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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17/2017

주일예배 조회 수 127 추천 수 0 2017.12.19 12:06:42
하나님을 보는 자의 행복

마5:8
12/17/17

대강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주님의 강림이 내 마음에 임할 수 있도록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 모실 방을 준비하는 기간이 되길 바랍니다.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오늘은 예수님의 행복시리즈 6번째 “하나님을 보는 자는 행복하다”고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하나님을 보는 행복은 하나님을 보는 놀라운 은혜에서 시작하여 주님과 함께 누리는 행복 입니다.
한 친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한 친구는 믿음생활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친구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친구는 가끔 널 보면 하나님이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믿음의 친구가 믿지 않는 친구에게 교회 같이 하자고 말을 권유 합니다. 그때 친구가 하는 말이 야 네가 믿는 하나님을 좀 보여 줘 봐 그러면 나도 너를 따라 하나님을 믿을께 라고 반응을 하였습니다.

그래 그야 간단하지 이번 일요일 날 나를 따라 교회 한번 나와 봐 틀림없이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호기심 반 장난기 반으로 친구가 다니는 교회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기 무섭게 믿지 않는 친구가 말합니다.

야, 너 나한테 하나님 보여 준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어디 있는 거야? 그러자 그 친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렇게 응수했습니다. 야, 이 친구야 너 장님이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들 한 복판에 한 시간 동안이나 같이 앉아 있었으면서도 하나님을 못 봤단 말이냐? 하나님이 없으면 그 사람들이 어디다 대고 예배를 드렸단 말이냐? 장님이 TV를 보면서 화면 안 나온다고 소리치는 것과 똑 같네 라고 말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인간의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의 생김새나 얼굴이나 외모를 본다는 의미가 아니고 성령 안에서 영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임재를 상징성으로 계시 하십니다.

가령 모세(Moses; 물에서 건 진자)는 떨기나무(thron bush)에 불꽃에서 하나님을 임 재성을 보았습니다.

떨기나무는 땔감으로도 쓸 수 없는 볼품없는 가시덤풀 나무로 애굽에 노예의 삶을 살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지금도 시내산 밑 출구 길 언덕에 떨기나무를 보게 됩니다.

모세는 불꽃의 상징으로 임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된 것입니다(출3:1-3)

또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을 계시(보이심) 합니다.

요시아(Josiah:여호와는 격려하시다) 왕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율법 책을 발견하여 읽다가 영적 영안이 열려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때에 그는 자신과 조상의 죄를 자백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대적인 종교개혁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다니엘은 꿈과 환상 중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왕들을 세우고 폐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욥은 말할 수 없는 삶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은 눈으로 보게 됩니다.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을 대면하고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창세기 32:30)

이와 같이 사람이 하나님을 외모를 직접 볼 수 없으나 주님은 태초부터 여러 모양과 여러 부분으로 자신을 보여주시고 만나게 해 주십니다(히1:1-3)

그러므로

성도가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만남은 상장성인 영적인 만남이기 때문에 바울의 말처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마지막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고전13:12)

계22장1절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 하나님의 얼굴을 볼 터이요 라고 말씀하고 있기 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을 보는 자야 말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요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럼 성도가 어떻게 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본문에 청결은 “카다로스”란 말인데 그 의미는 조금도 다른 것이 섞이거나 첨가 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가령 인간의 말로 비유 할 수 있는 청결은 벼에 겨를 제거한 쌀 알곡처럼 또는 물을 타지 않는 우유처럼 100% 순금에 사용된 말입니다.
“청결한 마음”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타락하여 죄로 때 묻지 않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볼 수 있는 마음입니다.
이중적인 마음이 아닙니다. 한 쪽은 하나님 한쪽 세상에 둔 마음이 아닙니다.

마6:24절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다.
바리새인처럼 위선과 외식의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은 위선과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과 같은 두 마음의 소유자들로 책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청결한 마음은 죄에서 이중적인 믿음에서 위선과 외식의 믿음에서 나와서 주님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오직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말씀 소리를 듣고 주님만 의지하고 그 말씀 따라 행하는 마음이 야 말로 날마다 순간 마다 하나님을 볼 수 청결한 마음입니다.
어떻게 하면 청결한 마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1)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본 어게인”(be born again Christian) 즉 다시 태어남을 의미 합니다. 거듭남의 핵심은 죄 사함의 문제 입니다.
중세에 금욕주의(에세네파)와 신비주의자들은 금욕과 수도로 통해 죄 사함으로 거듭나고자 했습니다.
불교는 고체-집체-멸체-도체인 8정도를 통해 불타의 사람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유대 율법주의자들은 오직 율법주의로 죄 사함과 거듭남을 주장 합니다.
요3:3-5절에 보면
바리새인중 유대 관원인 니고데모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율법을 나름대로 잘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는 구원의 길을 예수께 질문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 나라에 덜어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율법으로 거듭날 수 없음을 분명히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금욕주의나 불교 유대율법주의 통해 육신의 욕심을 억제하고 순화는 기대 할 수 있을 찌 모르나 죄 사함에 이르지 못합니다.
죄 사함 거듭남의 길은 오직 한 길(one way) 물과 성령의 능력으로 주의 흘린 보혈로 죄의 씻음을 받고, 예수 믿음으로 주님 주시는 선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보고 싶습니까?
주님 앞에 나와 나의 죄를 고백하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십시오. 거듭나는 순간 새 사람이 되며 새로운 생각과 마음으로 살아가며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님 바라보는 청결한 마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 순간부터 나의 삶의 기적이 보입니다. 그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2.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도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심령은 빈 공백입니다. 그 심령을 그 대로 방치하면 그 영혼의 공백 속에 세상 마귀와 온갖 자 범죄의 찌꺼기가 다시 쌓이기 시작 합니다.
마치 깨끗한 거울에 먼지가 끼면 거울이 희미해지듯이 마음에 죄의 불순물에 끼면 하나님이 희미하게 보이다가 죄의 밤이 깊어지면 아예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청결한 마음이 타락의 마음으로 변질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

나의 영혼의 고백 속에 성령을 충만히 채워야 합니다. 충만은 가득히 채우는 것이며 마치 저수지에 물리 흘러넘치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새 것으로 옛 것을 변화 시킵니다. 새 힘을 공급받습니다(독수리, 연어)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과 동행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유지키 위해서는 회개와 간구입니다.
다윗처럼 “주님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회개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요청 합니다.(시51: 10)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는 기도하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처럼 각 사람위에 성령이 충만했던 것처럼 성령 충만을 위한 쉬지 않는 기도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주님 보고 싶으십니까?
성령 충만하여 청결한 마음을 소유하여 주님을 바라 볼 수 있는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3. 인간의 노력과 결단이 따라야 한다.
청결한 마음속에 살아가기 위해 말씀의 가르침과 기도를 통해서 끊임없이 인간의 구습을 자르는 노력과 결단이 따라야 합니다.
가령 시편 1 편에 복 있는 사람의 노력과 결단을 보십시오.
복 있는 사람은 죄의 자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악인의 궤를 쫓지 아니합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합니다.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지 아니했습니다.
여러분
모세가 하루아침에 위대한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40년 동안 애굽에서 배운 학문이 모세 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교만과 자만을 정리하고 잘라 내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40년 미디안 광야의 삶이 필요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사용 전에 먼저 “네 발에 싣 을 벗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청결한 마음의 소유자로 만든 후에 사용하시지 않았습니까?
동시에 청결한 마음의 소유자는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노력이 있습니다.
오직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이 아닙니까? 말씀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청결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게 하십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 하십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처럼 행하라(엡5:8)
어두움은 사탄과 죄와의 결별의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가령 온갖 음행 더러운 것 탐욕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 우상숭배 헛된 말로 속이는 자의 자리에 이르게 합니다. 빛의 생활은 착함 의로움과 진실의 삶을 추구 하므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기업을 얻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축복의 성도가 되길 원합니까?
내 마음속에 죄악의 요소들과 잘못된 사고와 습관을 과감히 고칠 것은 고치고 자를 것은 자르는 노력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주님의 말씀 따라서 빛의 자녀로 살아가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곳에 청결한 마음을 소유하여 날마다 순간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동행하며 승리하는 행복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4.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하면 청결한 마음이 되고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사랑의 응답이 있으며 사랑받은 자는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줄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의 사랑을 받았고 자신의 가장 귀하고 값 비산 향유인 옥합을 주께 가져와 그 발 위에 붓고 입 맞추었습니다. 이 말에 대하여 논의가 있으나 분명한 사실은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의 질병을 치유 받았고 주님을 사랑했기에 주님의 죽으심까지 따라 다닌 참 제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활의 첫 증인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 프란체스코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상처인 오상을 체험 하였습니다.
프란체스코는 평시 하나님께 평생 두 가지 은혜의 제목을 두고 기도를 드린 인물입니다.
평생에 자신의 영혼과 육체에 주님이 당하신 고통스러운 수난의 고통을 느끼게 하시고 그리고 죄인을 위하여 당하신 사랑의 십자가의 고통을 제 마음에 느끼게 해 달라는 기도 였습니다.
어느 날 베르나 산에서 대미사 축일을 준비하는 가운데 사십일 간 기도하는 가운데 6섯 명의 천사들을 통해 자신의 몸에 예수님의 창자국과 못 자국인 네모꼴 모양의 오상이 자신의 손목과 발목 그리고 옆구리에 세 겨진 경험 합니다. 주님 사랑의 절정이 아닙니까? 그는 주님 사랑하였고 또 주님 사랑 받은 자였습니다.  사도요한은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제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요한일서에 주님의 사랑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요일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그리고 그는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을 봅니다.
요일서 4:13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여러분
어떻게 주님 사랑해야 합니까?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4-9)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주님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은 나의 삶의 모든 우선순위에 먼저 하나님을 둡니다. First God입니다.
정성스러운 예배의 표현과 주님의 교회의 섬김 그리고 세상을 향한 이웃을 사랑하는 손길입니다. 그 사랑의 현장에 주님을 바라보는 은혜를 체험 합니다.
세계 제일 부자로 불리는 빌 게이츠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당시 그의 재산은 50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50조원이 넘는 큰 액수입니다.
그가 지금까지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리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내놓은 돈이 300억 달러입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자기가 세상을 떠 나기 앞서 전 재산의 95%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내놓고 나머지 5%는 자손에게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빌게이츠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그렇게 많은 물질을 선 듯 사용 할 수 없습니다. 주님 말씀하십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의 어머니 말을 빌리면 열한 살(11세) 때 예수님의 산상수훈 즉 지금 우리가 듣고 있는 예수님의 8가지 행복의 말씀을 모두 암송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는 이 말씀 따라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눅6:38). 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향해 베풀고 사용해도 더 넘치는 축복의 소유자가 아닙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보는 행복한 성도가 되길 원하십니까? 
주님 사랑 하십시오.
빌 게이츠처럼 말씀을 믿고 따르는 성도가 되어 넘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끝으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는 축복을 소개하고 말씀을 맺습니다.
욥입니다.
욥은 동방의 의인이란 이름으로 가질 정도로 의롭게 산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삶 가운데 사탄의 시험으로 졸지에 말 할 수 없는 고통의 밤을 맞이했습니다. 10자녀 다 죽고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손실 되었습니다. 아내는 자신을 저주하고 떠납니다. 친구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욕을 먹고 요즘 말로 왕 따가 된 것입니다. 자신의 몸은 악창이 나서 너무 가려워서 기와 장으로 자기 몸을 끌었습니다. 이 같은 욥의 모습은 인간이 겪는 절망의 절정의 자리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 같은 고통과 절망의 현장에서 욥은 하나님을 원망치 않았습니다,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나름대로 의롭게 산다 생각했지만 그는 주님 앞에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 하나이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청결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었고, 그 동안 귀로 듣던 믿음에서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게 되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욥42:2-5)
그는 이전 보다 더 넉넉한 축복의 신앙인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때로는 욥처럼 환난과 고통이 다가 오더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남을 원망 하지 말고 주님께 스스로 한하고 그 고통의 현장에서 내가 하나님께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여 청결한 마음을 소유자가 되어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동행하며 이전 보다 더 행복한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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