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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03/2017

주일예배 조회 수 189 추천 수 0 2017.12.04 11:23:53
희망의 기다림
누가복음 2:25-35절
12/3/17
 
인생은
오늘 보다 내일이 더 낫겠지 하는 바램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고 기도하면서 희망의 기다림 속에 살아갑니다.
태평양을 건너 이곳 미국 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일의 희망의 꿈을 안고 이곳에 오신 것 아닙니까?
 
미국의 한 여류 작가가 한국동란의 소재로 글을 쓰서 미국에서 문학 분야에 권위 있는 상 가운데 하나인 “푸리쳐” 상을 수상 한 바 있습니다. 그 기자 이름은 “마게라이트 히긴슨”입니다.
그는 6.25 당시 영하 45도로 오르내리는 압록강 변에서 포탄으로 다 깨어진 트럭 옆에서 미 해군 병사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대검으로 깡통을 까먹고 있습니다.
그 모습은 사람 이라가 보다 짐승과 같았습니다.
먼지와 수염으로 범벅된 얼굴 옷은 강추위 때문에 얼음과 같았습니다. 섬세한 여류 작가의 눈에는 안타까움과 함께 그 병사의 손을 잡고 묻습니다.
내가 만일 당신들이 원하는 소원을 무엇이던지 다 들어줄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라면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희망하십니까?
그 때 한 병사가 대답합니다.
우리에게 내일을 주십시오 라고 대답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은 내일의 희망의 기다림 속에 살아갑니다.
그래서 유태인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인간은 “호모 에스파란스” 즉, “희망의 존재”라고 규정하면서 그 희망은 위를 바라보며 미래를 바라보며 기다림과 희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 했습니다.
러시아의 문학의 창조자라 일컫는 “푸시킨”도 인생 미래의 “인생”이란 시로 노래했습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인다 해도
서러워하거나 노하지 마오.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사는 것.
오늘이 아무리 슬프다 해도 모든 것은 순간이요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린 다오
지나간 것은 갚진 추억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희망의 기다림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보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실상”이란 언약 성취 그리고 희망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만남 인사가 “마라나타” 즉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주님 오심을 대망 하는 희망의 기다림 속에서 고난과 박해를 이기는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믿은 하나님은 희망의 본체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믿는 성도에게 천국을 소망케 하며 또 나의 삶의 자리에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독과 상처 그리고 힘겨운 눈물의 골자기를 지날 때도 결코 외면치 않으시고 희망의 기다림 속에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 같은 꺽 지 아니하십니다. 꺼져가는 심지의 등불도 꺼지 아니하십니다. 참으로 의로운 오른손으로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를 도우시는 긍휼의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희망의 기다림이요 긍휼함을 받는 기다림 입니다(히11:1)
이번 주부터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Advent)입니다. 대강절을 다른 말로 대림절 또는 강림(降臨)절로 불리 우기도 합니다.
대강절이란 “도착” 또는 “옴” 또는 “임박한 도래”(독일어)로 불리 웁니다.
영어권에서는 Advent 란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말은 라틴어 adventus 에서 유래된 것으로, “옴” 또는“도착“의 의미를 지니며 독일어는 ”임박한 도래"의 의미합니다.
대강절의 기간은 이번 주부터 성탄 주일까지 4주간을 주님 강림을 희망 속에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이번 대강절을 통하여 내 마음에 주님의 강림이 임하는 은혜가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희망의 기다림 속에 신앙생활을 한 신앙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나이 많은 “시므온” 이라는 사람입니다.
시므온의 희망의 기다림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않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주인공입니다.
시므온이 어떻게 희망의 기다림 속에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을까요?
1. 희망의 기다림은 대상과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여러분 희망의 기다림이 되려면 언약이 분명하고 언약에 대한 희망이 있어야 하고 그 희망 속에서 인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 많은 종교들이 존재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의 기다림의 대상과 약속도 없이 단지 한계적 실존에서 막연한 요행의 기다림 속에 믿고 살아가는 인생들이 많습니다.
가령
무속신앙은 언약도 없고 희망의 대상인 귀신이나 혼령을 믿는 것으로 마치 사막의 신기루 같은 요행을 기다라는 사람들입니다.
불교나 유교 역시 희망의 기다림의 언약과 구원의 대상이 분명치 않습니다. 모든 궁극적인 문제를 인간 마음의 문제로만 귀결하는 것으로 철학이지 희망의 종교로 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구약 말라기 시대가 끝나고 신약에 예수님이 오시기 전 까지 기간이 약 400년 기간 동안은 선지자나 예언자의 출현이 전혀 없었기에 모든 사상과 신앙이 자기 마음대로 믿고 해석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를 암흑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어서 백성들의 한결같은 소망은 자기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고 이끌어 줄 힘 있는 정치적인 왕이 오실 것을 대망했는데 바로 유대인 메시아 대망 론 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메시아 대망 론은 하나님중심의 언약으로 이해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문제에 국한한 인본주의적인 메시아 대망 론으로 언약을 잘못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시므온은 구약성경에 예언 된 메시아에 대한 분명한 대상과 목적을 가진 희망의 기다림 이였습니다.
그는 메시아 오심은 정치적인 왕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구원과 평화 위로를 주실 것을 희망하며 기다리는 신앙 이였습니다.
특히
시므온은 메시아 오심은 자신을 포함하여 사상의 혼돈과 절망에 지친 온 만민에게 구원과 위로를 주시는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본문 25절 하 반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시므온은 "위로 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희망의 기다림 신앙 이였습니다.
"위로하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먼저 "위로"란 말의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위로는 헬리어로 "파라클레시스"란 말인데요.
하나님이 보내신 보혜사 성령을 “파라클레토스” 즉 위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요15:26절)
바울도 “위로의 하나님”을 고린도 교회에 증거하고 있습니다(고후1:3-7)
“위로의 하나님은” 용기를 북돋아주고 도와주시며 위로와 동행을 하며 중보의 기도를 해 주시고 구원하다는 폭넓은 뜻이 있습니다.
시므온의 위로의 메시아의 희망의 기다림은 주님이 이 땅에 오셨어 구원 사역을 통해 긍휼과 위로의 삶을 모습을 보여 주실 것을 미리 확신한 신앙의 이였습니다.
성도여러분
성도의 가슴에는 온통 희망의 기다림 속에 인내하며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말씀에 희망의 언약을 부여잡으십시오.
말씀의 약속은 믿은 자에게 구원의 보증과 천국을 희망을 주십니다. 그리고 나의 삶 가운데 새 힘을 공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희망 속에 바라며 기도하며 인내하며 살면 위로의 주님이 내 마음에 강림 하십니다.
이민을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정말 주님의 위로가 필요 합니다.
삶 가운데 실망과 좌절에서 다시 시작하는 희망의 용기기 필요합니다.
내가 힘들어 지쳐 주님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할 때입니다.
수많은 종교 사상의 혼돈 시대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위로하시는 주님과 함께 동행 하며 교제하며 그리고 주님의 위로가 필요한 이웃에게 위로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하기 위해서는
나의 심령에 먼저 위로의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이번 대강절은 바로 주님이 내 마음속에 성령으로 말씀으로 다시 충만히 영접 할 수 있는 대강절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수도교회 이런 복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2. 희망의 기다림은? 의롭고 경건한 신앙생활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본문 25절 중반 절입니다.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은 평소 의롭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메시아를 대망한 것입니다.
의롭고 경건한 신앙생활이 무엇인가?
"의롭다"는 말은 "디카이오스"말로 옳은 공의의 뜻으로 하나님과 바른 관계입니다.
그리고 "경건"은 "율라베스"란 말로 꽉 잡는다 취한다 말에서 유래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꽉 잡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신앙인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므온은 비록 나이 많은 노인이지만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키며 오직 약속의 말씀을 굳게 잡고 하늘의 소망을 가지며 세속과 죄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신앙생활을 하는 의롭고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
그 결과 26절에 시므온는 죽기 전에 메시아를 볼 수 있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축복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의롭고 경건한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의로운 요셉은 그가 머무는 곳에 복을 주셨고 의인 모세의 중보 기도는 멸절 될 수밖에 없는 200만 이스라엘 민족을 구했습니다.
주님이 예루살렘을 멸망코자 할 때 예레미야를 통해 의인 한 사람만 있으면 이 성을 멸망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소돔 고무라 성을 멸망치 말도록 요청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성에 “의인 열 명만 있으면 이 성을 멸망치 않겠다고 했습니다.
의인이 없었고 의롭고 경건한 자들이 없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교회 의인은 누구입니까?
대강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주님 말씀을 부여잡고 의롭게 살고자 노력하는 시므온 같은 성도들이 이 전에 가득 채워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3. 희망의 기다림은 성령 안에서 성취되어 갑니다.
본문 25-27절입니다.
성령이 시므온 위에 계셨고 성령의 지시로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리라는 지시를 받았고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덜어갔습니다. 한 마디로 시므온은 성령님의 위로와 동행을 하며 성령을 충만이 받은 신앙인이 였습니다.
여러분
시므온은 인생의 황혼 길에 접어 던 노인이지만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니 성령을 충만히 받고, 성령과 동행하니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희망의 기다림 속에 생동감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인의 노후의 삶이 아닌가 싶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 겉 사람은 날로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고 말씀 합니다.
시편 92:12-15절에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궁정에서 흥왕하리로다.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성도여러분
신앙 안에는 나이가 많고 적음이 문제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집에 깊이 심기 워 져야 합니다.
그리하면 시므온처럼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희망의 기다림 속에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주님의 일을 하실 때 위로의 하나님이 동행해 주시고 더 힘과 건강을 축복하십니다.
우리 교회 모든 분들은 교회의 한 지체가 되어 주님의 일에 봉사하므로 시므온과 같은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희망의 기다림? 영안이 열리게 합니다.
본문 30절입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입니다. 영안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성전에 덜어왔고 또 수많은 제사장들과 서기관 종교지도자들 많은 백성들이 성전에 덜어 왔습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가 메시아 인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경배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직 시므온만이 아기 예수를 안고 메시아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경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므온의 영안을 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28-29절입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 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아람군대에 포위되어 두려움 속에 있을 때 엘리사가 사환에게 말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는 자들이 아람군대보다 많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엘리사가 기도하며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그의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니 그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 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23절)
 
주님은 영의 눈이 열려져 있지 않는 제자들을 보시면서 탄식합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막 8:18). 내가 신체적인 귀머거리와 벙어리는 얼마든지 고칠 수 있지만 눈이 있어도 보이지 않으며 귀가 있어도 들리지 않는 영적인 불구에 걸린 이 세대에 대한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오시면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35:5-6)
성도여러분
같이 예수를 믿고 같이 교회 다니고 같이 기도하고 같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도 하나님의 열린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린 성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의 눈을 열어 주신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 마음에 임하면 말씀을 읽을 때 영의 눈이 열립니다. 귀에 말씀을 들을 때 그렇게 살아야 하는 다짐의 음성이 내 마음을 노크 합니다. 기도 중에 주님의 위로의 속삭임이 있습니다. 바로 귀가 열리고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는 “에바다”의 축복입니다.
이번 대강절에 이사야의 말씀처럼 주님이 내 마음에 강림하여 어두운 내 영의 눈이 열리고, 말씀의 귀가 열리고 기도의 영이 열리는 “에바다”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길 주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희망의 기다림은 희망 본체이신 메시아 이신 예수를 품안에 않는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28절
시므온은 희망의 기다림의 결과 메시아 이신 예수를 품에 안고 경배라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안게 된 것입니다. 온 우주를 안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신 구세주를 않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34절에 보면 아기 예수를 축복했습니다. 시므온이 메시야를 축복하는 특권까지 받았습니다. 축복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축복권이 아닙니까?
마치 아브라함처럼 네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린 것이요 땅에서 매면 하늘에 매이는 특권입니다. 주님이 교회에 주신 천국의 열쇠처럼 말입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도 시므온처럼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이번 대강절을 통해서 메시야 이신 예수가 내 마음에 임하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시므온처럼 아브라함처럼 주님의 이름으로 남을 축복 할 수 있는 복된 성도의 입술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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