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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1/26/2017

주일예배 조회 수 241 추천 수 0 2017.11.28 08:58:55
문제 앞에서
수5:13-15절
11/26/17
 
한국에서
맥아더 장군의 동상을 철거해야 한다고 소동을 피운 일이 있었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6,25 전쟁 때 우리나라가 공산화 될 뻔 했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준 고마운 장군입니다.
만약 그 때 한국이 공산화 되었다면 지금 우리 민족이 잘살고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6,25 때 말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한국전쟁당시 국군이 공산당에게 밀려 낙동강 전선 까지 후퇴했을 때에 그는 비관적인 말을 하지 않고 승리를 확신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평생의 군대생활 중에 오늘 만큼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맥아더장군은 현실위기의 문제 앞에서 환경이나 누구 때문에 란 말을 결코 사용치 않았습니다.
그는 신앙의 눈으로 이 전쟁을 승리 할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에서 한국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도 삶 가운데 예기치 못한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한계적인 실존의 자리에서 죽음 질병 그리고 삶의 고통에서 때로는 눈물 젖은 빵을 먹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문제에 대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사느냐 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문제 앞에서 부정적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부정적인 사고는 환경과 누구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한계성에서 비롯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영적으로 부정적인 사고로 유혹하는 악한 영의 지배 때문입니다.
사탄의 전문 직업은 하나님의 말씀을 강하게 부정하여 실패로 이끕니다.
가령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면 정령 죽으리라고 명하였으나 사탄은 아담에게 결코 죽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과 같이 되고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라.(창3:4-21) 그래서 사탄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안타까운 일은 성도가 성령이 아닌 사탄의 영에 지배를 받게 되면 매사에 긍정의 하나님 말씀을 부정하고 입만 열면 거짓과 거짓말을 퍼뜨립니다.
반면에
문제 앞에서 긍정의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은 환경과 사람과 자신의 한계적인 실존을 넘어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다는 긍정의 사고로 살아가는 사람들 입니다.
예수님이 귀신들인 아이를 치유하신 후 할 수 있거 던 무슨 말이야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막9:23)고 말씀하셨고 바울 역시 주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선언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성도는 문제 앞에서 나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사고에서 Caling out하여 주님 안에서 할 수 있다는 믿음의 눈으로 Turning Point 되면 그 믿음의 역사로 문제를 해결케 해 주시고 승리의 길로 인도 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문제 앞에서 주님의 사고로 문제를 해결한 한 신앙인을 만납니다.
여호수아 입니다.
여호수아는 현실적으로 가나안 땅 첫 관문인 견고한 여리고성을 정복해야 하는 큰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처한 현실 환경은 인간적으로 볼 때 매우 부정적이고 어렵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지쳐있습니다.
변변한 군사나 군 장비가 부족한 실정입니다.
견고한 여리고 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곳 원주민은 네피림으로 키가 장대하고 체구가 커서 이스라엘 사람이 대적하기에 힘든 상대입니다. 만약 이곳 원주민 부족이 연합하여 공격해 온다는 더 큰 위험에 처 할 수밖에 없는 위기와 긴급성의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는 이 전투의 총 책임자로서 얼마나 두려움과 초초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호수아는 자신 앞에 펼쳐진 문제 앞에서 현실의 환경을 탓하고 누구 때문에 할 수 없다는 불평이나 절망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안에서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당면한 여리고 성 정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접근했습니다.
 
1. 그는 문제의 현장으로 갔습니다.
본문 13절 상반 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에 가까웠을 때”에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문제의 현장인 여리고 성에 간 것입니다.
그는 그 문제의 현장에서 문제의 해결책을 구하고자 소망하며 간절히 주님께 기도 했습니다.
그 기도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는 은혜를 입습니다.
환상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 에게 계시하는 한 방법으로 특히 긴급한 때나 문제의 현장에서 비몽사몽간에 계시합니다. 하나님이 환상을 주실 때는 그 문제에 대한 적극 개입 의지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본 환상은 하나님의 사자인 군대 장관을 만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는 순간 문제의 여리고성 점령은 자신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전투에 직접 개입하여 지휘하고 싸울 것임을 깨닫게 되는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바울도 사역 중에 많은 환상을 통해 복음 사역을 행하였습니다.
가령
바울이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환상 중에 마게도야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니 바울은 자기가 복음 전하고 싶은 아시아 지역을 그만 두고 순종하여 마게도야로 건너가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행16:9) 이것이 사도의 삶입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목회를 해 오면서 한 번도 제 유익을 쫓아 교회를 옮긴 적이 없습니다. 주님이 도우라고 하니 갔고 떠나라 하면 떠나는 목회를 해 오고 있습니다.(행16:9)
 
야곱도 여호수아처럼 문제의 현장에서 기도 했습니다.
야곱의 이름의 뜻이 “속이는 자”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속이고 형을 속이고 외삼촌과 속고 또 속이면서 많은 부와 가족을 얻었습니다. 이제 얍 복강을 건너면 그가 그리던 고향땅으로 금의환향을 받으며 덜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족과 종들과 양떼를 비롯한 모든 짐승을 먼저 얍 복강을 건너게 합니다.
그러고 야곱은 홀로 남았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지금까지 속이는 자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뒤안길을 돌아보면서 특히 압 복강을 건너는 순간 아버지의 복을 탈취한 형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형을 통해 죽일지도 모른 다는 생각으로 온 통 불안과 두려움의 마음으로 채워지기 시작 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한계의 자리에서 하나님께 기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속이며 살아온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는 기도를 하는 가운데 천사를 만나게 되는 은혜를 입었고 그 천사와 환도 뼈가 부러지기까지 기도하므로 속이는 자 야곱에서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새 이름 이스라엘을 받음으로 주님의 은혜로 문제 해결함을 받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문제의 현장으로 가서 드리는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은혜의 장소 입니다.
안 의숙 씨의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 했나요. 복음 송 가사가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 했나요. 오늘 받을 은총 위해 호소했나요. 기도는 우리의 안식 빛으로 인도하니 앞이 캄캄 할 때기도 잊지 마세요.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을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여호수아처럼 그 문제를 환경, 누구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의 한계성 때문에 특히 사탄이 너는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유혹에서 나와 믿음으로 그 문제의 현장으로 가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그 문제를 다 내려놓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은 그 문제의 현장에서 간절한 기도하는 성도를 결코 외면치 않으시며 여러 계시를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함을 받을 수 있는 주님의 은혜가 입합니다.
우리 수도교회는 문제가 다가 올 때 믿음으로 기도 하므로 주님의 인도를 받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영적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문제가 생기면 허둥지둥합니다.
또 문제 앞에서 자신의 모습의 약해지고 또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노출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처 할 때 이 문제를 해결 미끼로 자칫 사탄의 도구나 유혹에 넘어 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성도는 영적 통찰력이 필요합니다.
본문에 여호수아는 영적 통찰력이 있습니다. 그는 환상 중에 나타난 사람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고 영적인 분별 과정을 거침을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3절 하반 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본 환상에서 한 사람이 손에 칼을 빼어들고 마주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13절 하)
그가 대답입니다.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노라” 대답합니다(14절)
여호수아는 영적 통찰력을 발휘하여 하나님의 사자임을 분별한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우리가 문제 앞에서 때로는 환상이나 영감이나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또 사람의 관계를 형성 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 마다 이 것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것인가? 또 하나님이 붙여주신 사람인가?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통찰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꿈은 때로 깊은 생각에 몰입하면 심리적인 현상으로 올 수도도 있고 또 사탄이 주는 꿈도 있습니다.
특히 달콤하게 유혹 하며 당장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거짓말과 헛된 것으로 유인하는 양의 탈을 쓴 사탄 같은 사람도 만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영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을 까요?
자신에게 보여준 꿈과 환상과 사람이 사탄의 유혹인가? 주께 물어 보는 기도를 하십시오.
특히 사람의 관계에서 나에게 속삭이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정영 나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니면 나를 죄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게 하고 결국 실패의 길로 빠지게 하는 자인지 살펴볼 영적 통찰이 필요 합니다.
가령 그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의 말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이간과 분열 그리고 거짓의 속임이나 특히 주님의 복음을 방해하고 교회에 혼란과 갈등을 유발 시키고 하나 된 교회를 분열시키는 책동을 말하면 100% 사탄의 계략입니다. 이런 사람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이 살고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 앞에서 혼자 고민하지 말고 주님께 그 문제를 몽당 가지고 가서 다 내려 놀고 기도로 물으십시오. 그리고 그런 경우에 관련된 말씀을 찾아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은 기도와 말씀 묵상 중에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의 확신으로 평화로 인도의 길을 조금씩 보여 주시기 시작 합니다.
성도여러분
모든 문제의 근원적 해결 자는 내가 아닌 주님이심을 명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 바로 믿는 믿음 안에서 나의 삶의 문제를 해결함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은 은혜를 통한 깨 닫음과 분명한 신앙고백입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남에서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깨달음과 분명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의 분명한 깨달음은 이 여리고성의 전쟁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낸 군대장관이 총 책임자가 되어 행하시며 성전임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향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 고백의 형태가 군대장관에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절 한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숭배 최대의 겸양의 표시 도움을 요청 하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성경에서 절한다는 의미의 말이 “예배”란 단어 입니다. 구약 히브리어에 “솨하” 란 말이 있고 신약 헬라어는 “프로스퀴네오” 말이 있는데요 바로 “엎드려 경배하다” 절하다는 행위를 강조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예를 다하여 절하는 것”입니다. 영어 Worship 최상의 가치를 주께 드리는 행위의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고 드리는 것입니다. 드리는 자의 자세는 산 제물입니다. 제물이 무슨 말이 있습니까? 제물은 오직 헌신과 드림뿐입니다.
유교에서도 제사 드리는 자는 “심고” 한다 는 말을 사용합니다. 마음 심(心)자에 고할 고(告)다. 상제께 온 마음으로 기도 한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예배의 문제점은 여기서부터 변질 된 것입니다.
예배 자의 자세가 자신이 산 제물이 되어 진실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마치 TV 보듯 하고 굿 보듯 하고 사람 구경하듯 하고 목사 무슨 말하나 보고 또 셀 폰 보고 두리번거리고 예배시간에 들락날락 하고 있고 있으니 어찌 참 예배를 드리는 자 입니까?
어찌 그 마음에 말씀과 성령이 임하겠습니까? 어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고 하나님이 받아 주시며 영광에 따른 은혜를 받겠습니까?
본문에 여호수아는 엎드려 절한 것은 주님은 나의 주(큐리오스)이며 나는 당신의 종(둘로스)임을 신앙 고백한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종의 고백하는 자에게 권세와 긍지를 주십니다.
가령
예수님은 누가10장에 70인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사탄과 귀신을 제압하는 권세를 부여하십니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 버리는 자는 곧 나를 버리는 것이며 또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동네나 집이나 사람의 만남에서 너희를 영접치 아니 하거 던 너희 발에 뭍은 먼지를 떨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축복과 저주의 권세 또한 주님의 종들에게 부여해 주신 것 아닙니까?
 
성도여러분
나의 문제해결의 열쇄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깨달음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한 신앙고백으로 주님은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으로 믿고 모든 문제를 주님께 다 내려놓을 수 있는 믿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간구하면 주님이 나 대신 적과 싸워 주실 뿐만 아니라 범사에 나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인도함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의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4. 순종이 문제해결의 열쇠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주님의 종으로 고백하면서 동시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14절 하반 절에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고백합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무거운 짐인 여리고 성 정복을 주님께 다 내려놓고 오직 주님 말씀하십시오 종이 순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삼상3:10절에 사무엘처럼 “주님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고백과 같습니다. 여호수아의 구체적인 순종의 모습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내 발에 신을 벗어라”고 명했을까요?
거룩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심령이 거룩해 져야 합니다. 마치 모세가 떨기나무 불꽃에서 하나님을 대면 할 때 네 발에 신을 벗으라고 하신 명령과 같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벨리 알이 함께 할 수 없으며 성령과 악령 거룩함과 죄가 공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죄의 가리 움을 입은 회개한 심령의 상태입니다.
본문에 그 대로 행하니라는 말씀은 여호수아의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그는 신을 신을 벗었습니다. 바로 회개를 한 것입니다.
무슨 회개입니까? 가나안 땅의 정복은 처음부터 주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한 땅이 아닙니까? 때문에 여리고 성 정복 역시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성전인데 여호수아는 잠시 주님을 의지 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여리고성을 정복코자 생각 했던 죄를 회개케 합니다.
여러분
순종의 결과는 여호수아의 문제로 삼고 있었던 일을 하나님이 대신하여 직접 정복 계획을 하고 시행하고 종결하시는 역사를 경험케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까?
여호수아처럼 그 문제의 현장으로 가서 주님 만나고 주님의 인도함의 영적 통찰력을 확신하고 모든 문제를 온전히 주님께 내려놓고 주님의 하라고 하는 말씀에 순종하므로 문제 해결의 기쁨은 물론 주와 동행하며 승리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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