때 학문적으로나 율법적으로나 혈통적으로나 신분적으로 볼 때 가히 예수와 비교가 되지 않는 위치였습니다.
예수는 나사렛 동네 목수의 아들로서 공부도 한 것 없는 무명의 사람입니다. 그런 예수가 어찌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며 자신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이신 하나님인가? 말도 안 된 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에게 긍휼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긍휼은 사울이 다메섹에서 부활의주님을 만나 자기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만난 후에 사울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동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행하였던 모든 악행의 열심이 자신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합니다.
본문13절 하반 절을 보면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고 탄식합니다.
그 후 사울은 자신이 알지 못하고 행한 모든 것들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고 그 죄의 용서를 위해 눈물로 회개하며 몸부림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라(행7:24) 딤전 1:5절에 나는 죄인 중에 괴수로 고백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죄인의 괴수로 고백한 것은 현재시제로서 과거에 지은 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자신이 죄인임을 분명히 고백한 것이다.
사울이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고백하는 순간 위대한 자기 발견하게 되며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 합니다.
바울이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순간 주님의 십자가 사랑이 바울의 심장을 후리 쳤습니다. 그토록 주님을 핍박했던 나를 십자가로 죄의 용서의 구원의 사랑에 감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바울은 자신이 주님의 사랑받은 존재임에 행복감에 젖어 듭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처럼 날 사랑해 주셨는데 내가 무엇 주님께 드리오리까? 라는 사명의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바울은 나는 주님의 종이요, 주님의 자녀요, 주님을 벗으로 주님과 교제하며 동행 하는 축복의 자리에 이르게 됩니다.
새 생명 얻습니다.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으로 신분이 변하게 됩니다. 율법의 종에서 복음의 종으로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사망의 결박에서 새 생명의 자유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롬6:16)
예수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발견합니다.
평생을 바쳐도 발견치 못한 진리 그 자체이신 예수를 만난 것입니다.
빌3:8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고백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심을 경험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나는 할 수 없으나 우리 주님 할 수 있음을 발견하면서 빌 4:13절의 놀라운 선언을 하지 않습니까? In Christ l can do
주님과 만남을 통해 은혜의 통로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죄를 회개할 때 주님과 나 사이에 가로 막던 죄의 담이 허물어 졌기에 언제나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은혜를 통로가 마련 된 것입니다.
히4: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깊어져 가는 가을밤 바울처럼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주님 나는 죄인임을 발견하고 고백 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이 죄인임을 고백한 바울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긍휼의 사랑 새 생명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지식 내가 힘들고 지쳐 약할 때에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 간구 할 때 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응답 받는 축복의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2. 위대한 자기 발견은 모든 것이 은혜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은혜를 받고 살아갑니다. 가령 태양과 공기와 물을 주십니다. 그러나 성도는 보편적인 은혜와 함께 특별한 구원받은 자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와 인도의 은혜 속에 살아갑니다.
바울은 자신이 도저히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의 괴수 임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은혜를 받았습니다.(롬5:12-17)
여러분
은혜는 “카리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가 깊어져 가는 가을밤입니다.
바울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사의 자리에서 바울은 지나온 복음의 삶의 뒤안길을 정리하면서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목회 서신입니다.
그가 제자 디모데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안에서 형통하게 하 시네,
하나님이 바울에게 베푸신 은혜는 풍성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인데 그 마음이 사랑의 관심으로 나타납니다. 긍휼이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않으며 무관심합니다.
본문 13절에 바울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것은 예수 믿는 제자를 죽이려고 대 제사장의 공문을 소지하고 다메섹으로 달려가든 자신을 벌하지 않고 만나주시고 구원해주신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 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많이 지어도 주님 만나면 긍휼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는 주님의 오래 참아 주신 은혜를 입었습니다.
16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당장에 멸할 수 도 있지만, 주님은 자신을 구원키 위하여 일체 오래 참아주신 큰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성도여러분
신앙은 오래 참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고통에서 일절 오래 참으신 것입니다.
은혜의 사람은 때로는 주님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교회의 평화를 위하는 일이라면 타오르는 분노도 삼키며 기도하며 주님의 인도와 주님께 심판을 맡기고 기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자신을 능하게 해 주신 은혜를 입었습니다.
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사람입니다. 다락에서 졸면서 말씀 듣다가 떨어져 죽은 유두고를 즉석에서 기도하여 살리고 옥중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와 찬미를 통해 옥문이 열리고 에베소 전도 시에는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하고 또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떠나는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였습니다. 수많은 병자를 치유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능력을 입고 살아가야 합니다.
자신을 충성되게 보사 은혜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바울은 여기에 감격이 넘쳐 습니다. 죄인의 괴수를 충성스럽게 보사 사도의 직분까지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주님 주신 직분에 감사할 때 더 큰 그릇으로 사용 받는 축복을 받습니다. 헌신짝처럼 버리면 있는 것 까지 빼앗아 가십니다.
넘치는 영적인 은혜까지 주셨습니다.
고후에서 보면 바울은 낙원 즉 셋째 하늘에 까지 끌려 올라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며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풍성한 은혜에 대한 종결적인 고백은 나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울처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살아가면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이 은혜요. 지금까지 지나온 삶의 여정이 주님의 은혜요. 수도교회에 불러 주신 것도 주님의 은혜요. 나를 충성 되게 보사 주님의 전에서 봉사할 수 있게 해 주심도 은혜임을 고백하면서. 앞으로 주님 주실 더 큰 은혜의 선물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분명한 삶의 목표를 발견했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검 앞에서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야 지난 나의 인생이 허무 하군요 라는 고백에서 떠나야 합니다. 주님 주신 나의 삶의 여정을 통해 보람과 행복을 느끼며 나는 그렇게 살았노라고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였다. 주님 감사 합니다. 라고 고백하며 하늘나라로 가야 합니다.
바울의 위대한 발견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분명한 삶의 목표를 발견 한 것입니다.
본문17절입니다.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넘치는 은혜를 받은 가운데 그는 자신의 삶의 목표가 완전히 바꾸어 졌습니다. 예수 박멸 인생에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관제와 같이 쏟았습니다.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자신의 몸도 마음도 지식도 학문도 물질도 생명까지 모든 것을 태우고 모든 것을 쏟았고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때문에 그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도니라(딤후4:6-8) 바울의 마지막 삶은 주님 앞에서 의의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소요리 문답 제1조에 사람에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성도여러분
깊어져 가는 가을밤
나의 영혼이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듯 때로는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처럼 홀로의 고독과 사색의 존재가 되어(시편 102:6-7)주님과의 깊은 만남의 교제를 통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현재 어디에 무엇을 하든지 나의 삶의 목표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겠다고 고백하며 나의 인생의 3대 엘리지인 피 눈물 땀을 흘림 같은 헌신을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때 우리 주님 영광에 따른 면류관과 함께 이 땅에서도 놀라운 은혜와 축복과 인도하심을 물 부듯이 부어 주십니다.
주님이 높여주십니다.
모든 것을 더 해 주십니다. 건강 지혜 물질 자녀 사업에서도 은혜의 축복을 받는 저와 여러분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주님 약속 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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