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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10/2017

주일예배 조회 수 134 추천 수 0 2017.12.11 09:21:00
내 마음에 메시야가 임하면
사11:1-9절
12/10/17
 
주님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 둘 째 주일입니다.
홀만 헌트가 그린 "세상의 빛"이란 그림을 잘 알고 계실 줄 압니다.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그린 그림입니다.
이 그림에 대하여 "러스킨"이란 분이 해설을 하였습니다.
이 그림에는 큰 대문이 하나 그려져 있습니다. 그 문은 인간의 영혼이 영원을 통할 수 있는 문입니다.
그런데 그 문은 빗장과 못들로 굳게 잠겨 녹이 서려 있습니다.
문설주에는 담쟁이 넝쿨이 기어 올라가서 마치 뜨개질이나 한 듯 똘똘 감아 얽어 놓여 있고 그 주위에는 박취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문지방에는 가시덤불과 쐐기풀 그리고 이삭하나 없는 옥수수 등이 무성히 덮여있습니다. 아마 풀 깎는 자가 그 야생초에 손 하나 대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그 문은 한 번도 열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문은 인간 타락 이 전에는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언제라도 하나님과 만날 수 있었는데 인간이 죄를 지은 후에는 이 문이 굳게 닫히어 영원 즉 하나님의 세계와는 차단되어 버린 것입니다.
또 이 그림은 주님께서 대문 밖에서 오셨어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모습이 너무 비참함과 불쌍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을 찾아 오셨어 굳게 닫힌 인간 영혼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대문의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 문을 열수 있는 문고리가 밖에는 없고 안쪽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주님이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셔도 그 문은 문을 열 수 있는 문고리가 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이 오셨어 인간의 마음 문을 열고자 찾아 오셔도 인간 스스로 자신의 마음 문을 열어야 주님과 만난 수 있는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배경은 계시록 3:20에 말씀을 잘 대변하고 있다.
주님께서 믿음이 차지도 덥지도 아니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회개와 열심을 내라. 내가 문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리라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헌트의 이 그림은 우리들이 대강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참된 의미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번 대강절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죄의 대문이 활짝 여는 절기 입니다.
나의 심령에 죄의 못이 박혀 있고 빗장이 쳐 저 있고 담쟁이덩굴 박쥐가 날아다니는 것과 같이 방치되고 굳게 닫혀 있는 나의 죄의 대문을 스스로 회개하여 활짝 여는 절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불쌍히 여겨서 주님의 찾아와 주시는 은혜를 구하는 기간이다.
내가 아무리 주님을 영접하고 싶어도 주님이 찾아와 주시지 않으면 헛수고입니다. 주님 오심을 간절한 기다림과 요청이 필요합니다.
주님이 대문 밖에서 내 마음을 두드리고 계실 때 내 마음의 문은 내가 스스로 열수 있는 만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지금도 주님이 나의 마음의 문 앞에 와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문제는 문고리가 안쪽에 있기 때문에 내 스스로가 문을 열지 않으면 주님을 영접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메시아 이신 예수님이 나의 마음에 강림하시면 주시는 은혜를 말씀하십니다.
1. 희망의 새싹이 돋아나옵니다.
여러분
겨우내 동안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여기저기에서 푸릇푸릇 새싹들이 돋아나는 모습을 보노라면 왠지 우리네 마음들이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서 희망과 행복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새 싹은 단단한 씨가 터져서 나온 싹이고 또 뿌리와 줄기를 통해 돋아나는 어린잎이 아닙니까?
그리고 새 싹이 틔우기 위해 씨앗이 터지는 아픔이 있고 차가운 겨울을 반드시 거처야 하는 것입니다.
새싹은 인생의 희망에 비유 합니다.
경제에서는 경기회복을 초록빛 새싹 즉 그린슈트(Green shoots)라고 칭합니다.
희망의 새 싹은 이미 미래의 희망이 열리는 시작을 뜻합니다.
본문 1절입니다.
“이 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는 다윗의 가문이며 한 싹은 메시야 이신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마태 1:18-25절에는 다윗의 가문인 요셉과 마리아에서 예수가 탄생하였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이 선포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절망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마치 죽은 고목나무와 같은 신세입니다.
이 절망의 고목나무에서 새싹이 나온 다는 것입니다. 그 고목나무 같은 절망에서 한줄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포로에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싹트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 인류에게 죄와 죽음과 절망과 고통으로부터의 새 생명과 희망을 주신 것입니다.
희망의 새 싹은 당장 큰 열매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 안에서 믿음의 씨앗을 가슴에 품고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시간에 그 새싹이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심을 십니다.
주님 말씀에 "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욥8:7)
성도여러분
이민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 때로는 고목나무 같은 좌절과 절망과 고독의 그늘이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건강 가정의 우환 사업의 어려움 자녀 문제로 그 때 나의 고목나무에 희망의 새 싹인 예수님을 접목 하십시오.
희망의 새싹이신 예수와 함께 나의 고목나무 같은 삶에 희망의 잎이 피어나고 튼튼한 줄기가 자라서 구원과 축복의 열매를 거두는 축복의 성도의 삶이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지혜의 자녀로 살아갑니다.
본문2절입니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
위로부터 오는 것으로 시물의 이치를 깨우치고 정확하게 판단하는 정신적 능력입니다.
또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으로 현명함 슬기로움 통찰력 등을 뜻합니다.
동양에서의 맹자는 군자의 인간의 4덕목으로 인(仁) 의(義) 예(禮) 지(智)를 주장하였는데 그 중 지(智)가 바로 인간 지혜로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식은?
후천적인 습득과정에서 주어지는 정보와 기술입이다. 즉 교육 학습 숙련 등을 통해 사람이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의 의미가 있습니다.
총명?
영리함이다.
모략?
나쁜 뜻인 계략이나 책략이 아니고 선함을 위한 모략이나 책략이다.
그러므로
성도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령님이 강림하면, 인간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닌 주님으로부터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모략과 재능을 공급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약속 입니다.
잠언1:7절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 이어 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 하느니라.
야고보서 1:5-8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다.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님께 얼마나 간절한 믿음으로 지혜를 구한 적이 있습니까?
지혜의 말씀을 얼마나 묵상 하였습니까?
이번 대강절에
나의 마음에 지혜와 지식 총명과 모략이신 주님이 영접하십시다. 그리고 주님께 간절히 지혜와 총명을 구하여 충만한 은혜를 받아 지혜 있고 슬기로운 승리의 신앙생활을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공의의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공의는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공의로 통치하며 다스립니다.
본문 3-5절을 보면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4절)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신다고 말씀 하십니다(5절)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정의로 죄를 심판하되 사랑으로 구원하십니다.
인간은 정의를 다 이루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은 나의 부족한 정의를 사랑을 공급 하여 주시어 공의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현재도 이 땅에도 공의로 반드시 악을 심판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재림의 날에는 모든 사람이 주님 앞에 서게 되는 데 자신의 행한 모든 것을 자신의 입으로 직고하게 되며 나의 모든 삶이 주 앞에 한 편의 영화 필림처럼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공의로운 판단을 통해 영생과 지옥을 결정하십니다.
그런데 성도의 특권은 강림하시는 메시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이미 죄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앞에서 예수의 공로로 주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덜어가는 공의로운 판단으로 영원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공의의 축복을 풍성히 받게 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 즐거움을 베풀어 주십니다.
시16:8절에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둘째 하나님은 정의로움으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심령에는 하나님의 통치를 하시기 때문에 모든 일을 정의롭게 판단케 하시며 성실히 인도하십니다. 동시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의 사랑이 함께 하 셔 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주님이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이번 대강절을 보내면서 내 마음에 메시야 이신 예수님이 임하시어 정의로운 인도를 받으며 그 심령에 은혜의 즐거움이 충만하며 주님과 함께 공의 삶을 살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평화를 경험하고 평화를 만드는 삶을 사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6-9절의 말씀은 평화의 절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화는 4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과 인간의 평화입니다.
9절 상반 절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거하면” 이 말씀은 주님을 믿고 평화의 적인 죄의 용서함을 받고 주님 안에 말씀 안에 성령 안에 거하는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거하는 생활입니다.
여러분
주님 안에 거할 때 주시는 첫 번째 은혜가 내 마음에 임한 평화입니다.
본문에 보면 "해도 상함도 없고 마치 물이 바다를 덮은 같은 평화로 충만 한 것입니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평화 속에 주님의 뜻이 있고 평화 속에 인도가 있으며 평화 속에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에 거하여 주님의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사람의 관계에서 평화입니다.
본문 9절 하반 절에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란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 사람관계에서 평화를 이루는 지식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에 있어 평화의 지식은 정직과 성실 그리고 정의와 사랑을 이루는 지식을 말합니다.
둘째 사람사이에 왜 불화가 생깁니까?
정직하지 못하고 불성실한 거짓말 그리고 정의롭지 못하고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것들이 들통 나면 신뢰가 깨어지고 관계성에 평화가 사라집니다.
여러분
사람 관계에 평화가 없으면 서로가 뼈를 마르게 하는 심적 고통이 자신에게 찾아옵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불안과 초초 속에 갈피를 잡지 못한다.
우리교회 성도님들은 나는 사람과의 평화의 이루는 성도인가를 스스로 반성과 회개의 시간을 가지는 대강절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셋째 사람과 만물과의 평화입니다.
하나님이 창조 후에 인간들에게 만물을 다스리도록 위임과 보존의 축복을 주셨다. 이는 만물과의 평화입니다.
본문6절 하반 절에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어린아이에게 끌림을 받고"
8절에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땐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참으로 아름다운 평화의 모습이 아닙니까?
끝으로 짐승과 짐승과의 평화입니다.
6절에 "이리와 어린양이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7절에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짐승 관계의 평화 모습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메시아 이신 예수님이 임하는 곳 마다, 이 같은 평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이 바로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를 주시기 위해오셨습니다.
참된 평화는 하늘로부터 주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유대인들의 인사가 "샬롬" 즉 평화입니다.
대만 성도들의 인사가 "핑안"입니다.
평화를 노래한 프란체스코는 "주여 나를 평화의 기도로 써 주소서" 라고 노래했습니다.
이번 대강절을 보내면서 주님의 평화가 내 심령 가정 교회 세상에 충만히 임하고 평화의 적인 죄 미움 갈등 시기 질투 살인 저주를 몰아내고 Peace Maker의 은혜의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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