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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2/11/2018

주일예배 조회 수 61 추천 수 0 2018.02.13 11:41:53
하나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행복
마5:9
2/11/18

이번 주 수요일(14일)부터 주님이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신 것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을 맞습니다. 사순절(Lent)은 자신이 신앙에 대하여 자기검토 자기훈련 자기 헌신의 기간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행복시리즈 7번째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행복에 대하여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
“아들” 하면 어떤 생각이 먼저 떠오르십니까? 아마 내가 낳은 자식으로 생각할 실 것입니다.
성경은 아들에 대하여 두 가지 개념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잘못 이해하면 여호와 증인이나 몰몬처럼 이단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몰몬이나 여호와 증인은 예수님은 아들이고 아버지는 하나님이다 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아버지가 만드신 최고의 피조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삼위일체의 부정은 물론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본체를 부정합니다.

물론 이단들이 주장하는 성경의 근거는 예수님께서 친히 “아바 아버지”(요5:18)라고 부르신 적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아바는 아빠란 의미로 아빠는 부모를 의미한다. 또 아버지는 나 보다 크심이라(요14:28)고 말씀하심으로 아버지와 아들을 동등이 아닌 종속관계로 볼 수 있는 이해 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표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의 몸으로 올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눅1:35) 따라서 인간의 언어로 달리 하나님의 아들 외에 예수님을 표현 할 길이 없습니다.

고대 근동에는 왕을 신으로 표현키 제우스의 아들 파리오의 아들 등등으로 호칭되기도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휘오스 투 데오)은 유일하신 한 분의 하나님입니다. 영어권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에 유일한 분으로 칭하는 정관사를 붙여서 The son of God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의 구원자는 오직 주님뿐입니다. 행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되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은 말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장 확실한 해답은 예수님이 자신의 입술로 선포했습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시라”(요10:30)
유대인들은 예수가 나와 하나님은 하나이다 라고 선포할 때 하나님의 아들이 곧 하나님이심을 간파하고 예수를 신성 모독죄로 죽이려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 했고 예수님을 십자가 형틀에서 사형을 집행했던 이방인 백부장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다” 선포 했습니다(요10:33)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주님은 하나님이시며 삼위일체의 한분이시며 생물학적으로 태어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이 아니며 하나님과 상하와 종속관계가 아닙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자녀)로 일컬을 받기 될 것이다.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이 영적으로 낳은 새 피조물들이 하나님이 아들들 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을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자신의 신적명칭을 인간에게 부여하였다는 그 자체만으로 참으로 놀라운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 다음으로 고귀한 생명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엘로힘(하나님) 보다 조금 못하게 지어 신 것처럼 예수님 다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칭해 주신 은혜입니다.
또한 팔복 산에서 팔복을 선포하면서 이 복을 다 받을 수 있는 주인공 역시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면 왜 행복 할 수 있을까요?

1) 천국 시민권을 소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신분이 하나님의 왕자요 공주의 신분을 얻은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를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들 거룩한 나라 소유된 백성 이라는 그 신분을 소개하고 계십니다(벧전 2:9)

요즘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때 시민권 신청비에 돈이 많이 덜고 까다로운 검증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시민권 취득한 사람들이 감격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가끔 보게 됩니다.

얼마 전 한국에 갔다가 LA 국제공항에 입국할 때 신분의 차별을 확연히 느꼈습니다. 시민권자는 외국인들이나 영주권자 또는 비자 소유자들과 구분하여 간단한 컴퓨터 확인 후 신속하게 입국 수속을 받게 하고 가끔 심사관들이 Welcome to Hometown 인사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의 칭호는 천국 시민 권자로 미국시민권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권위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천국에 덜어갈 수 있는 가는 패스포터를 이미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성도가 천국 시민권 취득에 걸림돌이 되는 죄를 십자가에 물과 피를 다 쏟으시므로 그를 믿는 자에게 죄를 사면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천국시민권 취득 과정에서 내 호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지 않고 엄격한 검증과 수고도 없이 오직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 귀한 은혜의 선물을 “값싼 은혜”로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 천국시민권 취득에 감격과 감사가 없으니 주님의 몸인 교회와 복음을 위한 헌신이 사라지고 내 기분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안타까움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님 얼마나 섭섭하시겠습니까? 여러분! 구원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얻는 것입니다. 천국시민권이 취소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 천국 시민권을 선물로 받은 상태입니다. 아빠를 섭섭하게 하지 말자. 아빠를 기쁘게 할 때 우리 역시 아빠를 통해 축복과 행복이 주어집니다.

2)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행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 이름으로 사탄을 정복하고 질병을 치유하고 기도의 응답을 받고 예수 이름으로 삶을 승리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너는 내 이름으로 구하고 행하고 다스리라 그러면 내가 시행하리라” 그러므로 바로 왕 같은 제사장이 되어 날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가고 주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행 할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3) 행복할 수 있는 특권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행복을 얻기 위해 외적으로 돈도 벌고 자기 삶의 목표도 추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온갖 가지고 싶어 하는 것 다 가지고 싶어 합니다. 이를 위해 때로는 행복 보다 염려와 수고와 고통의 눈물도 흘릴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행복이란 육신의 것들이 행복의 한 요소는 될 수 있어도 참 행복은 아닙니다. 참 행복은 나의 영적 공백 속에 말할 수 없는 희열과 기쁨이 넘쳐야 하며 그 내적인 기쁨이 외적으로 삶 가운데 강물처럼 흘러내려야 합니다.

행복이란 말은 헬리어로 “유다이모니아”란 말입니다. 그 뜻은 “하나님과 같이”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있을 때 행복 합니다.

참 행복 하고 싶으십니까?

내 심령에 세상의 돈 명예 자랑 보다 주님으로 가득 채우십시오. 하나님과 같이 살아가십시오, 그리하여 주님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행복감으로 삶 가운데 주님과 동행의 행복의 성도가 되길 축복 합니다.

 

4) 하나님의 집에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아버지 집에 거할 수 있습니다.

요14:2-3절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거할 곳이 많도다” 말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아버지 집에 거할 때 보호를 받습니다. 마치 앎 닭이 병아리 품듯이 아버지의 집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주 날개 밑 내가 평안이 쉬 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 처도 아버지께서 날 지키시리니 거기서 평안이 쉬리로다.

그래서 다윗은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고백 했다.

주님 집에 거할 때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살아가는 자녀입니다(요15:9-11)

주님 집에 거할 때 모든 근심과 염려를 아버지와 의논하고 또 맡길 수 있습니다.

주안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앞에 나가 내 짐을 풀었네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이뢰라”

주님 집에 거할 때 돌보아 주심과 주님과 동행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럽 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시23: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자가로 다닐 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가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님 집에 거할 때 영광의 상속을 받습니다.

상속은 이란 한 사람의 사망으로 인하여 재산에 관한 권리와 의무를 일체를 이어 받는 것이고, 본문의 상속은 “다음 차례로 이어주거나 받는 것”

하나님의 첫 번째 상속자는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상속권인 “통치권”을 계승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믿음의 자녀에게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을 받게 합니다.

롬8:17에 “자녀이면 또한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성도여러분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로 칭함을 받는 자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행복의 대명사인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함을 받는 행복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아들”로 칭함을 받을 수 있을까요?

두 가지입니다.

1) 예수를 영접해야 합니다.

요1:12 “영접 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첫 관문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분명히 영접하고 고백하고 선포하며 그 삶을 살아가는 것.

2) 화평의 삶입니다.

예수님의 전 생애가 화평의 삶입니다. 주님이 탄생시 하늘에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쁨하심을 입은 자들의 평화로다. 주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에 평화를 주신 실체입니다.

화평은 사람의 태도나 관계성을 넘어서 화평의 상태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화평은 화평의 적인 죄와 갈등에서 자유 함을 받고 평화의 삶의 상태를 이루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는 화평을 샬롬 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샬롬의 상태는 적어도 군사적 충돌이 없는 상태일 뿐 아니라, 평화, 기쁨, 조화, 정의, 이웃사랑까지 포함하는 깊은 뜻의 단어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칭함을 받는 조건이 “화평”의 태도를 가지는 차원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단순히 "자기 마음속에 화평을 가진 자"(Augustine) "평화로운 자“(peaceable men(Wyc V.) 평화를 사랑 하는자(Grotius)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화평을 조성하는 자(peace- makers)란 뜻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실수요 범죄는 십자군 전쟁입니다. 그 전쟁에서 그때 수많은 회교국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아이도 죽고 여자도 그들의 머릿속에 십자군 이란 단어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래서 회교도들은 지금도 그들의 가슴속에 십자가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교권에는 십자가가 덜어간 단체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선교단체인 CCC사 대표적인입니다(Campua Crusade for CHrist)=“ 그리스도를 위한 캠퍼스 십자군“ 즉, 십자군의 말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화평의 삶은 하나님과 사람 관계 속에서 불화를 조성하는 츄라벌 메이커가 아니라 Peace Maker를 만들어 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Peace Maker의 사람은? “

(1) 관용과 양보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오심과 삶과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화평의 길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삭도 평화의 중재자로 살았습니다.

이삭은 17세 나이로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릴 때 이삭은 자신의 몸을 드려 하나님과 아버지 사이에 중재의 제물이 된 것입니다. 그의 삶 또한 평화를 심고 중재자로 살았습니다.

이삭의 당시 부의 상징은 얼마나 많고 좋은 우물을 소유하는 데 있습니다. 우물이 있어야 양을 치며 생업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삭 역시 우물을 찾아 이동합니다. 이삭이 처음으로 우물을 발견한 곳이 에섹 입니다. 이 우물을 팠더니 그랄 목자와 이삭의 목자와 다투므로 이삭은 평화를 위해 그 우물을 양보합니다. 두 번째 판 우물이 싯나 입니다. 역시 다투므로 양보합니다. 세 번째 다시 우물을 팝니다. 르호봇의 우물입니다. 다시는 다툼이 없었고 그전과 비교 돨 수 없는 수질과 양이 풍부한 우물 이였습니다. 하나님이 평화를 심는 이삭을 축복하였습니다. 이 우물이 평화의 우물입니다.

이삭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사람의 관계 속에 평화의 중재자가 될 때 하나님은 이삭에게 “르호봇”란 풍부하고 아름다운 축복의 우물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2) 기도의 사람입니다.

기도라면 내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분노와 증오를 주님의 은혜로 자기 용서를 할 수 있으며 나를 괴롭게 하고 거짓으로 올무를 쉬운 자를 주님의 용서에 힘입어 용서할 수 있는 중보의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화평을 심기에 노력하는 성도입니다.

(3) 적극적인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입니다.

다이나마이트 만든 자가 “알프레드”입니다.

그가 34세 때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60세가 넘었을 때입니다. 어느 날 아침 조간신문에 자신의 죽음의 기시가 실린 것입니다. 물론 동명이름이 잘 못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기사의 내용은 자신의 삶을 적 날 하게 해부하고 있었습니다.

기사제목이 다이나마이트 제조업자 사망. 사람들에게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무기를 제조 하여 판매한 사람이 더디어 죽다. 그리고 그 사람의 일생은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는 다이나마이트 무기를 생산하는 데 전 생애를 보내다는 기사입니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그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삶이 달라져한다는 생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2세 때 1895년 12월 27일 그는 자기의 전 재산을 평화를 위해 사용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이것이 “알프레드” 노벨 평화상의 시작입니다.

성도여러분

평화를 애호하는 사람들과 평화를 만들어가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평화애호가들은 평화라는 슬로건을 내 걸고 있지만 고통스러운 세상을 도피해 가면서 사는 도피주의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다고 하면서 주님을 위한 사랑의 흔적과 헌신이 없다면 입만 살아있는 가짜 사랑입니다.

성도가 말로 예수 이름을 부르면서 내면속에 미움과 시기와 다툼과 이간의 말을 하고 다닌다면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그 화평을 위하여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그것을 감수하면서 화평을 심는 자들입니다.

내가 머무는 곳에 평화를 심는 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아들이요” 참 크리스챤입니다.

(4)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남겨주신 말씀은 평화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화평이 있습니다. 여기에 성도와 교회의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교회선교비전이 212 목표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의 복음 신발을 싣고 갈등 다툼 상처 미움이 있는 곳에 복음의 약을 주어야 한다.

신약 구약도 주어야 합니다. 복음은 갈등을 치유하는데 특효약이기 때문입니다. 평화의 복음이 심령 가정 우리 교회, 세상에 강물이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다시 성 프란치스코 의 기도문을 회상 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성도여러분

어떻게 살아가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로 칭함을 받는 행복의 주인공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까?

평화의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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