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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1/28/2018

주일예배 조회 수 123 추천 수 0 2018.01.30 14:55:00
이가봇에서 에벤에셀로 삼상7:3-17
1/28/18

1월 마지막 주일을 맞이합니다.
새해 어떤 설레 임의 꿈을 계획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직 새해 꿈이 없이 덧없이 흐르는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 몸을 던지고 다람쥐 채 바귀 돌 듯 지난날의 생활을 반복하고 계신다면 1월이 다 가기 전에 주 안에서 믿음의 꿈을 꾸십니다.

삶에는 두 가지 질문에 도전을 받습니다.
Why? 왜 사는가? 히브리적인 질문입니다.
How? 어떻게 살 것인가? 헬라적인 물음입니다.

이 두 가지 질문은 1월을 마지막 보내는 저와 여러분 앞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크리스찬으로 삶의 본을 보여 준 분으로 평가 됩니다. 여러분
록펠러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세계 최고의 부자다. 세상에서 기부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이다. 그리고 한 신앙인으로 삶의 본을 보인 분이다. 등등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뉴욕 타임즈에 의하면 금세기 최고의 갑부는 미국의 석유 왕으로서 알려진 록펠러(1839-1937)라고 보도 한 바 있습니다.  
록펠러는 33세 때 백만장자가 되었고 10년 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를 소유하게 되었다. 53세에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또한 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기부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기부할 때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시카고 대학이다. 대학 어디에도 그의 이름이 기록된 곳이 없다.

록펠러가 이 같은 축복과 봉사의 삶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은 그의 어머니 엘리자 였다. 그녀는 청교도적인 신앙으로 록펠러를 양육했으며 그녀는 10가지를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록펠러의 생애는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53세에 최고 갑부가 되었지만 55세가 되었을 때 불치의 병인 원형탈모증(alopecia)으로 눈썹과 머리가 빠지고 몸은 미꾸라지처럼 쪼그려 들었으며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시달렸다.
1년 이상을 살지 못한다는 사형 진단도 받은 상태 였다. 그가 먹는 음식은 우유와 크랙크만 먹었다. 그는 마지막 검진을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 로비를 지나가는데 한 벽에 액자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 액자에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말이 쓰여 저 있었다. 록펠러는 그 구절을 보는 순간 어머니가 유언으로 남기신 10번째 말씀 즉,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는 말씀이 생각나서 마음에 뜨거운 전율을 느끼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렸다. 그가 병원 로비를 지나가는데 병원 접수처 앞에서 소란한 다툼의 소리를 듣게 된다. 내용인 즉 병원에서는 병원 입원비를 납부치 않으면 환자를 입원시킬 수 없다는 것과 죽어가는 딸을 제발 입원을 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어머니와의 논쟁이다. 그 모습을 지켜 본 록펠러는 비서를 시켜 그 환자의 입원비를 지불하게하고 누가 병원비를 지불했는지 모르게 하였다.

얼마 후 록펠러가 은밀히 도운 그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었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록펠러는 너무나 기뻤다. 그의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다." 록펠러가 도움의 손길을 폈던 그때 신기하게 자신의 병도 치유를 받는 기적의 은혜를 경험 합니다. 그 후 록펠러는 56세에 죽어야 할 사람이 98세까지 장수 하면서 교회 1000개 이상을 건축했으며 남은 여생을 남에게 도움을 펴는 삶으로 살았다.

록펠러는 Why 사는가? 그리고 How 살아야 하는 의미를 터득한 인물이 아닙니까?
오늘 본문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두 가지 삶의 형태를 말씀해 주고 있다.
첫 번 째 삶의 형태는 “이가 봇”(Ichabod)의 삶입니다.
“이가 봇”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의미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 가봇의 삶을 살았을까요?
이스라엘이 왕이 없던 시대는 사사들이 백성을 다스리게 되었는데 엘리 제사장이 사사가 된지 40년간 백성을 다스리면서 당시 98세가 되었습니다. 그는 백성과 자식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으로 가르치지 못한 무능한 사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는 영적으로 타락했다.
그런 영적인 타락 속에서 이스라엘과 불레셋(팔레스타인인)두 차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집니다.(삼상4:1-22)
1차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4000명 2차 30,000 죽고 믿음의 상징인 하나님의 법궤가 불레셋에 빼앗기는 수모를 당하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사 당했고 그 소식을 접한 엘리 제사장도 충격을 받아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극의 소식을 접한 엘리 제사장의 며누리 즉 비느하스의 부인이 임신 중에 있었는데 충격을 받아 아기를 난산하며 죽어 가면서 그 태어난 아기에게 붙인 이름이 바로 이 가봇입니다. 이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뜻입니다.(삼상4:1-22)

여러분
믿는 성도나 교회의 가장 큰 불행과 비극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의 촛대가 옮겨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이가봇의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이 가봇의 삶은 어떤 삶이였을까요?
1) 영적인 타락의 삶입니다.
영적인 타락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형성치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엘리제사장은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자식인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성전의 재물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탐내었으며 성전에서 봉사하는 여인을 음행하는 범죄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는 분명한 말씀으로 자식과 백성을 가르치지 않고 방치합니다. 이 같은 영적 타락의 결과는 불레셋과 전투에서 처절한 고통과 실패를 맛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현실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많은 성도들의 왜 주신 축복도 잃고 하나님의 영광에서 멀어지는 삶을 살까요?
영적인 타락 때문입니다.
성도의 영적 타락은?
(1)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지 않습니다.
자신의 말과 행하는 일들이 죄인 줄 모르고 행합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찾기보다 교만으로 나의 욕망만 이루려고 합니다.
주 기도문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도 이루어 지이다”라고 주님 가르치신 그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그러다보니 하나님을 자기 속으로 끌어 들여 자신의 뜻과 소망을 이루는 도구의 하나님으로 잘못 믿고 생활 합니다.

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샤마니즘적인 기복 신앙인으로 전락된 것입니다.
참 신앙은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분 안에서 그 분의 뜻이 나의 뜻이 되도록 하고 늘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늘 물어보는 기도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자리에서 주님의 때와 인도를 기다리며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신앙생활을 할 때 이 가봇의 삶이 아닌 에벤에셀의 삶으로 축복 받습니다.

새해!

우리 수도교회와 성도님들 주님의 뜻 안에서 나의 꿈 나의 희망 우리 교회의 비전을 이루어지는 축복 한해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2)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 찾지 않고 누구 때문에 또는 핑계에서 찾습니다.
이스라엘 엘리제사장을 비롯한 장로들이 불레셋과 전쟁에서 처절한 패한 원인을 자신들의 영적인 타락에서 찾아 회개치 않고 패배의 원인을 엉뚱한 곳에 돌립니다.
우리가 전쟁에 패한 것은 하나님의 법궤가 없어서 패배 한 줄 알고 실로에 있는 법궤를 옮겨 옵니다.

법궤가 실로에서 옮겨 왔을 때 백성들은 함성을 지르고 기뻐했습니다. 그 때 아벡에서 진을 치고 있던 불레셋 진영은 이스라엘에 전능한 신인 하나님의 법궤 돌아왔다는 소식에 한편은 두려움으로 한 편의 사상 결단의 전투를 준비 합니다.

이스라엘은 법궤를 앞세워 의기양양해서 불레셋과 다시 전투를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비참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보병 30,000전사했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사했고 이 소식을 접한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 않아 있다가 넘어져 목이 부러져 즉사했고 더 비참한 것은 하나님의 법궤가 불레셋 손에 7개월간 빼앗기는 결과를 초례 했습니다.

바로 “이가 봇의 삶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떠난 결과입니다.(삼상4:2-22)
그렇습니다.
성도나 교회가 실패와 고통의 자리에서 이르게 될 때 그 실패 원인을 누구 때문에 무어 무엇 때문에 라고 핑계하는 것이 아니라 요나처럼 이 폭풍을 만나 것은 나의 연고라 회개하는 눈물과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사탄은 사람의 마음속에 와서 자신의 실패를 회개치 않게 하고 핑계로 일관 합니다.
사탄은 핑계의 명수입니다. 성도에게 다가와서 늘 핑계의 입술이 되게 합니다.

가령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뱀으로 형상화 하여 하와를 어떻게 유혹합니까? 하와야 이 선악과를 타먹으면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과 같이 되는 거야? 그래서 하와가 따 먹습니다. 하나님이 하와에게 묻습니다. 왜 내가 그토록 먹지 말라 먹으면 정령 죽는 다고 명 했는데 왜 따 먹었느냐? 물으니 하와의 대답은 제가 잘 못 했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드신 뱀이 먹어라 해서 먹었습니다. 아담 역시 하와가 먹어라 하니 먹었다고 핑계를 하지 않습니까?

주님이 주시는 직분에도 핑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그 순종이 축복의 비결입니다.
여러분 문제와 실패 앞에서 주님이 원하는 것은 답은? 주님 제가 교만 했습니다. 제가 잘못 했습니다. 라고 회개하는 고백이야 말로 실패의 이가봇이 아니라 실패를 넘어 다시 시작하여 승리하는 에벤에셀의 축복입니다.

3) 하나님의 법궤에 잘못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의 말씀의 상징(십계명)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이 능력의 상징이요(모세의 지팡이 만나의 항아리) 그리고 말씀에 순종할 때 역사하는 믿음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법궤를 마치 무당의 부적이나 요술의 궤로 착각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궤에 대한 바른 믿음에서 떠난 결과는 이방인 불레셋에 처절한 패배를 맛 본 것입니다. 불레셋에게 대 패배를 한 것은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바로 믿지 못한 준엄한 심판 이었습니다. 이것이 이가봇 삶이 아닙니까?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은 이가봇의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늘 하나님의 현존 앞 즉 “코람데오”의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악한 영의 거짓의 소리 사람의 소리 세상의 수많은 소리에 현혹 되지 말고 오직 말씀의 소리에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 앞에 서서 살다가도 때로는 고통을 맞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우리 수도교회 2018년 한해 이 가봇의 삶이 아닌 에벤에셀의 영광이 임하는 복된 성도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두 번째 삶은 에벤에셀의 삶입니다.
에벤에셀의 뜻은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의 아 가봇 삶에서 새 제사장 사무엘이 사사가 등장하면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회복을 통해 에벤에설의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그 증표가 첫 불레셋과의 전투하여 잃었던 법궤를 다시 찾고 전쟁에서 대 승리한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큰 돌을 하나 취해서 미스 바와 센 사이에 세우고 그 돌을 이름 하여 ‘에벤에셀’이라 불렀습니다. 에벤은 “돌”이라는 뜻이고 에셀은 “도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돌 비석은 “도움의 돌” 로 여호와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삼상7:12)
이스라엘 백성의 에벤에셀의 삶은 다시는 불레셋의 침공이 없으며 하나님이 함께 하는 놀라축복을 받습니다.

어떻게 에벤에셀의 축복을 받았을까요?
1) 영적인 회복입니다.
주님으로부터 떠났던 영광을 다시 회복된 삶입니다.
무능과 타락의 엘리 제사장 시대가 끝난 후 믿음의 사사 사무엘은 불레셋과의 전투에 앞에 먼저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인 회복을 단행 합니다.

(1) 회개입니다.
사무엘은 모든 백성을 미스바 광장에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 온 종일 백성들에게/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회개 기도를 하게 합니다. 지난날 우상의 섬김과 타락의 삶을 철저히 회개 운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가령 요나가 처절한 실패의 자리에서 회개한 것처럼 말입니다.
주님이 요나에게 니느웨성에 가서 주님 말씀을 전하라고 명 했지만 요나는 자기의 편리함과 생각으로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그 결과 그는 풍랑을 맞았고 바다에 던져 저 고래의 배 위속에서 3일 3야의 음부의 고통을 당합니다. 요나는 주님께 회개 합니다. 이 폭풍을 만난 것은 나의 연고라고 회개하니 주님 다시 그를 살려 주셨고 다시 니느웨 성으로 향하게 하지 않습니까? 바로 타락과 죄에서 영성의 회복의 사례입니다. 축복의 길은 회개로부터 시작 됩니다.

(2) 예배 입니다.
사무엘은 자신은 어린 양 하나를 잡아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면서 여호와께 이스라엘 구원을 기도 합니다.
아벨이 정성을 다한 피의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기쁘시게 열납 해 주셨습니다.

성도라면

어떤 핑계를 떠나 반드시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온 맘과 뜻과 정성을 다해 주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산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찌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통해 주님의 열납과 응답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록펠러의 축복 비결이 주일 예배 빠지지 않고 본 교회에서 잘 드렸습니다.

(3)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큰 우레를 발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고 혼비백산케 하여 이스라엘 앞에 대패를 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말씀 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이리라.
네가 만일 너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 우사 너희 죄를 사해 주시니라.

성도여러분
나의 신앙의 삶을 스스로 되돌아보면서 지금까지 나의 신앙이 이가 봇의 생활 이였다면 에벤에셀의 삶으로 회복하십시오.
그리하여 성도의 심령에 그 가정에 우리 교회에 주님의 찬란한 영광의 임재로 기도의 응답과 삶의 회복을 받는 에벤에설이 복된 성도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2) 최선을 다하는 것.
엘리 제사장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주신 축복의 땅에서 말씀과 함께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면서 주신 것 까지 빼앗기고 처절한 상처와 고통과 죽음의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달란트 비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주인의 맡김과 최선을 다해 남 긴자는 더 많은 축복이 주어졌고 반면에 자신의 맡김에 최선을 다하지 못할 때 주신 것 까지 빼앗겨 버리는 불행이 있습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있을 대 잘해” 그 말이 현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말 아닙니까?
차간 뒤에 손들면 차가 되돌아옵니까? 부모님 계실 때 잘 해야지 돌아가시고 난 뒤 울고 후회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떠난 텅빈 자리에서 후회와 아쉬움이 다가 옵니다.
새해 주님이 나에게 맡겨진 직분 주님 앞에 후회 없이 최선을 다 하시시오. 예배로 봉사로 물질 로 섬김으로 하십시오. 그곳에 에벤에셀의 영광과 축복이 있습니다.

3) 승리의 찬가를 부릅니다.
사무엘과 온 백성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신앙생활을 회복하니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을 굴복시켜 다시 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13절)

그리하나 평화 속에서 모든 백성이 손에 손잡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감사가 넘치고 행복한 한 마당의 모습이 아닙니까?
바로 에벤에셀의 삶은 하나님으로 인한 승리의 찬가를 부르게 된 것입니다.
새해 우리 교회는 212의 비전을 향해 믿음의 배를 띄웁니다. 200명 성도 10 목장 2곳의 선교사업입니다.
이 비전을 위해 모든 성도가 이 믿음의 배를 타고 가야 합니다.
때로는 극심한 풍랑이 일고 게 센 비바람으로 위험한 자리에 이를지라고 믿음으로 희망의 포구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예레미야 애가는 슬픔의 노래입니다. “아, 슬프다”(1:1)로 시작 합니다.

내가 겪은 그 고통은 마치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3:19-20). 그러나 예례미아 애가는 절망의 한복판에서 “오히려”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 이유는 주님은 한결같은 사랑이시고 주님의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에 주님으로 인해 희망의 믿음을 가집니다.

새해 모든 성도의 가정과 우리의 교회가 에벤에셀의 삶으로 하나님과 함께 승리의 찬가를 부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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