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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1/19/2017

주일예배 조회 수 295 추천 수 0 2017.11.20 10:55:03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골:2:6-7
                  11/19/17

오늘 예배는 지난 1년을 감사하는 추수 감사절 예배로 드립니다.
감사(感謝)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이론이 아니고 실천이며 표현입니다.
철학자 마르 텡은 감사는 최고의 예의라고 표현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예의는 늘 주님께 감사하는 삶입니다.
사람 관계에도 예의가 바른 사람은 감사를 표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행복의 파랑새가 멀리 있는 곳이 아니고 내 심령 가정 교회 내 가 머무는 곳에서 감사가 강물처럼 넘쳐흐르는 곳입니다.
독일의 한 외과 의사가 참으로 마음 아픈 수술을 집도하게 되었습니다.
한 여인이 설암(舌癌)으로 혀를 잘라야 하는 수술인데 혀를 자르지 않으면 목숨을 잃게 되고 또 혀를 자르고 나면 영영 말을 못하게 됩니다.
의사는 그 여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 보십시오 라고 말할 때 그 여인은 눈에 이슬이 맺히고 입술이 떨립니다.
눈물에 젖은 눈을 지긋 이 감고 떨리는 입술로 주님께 기도 합니다.
이윽고 눈을 뜨고 “주님 감사 합니다”라고 고백한 다음에 이제 저 혀를 절단 하세요 라고 하였습니다.
감사의 절정입니다.
넘치는 감사입니다.

본문을 보십시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데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본문에 바울은 감사를 하되 “넘치는 감사”를 하라고 하십니다.
넘치는 감사는 마치 저주지에서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 내리 듯 강요나 억지로 하는 감사가 아니고 내 입술에서 나의 삶에서 늘 주님 감사 합니다 표현 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넘치는 감사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1. 주님이 나의 주가 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에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말씀은 주님이 나의 생명을 구원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민 목회를 해 오면서 가장 안타가운 일은 성도 자신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고 구원의 감격 없이 주일 마다 종교적인 매너리즘에 빠져 교회 다니는 모습니다. 친구가 좋아서 외로워서 그저 교회 생활을 하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성도에 있어 구원의 문제는 놓칠 수 없는 생사의 문제입니다. 천국과 지옥의 문제입니다.
오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또 지금 주님 오신다면 구원 받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함을 받아야 되기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 믿고 구원의 보증 속에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성도에 있어 가장 큰 감사는 바로 내가 구원 받았다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구원 받았습니까?
나를 구원키 위해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값없이 구원해 주신 주님께 넘치는 감사가 충만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말씀은 주님이 나의 주가 되심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성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전능하신 엘솨다이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나는 주님의 종입니다.
때문에 주님의 종 된 성도는 주님이 명하시는 데로 따라 행하면 결코 실패가 없으며 절망이 없습니다.
주님은 내가 힘들고 지칠 때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지켜 주시고 힘주시고 동행해 주십니다. 주님이 나의 주님 되심에 감격하면서 오직 주님의 손을 꼭 잡고 승리의 인생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말씀은 주님이 나의 아빠 되심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게 되니 세상 대통령의 자녀가 아니라 전능하신 주님이 나의 아빠가 되는 자녀의 특권을 받습니다.
아버지의 호칭은 왠지 근엄하고 두려움의 상을 느낄 수 있지만 아빠의 호칭은 언제나 부르고 응석도 부릴 수 있는 친밀한 호칭입니다.
감사절을 맞이하면서 나에게 늘 용기와 희망을 주시는 나의 아빠가 되신 주님께 넘치는 감사로 충만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2. 넘치는 감사는 믿음의 뿌리에서 나옵니다.
본문에 믿음의 뿌리에서 세움과 교훈을 받아 행함의 감사가 넘쳐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감사를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나무는 뿌리가 근본입니다.
그 뿌리가 튼튼하고 땅에 깊이 박혀져 있으면 물이 나고 홍수가 나도 그 나무는 넘어지지 않으며 양분을 잘 흡수하여 잘 자랄 수 있고 또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시편 1편의 말씀처럼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으며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우리나라 용비어찬가 2장에 조선왕조의 영원한 표현으로 “뿌리 깊은 나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뮐 세” 곶 됴코 여름 하나니 라고 표현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나무 중에 세한삼우(歲寒三友)가 있습니다. 소나무와 대나무 매화나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은 혹한의 겨울을 이겨내는 나무로서 그 뿌리가 튼튼히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예수를 주로 받아서 구원받고 나의 삶에 주가 되며 나의 아빠라고 부르는 그 믿음의 뿌리가 바로 주님입니다. 이 주님을 믿은 믿음이 결코 흔들리지 않도록 나의 심령에 깊이 세계 져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뿌리에서 행하면 주님의 뿌리를 통해 말씀과 교훈의 영양분을 받아서 줄기와 가지가 자라나서 넘치는 감사가 있는 행함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나의 삶의 모든 일을 주님을 믿은 믿음의 뿌리에서 행하십시오. 그때 믿음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믿음의 풍성한 감사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더 풍성한 감사를 원하신다면 믿음의 뿌리에서 선행적인 감사를 행하십니다.
“선행적 감사”는 앞으로 나의 삶을 지켜 주시고 건강도 주시고 가정도 지켜 주시고 자녀의 길도 열어 주시고 사업도 축복 해 주시고 우리 교회도 부흥해 주실 줄 믿고 먼저 감사를 드릴 때 넘치는 감사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런 복된 성도들이 되기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3. 넘치는 감사는 생각하는 감사입니다,
여러분
감사란 말은 Greek로 “유카르티아”로서 감사 은혜 기쁨이란 뜻입니다.
영어에는 Thank 와 Think는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따라서 감사의 뿌리는 생각에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가령
청교도들의 첫 번째 감사가 바로 생각하는 감사였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102명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180톤가량의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시속 2마일 정도의 속도로 대서양을 건너 그 치른 바다를 117일간 항해 끝에 1620년 12월 27일 미국 동북부 플리머스(Plymouth)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혹한 추위와 인디언 원주민과 싸움과 질병 속에서 물고기 조개 짐승을 잡아먹으면서 한 겨울을 지났습니다. 절반가량이 죽어갔습니다.
그들은 그해 봄에 씨앗을 뿌려 농사를 지었습니다. 호박 옥수수 감자 등의 소박한 농작물을 재배했습니다. 추수철이 되었지만 농사도 제대로 되지 않아 거의 수확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다가올 겨울을 걱정하면서 이 어려운 상황을 변화시켜달라고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했지만 이렇다 할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신앙인이 이렇게 제안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께 달라고만 간구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예배를 드립시다. 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각 속에 감사의 조건이 조목조목 떠오릅니다.
항해도중 두 명의 친구가 죽었지만 하나님은 한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배의 돗 대가 불러질 정도로 풍랑이 있었지만 배가 파선되지 않았습니다. 원주민의 방해로 한 달 동안 상륙하지 못하고 배회 했지만 마침내 항구에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더 큰 감사는 한 명도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지난날의 베풀어 주신 감사의 조건들을 생각하면서 보잘것없이 추수한 곡식으로 음식을 만들고 칠면조를 잡아 하나님 앞에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것이 첫 번째 추수감사절입니다.
청교도들은 고난과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도 하나님께 한 마디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감사의 조건들을 생각하는 감사의 사람들 이였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세계 최고의 나라 축복의 땅 미국입니다.
우리교회도 주님의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 합니다.
우리 교회는 분열의 아픔 가운데 남은 자를 주시어 교회를 듣든 히 세워 가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금년도 15분의 새 성도님과 자녀 9명을 불러 주시어 교회의 새 지체로 세워주셨습니다.
어린 생명에게 말씀을 전하게 해 주시도록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주님 응답해 주시어 오늘 교회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감사 예배를 드리게 됨을 감사 합니다.
은혜 찬양 단이 조직 되어 예배 전 찬양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구역이 조직되어 구역 예배를 드림을 감사 합니다.
수요 성경 공부 반을 세워 주심도 감사 합니다.
무엇 보다 우리 성도님들이 불평 없이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묵묵히 봉사해 주신 손길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빨리 더 부흥 성장하여 E M도 빠른 시일 내에 세워 주실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 곳 미국 땅으로 이민해 오면서 남모르게 땀과 눈물과 한숨을 쉬며 다시 고국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 것인가를 몸부림쳤던 밤도 있었지만 지금 주님 주신 은혜를 조목조목 생각하면 감사가 넘칠 것입니다.
생각하는 감사의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4. 넘치는 감사는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입니다.
범사(파스)는 모든 상황을 의미 합니다. 기쁨도 고난에도 감사를 표현 합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감사의 기준은 두 가지입니다. 세상적인 감사 기준은 성공과 축복 그리고 모든 것이 잘 될 때 감사를 합니다. 원하는 욕구나 희망이 채워지지 않을 때 감사 보다 불평과 불만 죄절을 토로 합니다.
반면 주님 안에서 감사는 어떤 환경도 초월 합니다.
가령 1,300개의 발명특허를 얻는 에디슨은 자신이 귀머거리가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은 감사 보다 불평이 일어 날 것입니다. 그러나 에디슨은 내가 참으로 감사하는 것은 내가 귀머거리가 됨으로서 연구에 몰두 할 때에 잡음이 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박국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을 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9)
끝으로 왜 성도들이 넘치는 감사를 하지 못할 까요?
주님의 은혜를 망각한 교만 때문입니다.
교만은 감사의 적입니다.
감사 대신 그 영혼의 공백에 불평과 불만이 그 영혼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감사는 하나님을 슬프게 하며 더 큰 감사의 축복을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에 한 촌에서 10문둥병자를 만납니다. 그들은 예수께 소리 질러 예수 선생이여 우리를 긍휼이 여 기소서 하거늘 예수께서 민망히 보시고 그들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병의 고침을 받고 예수께 감사를 표현한 사람은 단 1명 뿐 이였습니다.
주님 말씀 하십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은혜를 망각한 9명의 치유 받는 자에 대한 주님의 섭섭한 마음을 표현입니다.
한 문둥병자의 감사 표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으며 주님을 참으로 기쁘게 했습니다.
주님은 문둥병자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구원 하였느니라” 문둥병자의 감사의 표현은 자신의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생명구원을 얻는 축복을 얻었습니다.
믿음의 뿌리가 상실되면 감사 보다 원망과 불평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에서 떠난 신앙생활은 자기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세상 기준의 감사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입술의 불평이 나옵니다. 사랑이 없다느니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면서 감사 보다 불평하기 때문입니다.
상대적 비교에서 불평이 나옵니다. 여러분 성도 한 분 한 분은 고귀한 존재로 창조 되었습니다. 사람은 비교 될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나는 저 사람 보다 못한 것이 없는데 왜 나를 알아주지 않지 하면서 비교를 통한 불평에서 떠나 주님이 이 세상 1/75억 사람 중에 유일하고 독특하고 자 임을 깨닫는 은혜가 있을 때 불평 보다 감사를 표현 합니다.
미국의 심층 뉴스 TV 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명한 “데보라 노빌”은 위대한 성공이 "감사 합니다"라는 말을 자주하는 사소한 습관에서 비롯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내가 서 있는 가정과 삶과 우리 수도교회가 오직 주님 은혜였다 고 고백해야 감사가 넘칩니다.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감사를 떠난 심령은 겨울바람 보다 더 차갑습니다.
원망과 불평의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감사를 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토록 소망 했던 가나안 땅에 덜어가지 못하고 사막에서 죽었습니다.
감사절을 통해서 나의 심령에 불평과 원망 보다 넘치는 감사를 표현하여 더 큰 감사의 축복을 받는 저와 우리 수도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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