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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1/2018

주일예배 조회 수 221 추천 수 0 2018.01.23 09:33:47
동행

창5:21-27절
1/21/18

인생은 홀로 살아 갈 수 없습니다. 때문에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반드시 누군가와 동행하며

살아가야 하는 실존 입니다.

육신의 동행에는 부부 가족 친구 믿음의 형제 그리고 세상에 살면서 많은 동행자를 만나

기 마련입니다.

육적인 동행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동행자의 만남입니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어떤 신적 만남으로 동행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주어집니다.

가령 사탄의 영과 동행하면 거짓 유혹 교만으로 종국적 파멸의 자리에 이르게 되고 동행치 말아

야 할 사람과 동행하면 고통과 그리고 실패와 절망과 불행 까지 가져다줍니다.

반면에 주님과 동행하면 영생과 은혜 그리고 인도와 축복이 주어지고 참 믿음의 성도와 동

행하면 참 용기와 위로 그리고 천국의 반려자를 만나는 축복이 있습니다.


성경 고고학을 가르치는 찰스 셔어 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KCM)

그는 선교사이며 고고학 학자로서 대부분 생애를 팔레스타인에서 고적답서와 연구를 하다가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그 분을 인격과 가르침에 좋아하지 않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수님이 교통사고를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 하셨는데 학장님이

병원 방문하고 오셨어 희망이 없다는 말씀 하셨습니다.

얼마 후 다시 소식이 들려옵니다. 교수가 소생할 가능성이 조금 보이는 데 소생해도 정신이 정상적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소식입니다.

왜냐하면 무의식 상태에서 무언가 자꾸만 중얼 거리는데 제 기능을 찾지 못할 것 같다는 소식입니다.

다시 학장이 병문안을 하고 학교 예배 시간에 아주 깜작 놀란 만한 보고를 하였습니다. 셔어 박사는 절대 정신이상이 되지 않을 것이며 건강이 회복 될 것을 확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셔어 박사가 중환자실에게 계속 독백처럼 중얼 거리는 데 자세히 들어보니 시편 1편을 히브리어로 암송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평상시 늘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그 분의 인격을 지배하였으며,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이 셔어 박사와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인격과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러움이 나타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셔어 교수는 평생을 말씀이신 하나님과 동행하신 분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믿는 성도로서 지금 주님과 어떤 모양으로 동행하고 계십니까?

말씀으로 기도로 찬양으로 주님 맡겨주신 사역을 통해서 동행을 하고 계십니까?

오늘 본문은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한 한 신앙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녹입니다.

에녹은 무려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한 신앙인입니다.

동행(同行)이란 한자로 보면 "동(同)"은 같을 동이고 행(行)은 행할 행자입니다. 같이 행하는 것, 같이 걷는 것이란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도 여주동행(與 主 同 行)이란 말을 많이 사용합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을 뜻 합니다. 성경에서 동행하다의 의미로는 히브리어 “할라크” 인데 그 뜻 역시 “걷다” “가다”의 의미로 구약에 무려 1500회 이상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럼 에녹이 어떤 신앙의 삶이기에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을 까요?

1. 하나님과 사랑 가운데 동행했습니다.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걷고 싶고 떨어지기를 싫어하지 않습니까?

에녹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 역시 에녹을 깊이 사랑 했습니다.

짝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니고 함께 사랑 했습니다.

서로 사랑한 증거가 300년이란 세월이 아닙니까? 어찌 사랑하지 않고는 300년을 같이 걸을 수 있습니까?

미국 복음주의 목사이며 작가인 “맥스 루카도”는 하나님과 에녹과의 사랑의 동행 모습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쉽게 표현 하였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하나님도 에녹을 깊이 사랑했습니다.어느 날 둘은 만나서 손을 잡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걷다보니 집에서 너무 멀어지게 되었습니다.그러자 하나님께서 에녹에게 말씀하셨습니다.에녹아 오늘 네가 집으로부터 너무 많이 떨어져서 돌아가기 힘들게 되었구나. 그러니 그냥 

우리 집으로 가자… ”그래서 에녹은 그냥 하나님 집으로 갔다는 표현입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동행 모습입니다.

신약에도 예수님과의 깊은 사랑은 나눈 모델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예수님은 7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치유해 주신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녀를 부활의 첫 증인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은 막달라 마리아 역시 주님을 무척 사랑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께 치유를 받은 후 첫 여성 제자가 되었으며 끝 까지 주님과 동행 한 여인입니다.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 현장이나 주님의 시체가 묻히는 무덤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나 막달라 마리아는 끝까지 주님과 동행한 유일한 여인 이였습니다.

그녀는 값 비산 향유(300데나리온 1년 임금)를 주님의 발에 붙는 아낌없는 주님 사랑을 표현 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께 물질을 드릴 수 없습니다. 네 마음이 있는 곳에 물질이 있다고 주님 말씀 하시지 않습니까?

성도여러분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교회는 누가 에녹이며 누가 막달라 마리아처럼 주님 사랑하고 사랑받는 성도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새해 주님 한번 사랑하며 살아 봅시다. 오직 주님 몸인 교회를 사랑 하십시오. 나의 입술로예배로 봉사로 물질로 주님 사랑하시시오. 그리하여 주님의 깊은 사랑을 받으며 주님과 동행 하는 행복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2. 에녹은 주님의 마음 가운데 동행 했습니다.

여러분

마음과 뜻이 같지 않으면 결코 동행 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겉으로는 동행하는 흉내는 낼 수 있으나 참된 동행자가 아닙니다. 서로 딴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불행입니다.

아모서 선지자는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암3:3)라고 말씀하고 계십

니다.  에녹이 주님의 마음과 의중을 알고 신앙생활하려고 노력할 때 주님은 에녹에게 자신의 마음과 뜻을 두 가지로 계시해 주십니다.

첫 번 째계시는 죄악 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란 것입니다.

에녹은 당시 아벨을 죽인 가인의 후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한 뿌리의 같은 자손이나 그들

의 가치관과 삶의 형태는 사뭇 달랐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아벨을 살해한 그 악한 마음으

로 늘 포악했고 타락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 땅은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 죄가 관영함을 함을 보고 심히 한탄 하시며 대 홍수라는 심판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대홍수를 통한 심판 예고는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자녀의 이름을 통해 하나님을 뜻을 세상에 알립니다.(창5:21)

므두셀라의 이름 뜻은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 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홍수로 전 인류가 심판을 하시지 않았습니까?

두 번째 계시는 주님 재림을 통한 구원과 심판을 유다서를 통해 예언 합니다.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슬러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원망하며 불만을 토하며 그 정욕대로 행하며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利)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유1;14-16)

에녹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기에 경건하게 순종하며 살았으니 주님과 동행하며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데려 감을 입은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마음과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미 우리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말씀에는 세상을 심판하실 때의 재림의 징조 그리고 성도가 어떻게 하면 주님의 마음과 같이 행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에녹이나 노아 때 보다 더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그 말씀 속에서 주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노력을 하는 경건의 속에 주님과 동행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새해

경건한 삶을 통해 에녹처럼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발견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와 축복의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3.에녹은 믿음 가운데 동행했습니다.

여러분 믿지 못하는 사람과 동행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에녹은 오직 하나님만 믿은 믿음의 사람 이였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에녹은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 하였느니라(히11:5) 에녹의 믿음은 하나님이 기뻐하는 믿음입니다.

최근 “신과 함께”영화가 방영 되에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하는 흥행을 하고 있습니다.

한 의로운 소방관이 화재 시 자신의 생명을 걸고 불속으로 덜어가 생명을 구하고 자신 또한

의로운 죽음을 맞습니다.

그래서 그에게“귀인”이란 표가 주어집니다. 그 소방관이 죽은 후 49일간 즉 49재 기간 동안 전생에서 행하였던 모든 일들을 7곱 번 재판을 통해 7곱 죄목인 즉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부모에 대한 천륜의 죄에 대하여 염라대왕 앞에서 심판을 받고 통과한 망자만이 환생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반면에 재판을 통과치 못할 경우 끔직한 지옥에서 고통을 당합니다. 특히 거짓 입술의 죄 은혜를 원수로 갚은 죄 부모를 거역한 천륜의 죄 등등 있는데 그 재판에 통과하지 못하면 맨발로 칼 위 걸어야 하는 지옥 끊는 탕 속에 덜어가는 지옥 얼음 속에 감금되는 지옥 영혼의 혀를 갈아서 그 위에 밭을 갈고 독사의 지옥에서 물리고 특히 부모의 천륜을 어길 때 온 몸을 톱으로 자르는 고통의 지옥에서 수많은 영혼들이 신음 합니다.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불교와 무속이 혼합하여 그린 영화지만 성도의 입장에서 볼 때 몇 가지 교훈을 가져다줍니다.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불교와 무속의 49재의 혹독한 죄의 심판을 누가 통과 할 수 있을까?

의로운 소방관이 죽을 때 “귀인” 이란 표를 받았는데 그 표를 받음으로 재판을 통과하는 데 많은 참조가 되어 재판을 통과하며 환생에 이르게 됩니다.

저는 이 영화를 통해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축복임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감사 했습니다.

성도 역시 죽습니다.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49일간 지옥에서 7번 심판대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고 죽는 즉시 고통 없는 낙원으로 들림을 받고 마지막 주님 재림 시 단 한번 백 보좌 심판을 받게 되는데 이 땅에서 예수를 바로 믿을 때 믿음의 보증서를 통해 불교에서 귀인의 표와 비교 할 수 없는 예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은 능력의 보증서로서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며 환생이 아닌 천국에 덜어가 주님과 영원히 동행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생전 예수를 잘 믿고 주님 기뻐하는 에녹 같은 노아 같은 막달라 마리아 같은 믿음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 더러 주여주여 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22).주님 심판의 기준이 참 믿음을 가지되 주님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한 것에 포인트가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히브리서(11장)에는 주님을 기쁘게 하는 선진들이 믿음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아벨은 경건한 믿음의 예배를 드렸고(히11:4) 노아는 순종이 믿음으로 방주를 지었고 아브라함은 헌신의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고 모세는 능력의 믿음으로 기적의 홍해를 건넜으며 라합 기생은 용기 있는 믿음으로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므로 멸망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 기자는 말합니다.   믿음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새해를 시작하면서 주님과 동행 하시고 싶으십니까?

정말 예수 잘 믿어야 합니다. 49제가 아닌 백 보좌 심판에서 주님을 위한 믿음의 보증서로 천국에 덜어가며 이 땅에서도 믿음으로 우리 주님의 손을 잡고 기쁨도 슬픔도 외로움도 염려도 주님과 의논하며 함께 동행 하는 행복한 새해가 되길 축복 합니다.

4. 에녹은 삶 가운데서 주님과 동행했습니다.

동행은 삶 가운데서 같이 걷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를 반려자 (伴侶者) 라고 부릅니다. 평생을 슬픔도 기쁨도 함께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려자를 먼저 보내고 나면 텅 빈 공간을 홀로 서 있기에 극심한 고독과 외로움이 다가 옵니다.

그러나 주님은 믿는 자의 삶속에 영원한 반려자입니다.

에녹이 주님과 삶 가운데 동행 했습니다. 세상을 떠나 출가(出家)하여 가족과의 인연을 끊고 깊은 산 절간에서 생활하는 삶이 아닙니다.

에녹은 이 세상 속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을 충실히 이끌고 이 자식을 낳아 기르고주님의 돌보심속에 주님과 동행하며 기쁨의 삶을 산 인물입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면서 자녀들을 낳았습니다.(창5:21-24)에녹은 우리와 똑 같이 세상 속에 살아온 평범한 믿음의 사람이나 그의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므로 그와 동행했으며 그를 하늘로 데려 가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저 하늘에만 홀로 계시 분이 아니고 성령으로 이 세상 가운데 너희 안에(Entos)

우리가운데(Among) 성령으로 내주 하시며 삶 가운데 택한 자녀들을 눈동자같이 불꽃같은 눈으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돌봐 주시고 인도하시며 나의 손을 꼭 잡으시고 함께 세상을 걸어 주시는 나의 좋은 친구요 나의 아버지요 나의 주님이 되십니다.

시 121편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 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지으신 여호와 게로다...

시23: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를 다닐 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아니함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니라...      

새해를 시작하면서

나의 삶 가운데 주님을 나의 친구로 나의 아버지로 나의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끝으로 하나님과 동행자의 축복입니다.

영생의 축복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천국으로 직행한 첫 사람입니다.(창5:24)영생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예수 바로 믿으면 주님 재림하시날 그 믿음의 증표를 통해서 백보 좌 심판을 통과하여 죽음을 넘어 영원한 천국에 덜어가는 구원의 완성을 축복 받습니다. 그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아픔도 눈물도 고통도 죽음이 없는 생명수 강가를 거닐며 영원히 동행하는 축복의 삶을 얻습니다.

행복한 삶의 여정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면 시작과 종결이 온통 행복 아닙니까? 전능하신주님이 나의 손을 잡고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걱정이 있습니까? 무슨 염려가 있습니까? 무슨 고통이 있습니까? 죽음을 두려워하십니까? 사도 바울처럼 주님을 사랑 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주님 사랑하면 주님과 함께 행복한 여정을 삶이 됩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 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3) 자손에게 넘치는 축복입니다. 에녹은 자신이 넘치는 은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도 놀라운 축복을 받게 하였습니다. 자녀들이 장수의 복을 받습니다. 에녹의 자녀 므두셀라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장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는 969세를 살다가 죽었습니다(창5:25)

말씀을 맺습니다.

여러분 누구와 동행 하시겠습니까?


인생의 여정에서 영적 육적으로 주님과 함께 동행 하므로 고독과 외로움과 염려가 없는 행복한 동행의 새해를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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